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5 16:40
수정 : 2005.01.25 16:40
해가 갈수록 과학기술에 대한 언론의 보도 횟수가 늘고 있다. 이는 미래의 경제성장이 과학기술 진흥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경쟁력 있는 분야에 대해 단기적 집중투자는 바람직하나 이로 인해 다양한 기초과학 분야가 소외되어서는 안되겠다.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대학 교수에게는 독일처럼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계속적인 연구기반 조성비를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과학은 우리의 희망사항과 별개의 문제이다.
언론은 특성상 과학기술 분야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보도하려 한다. 그러나 잘못하면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에 그칠 수도 있다. 다분히 우리 언론의 자세가 그렇지 않았나 되새겨 보게 된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되었던 ‘이런저런 한국인 과학자에 의해 국내외에서 처음 발견·발명되었다’고 하는 기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최근 다시 부는 노벨상에 대한 집착은 그 현주소를 보여준다. 시장 상품처럼 기획하고 투자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언론은 1980년 초에도 노벨상에 도전하는 한국인 과학자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우리 국민의 바람이기는 하겠으나 과학자가 추구하는 학문적 성과는 노벨상 수상이 아니라고 본다. 노벨상 수상을 바라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과학을 할 수 있는 학문적 풍토와 과학자의 자세를 심도있게 조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언론이 맡아 해주었으면 한다.
얼마 전 어느 언론에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10년 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기사 내용이 실렸다. 왜 언론이 과학 기사를 통해 막연한 장미빛 미래를 제시하게 된 것일까? 실로 언론이 할 일은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과학 활동을 감시하고 사회적 영향을 생각하여 그 결과를 대중에게 진실되게 알려야 한다. 더욱더 웃지 못할 일의 하나는 지난해 11월18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국회의원들이 황우석 교수와 사진 촬영을 하려고 줄을 선 일이다. 과학을 위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우리에게도 스타 과학자가 있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과학의 공공성은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론은 과학기술의 결과를 보도하는 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를 공론화하고 이로부터 사회의 문제점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은 검증이 필요하므로 기사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 종사자들이 전문인과 함께 하나의 포럼을 구성해 과학기술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힘써야 하겠다. 이를 통해 과학문화 조성이 탄탄한 기초를 다질 수 있기 바란다. 지금까지 과학과 대중이 가까워질수 없었던 것은 과학기술자에게도 잘못이 있다. 과학기술자는 자기비판을 통해 진정한 과학자상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내세운 정책의 내용이 역대 정부의 정책과 정말 얼마나 달랐는가도 돌이켜 생각해볼 문제다. 정책이 아니라 시행 의지가 중요하다. 새로운 정책에 의해 새로운 과학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중에게 말의 혼돈을 주는 언론이 아니기를 바란다.
홍영남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
ynh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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