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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7 19:42 수정 : 2013.11.18 08:44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국가기록원 미이관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정치적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올 2월 “후임 대통령 열람 편하게”
지난 15일엔 “1급비밀, 접근 어렵게”
대화록 숨기려는 의도로 판단 바꿔
‘초본 삭제’ 범죄 성립 의도한 듯

초본·국정원본 큰 차이 없는 상황
‘범의’ 싸고 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가정보원에 보관하도록 지시한 배경과 동기에 대해 검찰이 올해 2월 엔엘엘(NLL·북방한계선) 관련 고소·고발 사건 때는 ‘후임 대통령의 열람 편의 목적’이라고 밝혔다가, 지난 15일 수사발표 때는 ‘보안상 이유’라고 말을 바꿔 논란이 일고 있다. 애초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대화록 은폐 의도가 없었던 것인 만큼 이번에 문제가 된 대화록 초본 삭제 행위에도 ‘범의’(범죄 의도)가 인정되기 어렵다. 결국 검찰이 초본 삭제를 범죄로 규정하기 위해 무리하게 논리를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 2월 엔엘엘 논란과 관련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등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전원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들에게 열람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국정원에 대화록을 보관하도록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다른 대통령들이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정상회담을 계속해야 한다. (후임)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다룰 때 옛날 거 어땠는지 봐야 하는데,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또는 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절차가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관리하라고 한 것으로 수사 결과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 등이 대화록을 좀더 쉽게 볼 수 있도록 국정원한테 관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15일 수사발표 때는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 공개에 따른 논란을 우려해 국정원에 1급비밀로 보관하게 해 접근을 어렵게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검찰은 그 근거로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2008년 2월14일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메모보고에 나오는 ‘보안성’이란 낱말을 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보안성’이 (국정원에 보관 지시한)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급비밀은 볼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본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노무현재단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화록을 국정원이 관리하도록 한 배경에 대한 판단이 ‘후임 대통령의 열람 편의’에서 ‘대화록을 숨기려는 의도’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대화록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09년 3월 2급비밀로 재분류됐고 지난 6월 국정원이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했다. 애초 검찰의 설명이 더 현실에 맞는 셈이다.

검찰이 말을 바꾼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대화록 초본 삭제 지시’에 범의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후임 대통령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선의’에서 대화록을 국정원이 관리하도록 했다면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검찰 주장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화록 초본 삭제의 ‘범의’를 둘러싸고 앞으로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대화록 초본 삭제의 범의가 인정되려면, 완성본에는 없는 중요한 내용이 삭제된 초본에 담겨 있거나, 대화록을 아예 없애 열람을 봉쇄하는 등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초본과 수정본, 국정원본 사이에 내용상 큰 차이가 없고, 가장 완결된 형태의 대화록은 국정원에 보관돼 있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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