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0 10:27
수정 : 2017.11.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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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 남현철군, 박영인군의 발인이 엄수된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영정을 들고 학교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나오고 있다. 안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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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 단원고 교사·학생 3명 영면
제주도 이사하던 권재근·혁규 부자도 장례
주검 못 찾은 관…유품과 가족 편지 채워
세월호 희생자 304명 장례절차 모두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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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 남현철군, 박영인군의 발인이 엄수된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영정을 들고 학교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나오고 있다. 안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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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환하게 웃으며 봄바람 맞으러 떠났던 단원고 교사와 학생, 푸른 꿈을 안고 제주도로 이사 가려다 아빠와 아들이 칼바람 속에 영혼이 돼 가족 품을 떠났다.
주검을 찾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이 20일 영면했다. 이들은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던 가족의 바람에 끝내 답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314일, 세월호 선체가 육지로 올라온 지 223일 만이다.
20일 오전 6시 경기도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는 양승진(당시 57살) 교사와 참사 당시 17살이었던 박영인·남현철군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주검을 수습하지 못한 이들의 관에는 선체 수색 과정에서 찾은 가방과 옷 등 유품이 채워졌다. 양승진 교사는 수색 과정에서도 유품이 발견되지 않아 생전에 학교에서 쓰던 물품과 옷가지, 고인에게 보내는 가족의 편지 등이 관에 담겼다. 발인식에는 고인들의 친구와 제자, 동료 등이 참석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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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교사, 남현철군, 박영인군의 발인이 엄수된 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양승진 교사 유가족이 영정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안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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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제일장례식장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남현철군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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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교사의 부인 유백형씨는 운구차에 타기 전 “바다에서 못 찾아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박군과 남군의 부모도 관을 운구차에 실으며 눈물만 떨궜다. 운구차 3대는 아침 6시30분께 장례식장을 떠나 20분 뒤 희생자들이 생전에 생활했던 단원고 현관 앞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영정사진을 들고 양 교사가 근무했던 단원고 건물 2층 교무실에 들른 뒤 박군과 남군이 공부했던 3층 2학년 6반 교실을 한 바퀴 돌았다.
유족들은 이날 단원고 흙이 담긴 보자기 꾸러미를 1개씩 받아들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양 교사의 어머니는 아들 영정사진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만나지도 못하고 가니 엄마 가슴에 피가 내린다. 승진아. 잘 가거라”고 말하며 오열해 주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4·16가족협의회, 단원고 교직원, 경기도교육청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안산시청 현관 앞에서 시 공무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제를 치르고 수원연화장으로 향했다. 고인들의 유품 등은 수원연화장에서 화장된 뒤 이날 오전 11시30분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안장됐다.
제주도로 이사 가려다 참변을 당한 권재근(당시 52살)씨와 아들 권혁규(당시 6살)군도 이날 영면에 들었다. 권씨 부부와 아들, 딸(권지연)은 제주도로 이사 가기 위해 인천항에서 세월호에 탔다가 지연양만 홀로 남았다. 사고 당시 혁규군은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며 탈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 가족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올해 7월11일 세월호 화물칸 2층 선수 부분에서 발견됐다.
긴 기다림과는 대조적으로 발인은 채 10여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침 6시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발인식에서는 권씨와 혁규군 유품이 담긴 관이 검은색 리무진 장의차와 버스에 각각 실려 병원을 떠났다. 권씨와 권씨의 아내 한윤지씨의 영정을 시작으로 권씨와 혁규군의 관이 뒤따르자 유족들은 “재근아~” “혁규야~”를 부르며 가는 이의 마지막을 붙잡고 오열했다.
권씨 관에는 앞서 유해가 발견돼 납골당에 안치된 아내 한씨의 옷도 함께 넣어졌다. 권씨의 형 권오복(63)씨는 “유해를 수습하지 못해 이삿짐 속에서 고른 옷가지를 관에 넣었다”며 흐느꼈다. 아빠와 아들의 관은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서 화장해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안치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탑승자 476명 가운데 희생자는 모두 304명이었고, 이날 유해를 수습 못한 5명의 발인으로 세월호 희생자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미수습자 가족 등 4·16가족협의회는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6일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놓인 전남 목포신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세월호 참사를 거울삼아 어떤 사고가 일어나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가 구성돼 한 점 의혹 없는 진상규명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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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지난 16일 오후 세월호 선체가 놓인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철재부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수습자를 가슴에 묻고 18일 목포신항을 떠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목포/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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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 18일 목포신항에서 합동 추모식을 열어 “뼈 한 조각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 비통하고 힘들지만,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했다. 헌신적으로 도와준 국민 여러분과 진도 군민, 목숨을 걸고 수색에 앞장서준 수색 현장 관계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며 3년 넘게 이어진 기다림의 시간을 정리하고 목포신항을 떠났다. 당시 운구차 행렬이 떠나는 순간 목포신항 울타리에 매달린 수만장의 노란 리본이 거센 바람 속에 온몸을 떨며 고별인사를 건넸다. “이제 안녕. 영원히 잊지 않을게. 양승진님, 남현철님, 박영인님, 권재근님, 권혁규님…”
안산/김기성 기자, 최민영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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