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26 19:15
수정 : 2013.12.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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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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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지난 1년간 국내에서 ‘자랑스런 불통’을 했을지는 몰라도 외교는 잘했다는 ‘신화’가 존재한다. 대통령 당선 1년을 즈음해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외교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과연 한국 외교는 안녕한가? 실상은 박 정부의 정책 가운데 외교만큼 실질 성과와 이에 대한 일반 인식 사이에 괴리가 큰 분야도 없을 것이다.
박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주변국의 지지 확보를 외교·안보 분야에서 거둔 대표 성과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두 정책에 대해 ‘간판만 있고 물건이 없다’는 나라 안팎의 비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개성공단의 조업 재개 이외에는 전혀 진전이 없다. 외교에서 의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실속 없는 의전은 허망하다. 매번 한복 패션과 외국어 구사 능력, 극진한 접대라는 3종 세트를 전면에 내세운 정상외교 성과에 대한 지나친 홍보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피로감과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는 외교·안보의 위기가 가능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박 대통령의 손을 꼭 부여잡은 채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지 마라”고 ‘공갈’을 치는 무례한 일이 있었다. 외교장관까지 나서 ‘통역의 실수’라는 등 어설픈 해명을 했지만, 오히려 왜 그가 그런 언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만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수는 없는 법. 한 정통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자 국방당국간 정례 대화 창구를 통해 이어도와 우리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 부분만 빼줄 것을 은밀하고 다급하게 타진했다. 중국 쪽이 즉각 거부했기에 망정이지 우리 쪽의 요청을 수용했다면, 눈앞의 이익만 지키려다가 미국·일본으로부터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과 원한을 샀을 뻔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큰 판을 보지 못하고 ‘나만 살고 보자’는 식의 우리 쪽 움직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전화로 우리 어깨너머에서 북한 내부 정세를 논의한 것도 ‘한국 외교의 실패’를 보여주는 충격적 사건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극적인 시기에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어야 할 우리의 존재는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 대해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탄탄한 지렛대가 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대오각성할 일이다. 남북문제, 한반도문제에서 아무런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2015년에는 자유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떠벌리는 국정원장의 ‘기개’가 한심할 뿐이다.
정부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응한답시고 부랴부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와 사무처를 신설하기로 했다. 사실상 노무현 정권 때 만들었다 지금의 여당이 주도해 폐지한 것을 부활시키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구를 신설하고 확대한다고 해서 불안한 외교·안보가 금세 안녕해질 것 같지 않다. 그동안 우리의 외교·안보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8할은 기구가 아니라 사람에서 원인을 찾아야 마땅하다. 그릇을 바꾼다고 해도 내용물이 그대로라면 음식 맛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정권의 인기몰이에만 급급한 사람을 배제하고 국제정세를 꿰뚫어보면서 나라의 살길을 창조적으로 개척하는 전략적 인물을 찾아야 할 때다.
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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