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언론들, 드러난 ‘논문 조작’ 처리 방법에 관심
지난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결과 보고서를 통해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조작’으로 드러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12일 황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 않은 ‘연구성과’가 있으며 “나도 속았다”라고 변명과 의혹을 쏟아낸 것도 ‘소모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논문 데이터의 조작이 어떤 의도로 누구에 의해 지시되고 진행되었는지는 학계에서 다 밝혀지지 못한 채 결국 검찰의 수사에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황 교수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와 무관하게, 이미 드러난 사실(논문 데이터의 조작,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의 부재)만으로도 한국 과학자에 의한 줄기세포 연구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었다. 국내에서는 조작과 지시의 주범과 공범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히고 처벌해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해외 과학계와 언론에서 크게 관심을 두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황우석 사태’가 일어난 한국 사회의 특성에 대해 일부 해외언론들은 관심을 갖고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하순 해외언론들, “한국 빨리빨리 문화가 ‘논문조작’ 원인” 해외언론의 이런 시각 보도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2005년 12월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줄기세포 없다”는 폭탄선언 이후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을 비롯한 해외 언론은 황 교수 사태의 원인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있다는 분석을 내보낸 바 있다. 지난달 23일 AP통신은 “조급한 성격과 높은 국가적 자부심, 국제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열망” 등 한국인의 문화가 황 교수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한국인의 성과 위주 "빨리빨리" 문화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며, 이런 한국의 문화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세계11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킨 힘인 동시에 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32명이 숨진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을 일으킨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25일 황 교수 논문 조작의 원인으로 ‘빨리빨리’ 문화를 들었다. ‘황우석 사태’ 처리수준이 한국사회 성숙정도 시금석 지난 10일 서울대의 최종조사 결과 발표, 12일 황 교수의 기자회견 이후 ‘줄기세포 논문 조작’ 건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부 해외 언론들은 이미 밝혀진 논문과 연구의 허위에 대한 관심보다 한국이 어떻게 ‘황우석 사태’를 처리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줄기세포는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만이 아니라 고속성장을 해온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드러냈고, 이를 해결하는 처리수준이 국가적 발전단계를 보여준다고 보고 있다. 지난 11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한국 복제연구 사기가 주는 교훈’이라는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적 시스템’의 문제를 짚었다. IHT “자동차·컴퓨터칩 생산방식의 생명과학 집중 ‘보기좋게 완패’” 일침 IHT는 논문 조작을 통한 황 교수의 추락이 “첨단 생명과학 열기로 치닫는 개발도상국에 중대한 교훈을 준다”며 “자동차와 컴퓨터 칩을 생산하는 그런 방식으로 인간세포를 복제해서는 안된다”는 과학 감독 전문가들의 말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이 특정산업에 대한 정부지원 등 국가적 지원에 역점을 두고 신속한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세계 제11위 경제국가로 발돋움했다”며 이는 “한국이 반도체와 조선 분야의 일본 우위에 도전하게끔 여건을 부여한 고속발전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IHT는 한국이 지난 3년간 황우석 박사를 주축으로 생명공학에서 같은 전략을 시도했으나 이런 노력은 “스펙터클하게 완패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황우석 건의 결과로 한국은 중공업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정책을 생명공학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며 “다른 나라가 개척한 기술을 토대로 한국이 올라 설 수 있었던 전자분야나 IT와는 달리 생명공학은 많은 비판을 수반하는 첨단산업분야로, 고도로 정교한 감독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보도했다. 일 마이니치, “황우석 사건은 선진국적이면서 동시에 구시대적”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15일치 신문에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 조작 사건이 “선진국적이면서 동시에 구시대적”이라는 기고를 실었다. 요네모토 쇼헤이 과학기술연구소 소장은 이 기고에서 “줄기세포 조작사건은 OECD 국가인 선진국으로서의 한국과, 가부장적이고 돈으로 사안을 움직이려는 구시대적인 체질이 남아 있는 한국사회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요네모토 소장은 “황 교수의 연구는 철두철미 데이터·사진을 조작한 것으로, 과학사에서 유례가 없고 필적하는 것은 20세기 초 영국의 필트다운사건 정도”라며 “줄기세포기술의 특허라는 최첨단기술의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시나리오에 따라 스캔들은 진행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적었다. “구시대적 면모 : 윤리무시 난자사용, 철저한 자료 조작, 정부의 눈먼 지원” 요네모토 소장은 황우석 사태의 배경에 사회 전체에 “최첨단 의료에 있어서도 한국이 초일류국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기술국가주의(테크노내셔널리즘)에 대한 열광”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번 사태에서 한국이 선진국적 면모와 후진국적(원문은 ‘구시대적’) 면모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팀은 3년간 2,061개나 되는 난자를 사용했으나 이는 일본이나 서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로, 국익을 위해서라면 연구의 룰을 지키지 않는 것도 때로는 용서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가졌다면서 이를 ‘구시대적’ 면모로 지적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정확한 기술평가를 하지 않은 채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적 면모 : 서울대 조사위의 신속한 조사와 발표, <피디수첩> 용기있는 보도” 한편 그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한국의 ‘선진국적 면모’로 평가했다. 그는 “서울대 조사위의 빠른 사실 해명은 산뜻한 선진국적 태도이며 과학 스캔들에 대처할 때의 표본을 만들었다”며 “이러한 서울대의 조처로 한국의 국제적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보았다. 또 그는 “사건의 돌파구를 연 MBC의 ‘PD수첩’도 폭풍과 같은 비난에 견뎌내 한국언론컴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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