△ 점 하나하나는 가상 우주 공간에서 태양의 100억배 질량을 지닌 입자를 나타낸다. 이런 점들이 뭉쳐 타원이나 여러 모양의 은하를 만든다. 은하는 먹고 먹히는 합병과정을 거치며 점차 커진다. 은하 수백개가 모여 은하단을 이루는데, 현재 우주는 은하단이 생겨나 진화를 시작하는 단계다. 작은 씨앗 ‘꿈틀’ 우주가 생겼더라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와 별, 그리고 텅빈 공간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는 우주의 질서처럼 보이지만, 우주론 연구자한테는 심각한 물음을 던져준다. 137억년의 우주 진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고르게 퍼진 태초의 우주 물질이 이러저리 몰려 지금처럼 은하와 별·행성이 생기고 생명체도 출현할 수 있었을까? 최근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와 김주한 박사(물리학부)가 만든 세계 수준의 우주 진화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이 이런 물음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초고속 연산회로에 구현된 이 가상의 우주는 260억 광년 규모의 가상공간에다 86억개의 입자를 뿌려 137억년 동안 ‘중력 진화’를 하도록 설정됐다. ‘가상우주의 진화 다큐멘터리’의 감독 격인 박 교수는 “모의실험은 가상우주의 진화 결과가 실제 관측되는 현실 우주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살핌으로써 초기 우주의 상태를 역추적하려는 것”이라며 “이번 모의실험에선 태초 우주의 ‘작은 물질 요동’이 현실 우주의 거대한 은하 분포를 만들어냈음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80일 동안 벌인 1차 모의실험 결과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중이다. 연구팀이 현실 우주를 빗대어 슈퍼컴퓨터에 구현한 가상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슈퍼 컴퓨터 재현한 은하단 형성 현실과 비슷
거대천체는 생성안돼 ‘우주론’ 수정 가능성도
■ 우주 진화의 동력, 물질량과 공간팽창=무엇보다 현실과 가상의 우주에서 우주 물질의 총량은 우주의 시·공간을 결정하는 변수로 여겨진다. 박창범 교수는 “우주 물질 총량과 밀도가 얼마이냐에 따라 우주 공간의 크기는 물론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나 시간의 길이까지 달라진다”며 “시뮬레이션엔 현대우주론의 표준모형이 채택한 ‘평탄한 우주’의 밀도(임계밀도 1±0.03)가 설정됐다”고 말한다. 우주 물질은 다시 보통물질 23%에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암흑’이라 불리는 암흑물질 4%, 암흑에너지 73%의 비율로 나뉘어 슈퍼컴퓨터에 입력됐다. 예컨대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하는 암흑에너지가 많으면 우주의 팽창 속도는 더욱 커져 공간 구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상우주엔 질량과 중력을 지닌 86억개의 입자가 고르게 뿌려졌다. 가상입자 하나는 태양의 100억배 질량을 나타내며 입자 100~1000개는 현실 우주의 은하 하나로 계산된다. 또 가상의 우주 공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팽창하도록 설정됐다. 입자들은 가상우주에서 공간 팽창과 중력 작용에 따라 137억년의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 태초 우주 ‘요동의 씨앗’을 찾아라=하지만 이런 조건만으론 우주가 137억년을 지나더라도 지금의 별과 은하·은하단 분포를 만들지는 못한다. 현대우주론은 태초에 ‘물질 요동의 씨앗’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우주 탄생의 대폭발(빅뱅)과 그 직후의 급속한 우주 팽창(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뒤, 미세한 에너지의 요동이 생겨났으며 그 작은 흔적이 지금의 우주 물질 분포를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박 교수는 “초은하단과 은하단이 먼저 생기지 않고 이보다 작은 규모의 은하와 별이 먼저 생성된 것은 태초에 작은 물질 요동이 어떻게 생겨나고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모의실험에서도 은하가 다른 은하를 집어삼켜 거대 은하로 자라며 점차 은하단 규모로 진화하는 과정이 재현됐다”며 “실제 관측에서 우리 은하에 잡아먹힌 작은 은하들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처럼 가상우주는 현실 우주와 매우 닮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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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물질 요동의 씨앗은 매우 미약했으나, 137억년의 진화를 거쳐 현실 우주에선 은하의 합병과 거대 은하단의 형성을 이루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 “현대우주론 가설 검증하겠다”=260억 광년의 가상공간을 구현한 시뮬레이션은 우주론의 여러 가설을 우주 진화의 시나리오 안에서 검증하는 유력한 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태초 우주의 인플레이션(급팽창) 직후 생긴 작은 요동의 씨앗이 지금의 은하 분포를 만들었다는 가설이 굳건한데, 시뮬레이션에서 그 요동의 다른 특성이 발견된다면 현대우주론을 수정할 수도 있는 중대한 발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그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온 하늘의 25%를 샅샅이 관측하는 국제공동의 슬론 우주측량프로젝트(SDSS)에선 무려 20억 광년 크기의 거대 은하 집단인 ‘슬론 장성’이 처음 발견됐는데, 표준모형을 구현한 가상우주에선 이런 거대 규모의 천체가 생성되기 힘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 교수는 “왜 가상우주는 현실 우주에 존재하는 슬론 장성 같은 거대 천체를 만들지 못하는지를 분석하면 새로운 우주론 가설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연구팀은 가상우주의 시뮬레이션과 함께 지난해부터 슬론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세계 수준의 연구성과를 낼만한 가상과 현실의 중요 데이터를 모두 갖추게 됐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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