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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1 19:08 수정 : 2018.04.11 21:13

4·16 가족협의회와 기억저장소가 받은 세월호 부모들의 손편지 110통. 후마니타스 제공

이지성 4·16 기억저장소 소장·박주민 의원 인터뷰

세월호 부모 직접 기획하고 쓴 첫 책
손편지 110통 묶은 ‘그리운 너에게’

편지글마다 ‘꼭 다시 만나자…’
슬픔 넘어 기억하고 행동을

4·16 가족협의회와 기억저장소가 받은 세월호 부모들의 손편지 110통. 후마니타스 제공
“내 새끼… 너무 보고 싶다. 만져 보고 싶다. 안아 보고 싶다.”

“조금만 더 있다가 만나서 엄마, 아빠가 충분히 맘껏 안아 줄게. 또 사랑해 줄게.”

“잊지 않고 기억할 거지? 엄마가 꼭 찾아갈게.”(편지글에서)

세월호 유가족 110명이 직접 쓴 편지글을 묶어낸 <그리운 너에게>(후마니타스)가 9일 발간되었다. 11일 현재 교보문고가 집계한 결과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단행본은 총 78권에 이른다. <그리운…>은 피해자 부모들이 직접 기획하고 함께 쓴 첫 책이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산하 ‘4·16 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단원고 김도언 어머니)은 “참사 자체를 기록한 책과는 다른 ‘마음의 기록’으로서 진상 규명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소장과 추천사를 쓴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세월호 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단원고 김도언 엄마)과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담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4주년 맞아 유가족 110명의 육필편지를 엮은 <그리운 너에게>(후마니타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 의원은 전날 ‘세월호 엄마들’의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보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떠난 봄이면 더욱 아파하는 부모들에게 그는 “편지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슬픔을 잊고 여전히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소장은 딸 도언이와 평소에도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지만 아이들에게 비로소 처음 편지를 쓰게 된 부모도 상당수였다. ‘사랑하는 ○○에게’로 시작한 편지는 대부분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 끝맺었다.

“사람은 태어난 순서대로 가는 줄 알았어요. 우리가 먼저 가고 아이들이 나를 보내주고 그렇게 살 줄 알았죠. 아이를 먼저 보냈기에 언젠가는 다시 만나 못다 한 약속을 지키고 못다 이룬 행복을 이어나가자는 마음이 깊어요. 그래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편지에 많이 썼던 것 같아요.”(이지성)

“아이들의 희생이 의미 있는 희생이 되려면 일단 진상규명이 돼야 하고, 그래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가족분들이… (잠시 한숨) 그래야 나중에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씀을 평소에도 많이 하셨거든요.”(박주민)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했었다. 대숲의 바스락거림을 사랑했던 수정이, 노란 프리지어와 엑소를 좋아하던 지숙이, 가족의 현명한 조언자였던 아라, 뷰티 아티스트가 꿈이었던 혜경이…. 바쁜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던 태민이는 꿈에 엄마를 찾아와 먼저 떠나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영이의 시계는 바닷속에서 돌아온 지금도 열심히 돌아가며 딸을 대신해 아빠에게 말을 건다. 영석이의 친구들은 군대에 갔거나 영석이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하면서 울었고, 먼저 간 친구들이 보고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아이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많은 엄마·아빠들이 아이가 처음 세상에 찾아왔을 때, “엄마”를 불렀을 때를 떠올렸다.

“보고 싶은 우리 아이들한테 편지를 쓰게 되면 너무너무 힘들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엔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손편지를 쓰면서 세월호 참사를 다시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기운을 냈습니다. 정권이 바뀌니까 다 (해결이) 된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 아이들을 잊어버릴까 봐, 진상규명이 안 될까 봐 조바심이 납니다.”(이지성)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부모들 다수가 치료를 미루고 있다. 이 소장은 “저부터도 ‘내 새끼도 못 챙기고 못 살렸는데 뭘 잘했다고 내가 치료를 받아’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으로 치유가 되는 거고, 그날이 트라우마 치료의 시작이 될 것 같아요.”

박 의원은 “대학 때부터 철거촌이나 공장 등 현장을 많이 다녔지만,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실제 가족분들 옆에 가니까 머리 위에 번개가 치고 불이 떨어지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이번 책을 통해 부모들은 자신의 안위보다 부정의한 사회를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 죄책감을 아이들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참사 이후 부모님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굉장히 민감하고 강해지셨어요. 시간이 갈수록 제가 더 많이 배우게 되는 느낌이어서 2년여를 함께하게 됐죠.”

그해 여름, 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 국회 청원을 하면서 겪은 일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국회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하고, 민원서류 전달을 가로막고, 이동할 때는 경찰버스 밑으로 기어 다니도록 하는 등 2010년대라고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졸렬했다. “사실 가족들이나 저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사 당시) 아무것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를 보니 정말 그랬어요. 11차례 보고받아 지시했다 주장했지만 실시간 보고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고… 황당했죠.”(박주민)

많은 이들이 ‘촛불혁명’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 아이들이 잊히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 주차장에 세워졌던 정부 합동분향소가 16일 4주기 행사 직후 철거되는데,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인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은 진전이 더디기만 하다. 주민경청회 5번, 시민토론회 2번을 거친 끝에 2월 말 가까스로 부지가 확정 발표됐지만 봉안시설이 포함된다는 이유로 ‘납골당’이라며 낙인찍는 펼침막이 거리에 일제히 내걸리기도 했다.

박 의원은 “최근 일부 야당 의원님들이 (공원 조성) 반대 기치를 핵심적인 모토로 지방선거 플래카드에 넣어놓고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 당내 분위기도 일부 지역 주민들이 (공원 조성 반대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위축되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 걱정이 없진 않지만 계속해서 이게 맞는 길이라고 얘기를 해야죠.”(박주민)

이 소장은 “분향소 철거 약속을 우리가 이행하고 있으니 안산시와 정부 또한 공원 조성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경청회, 토론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오해를 푸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뛰어놀고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듣던 그곳은 안산과 대한민국의 명소가 될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뒤 부모의 슬픔을 느끼는 데 그치지 말고 기억하고 행동해주세요. 인터넷 검색 한번, 청와대 청원 한번 하는 행동이 진상규명의 출발이 될 수 있으니까요.”(이지성)

4·16 기억저장소는 12일 부모들이 직접 쓴 편지글을 볼 수 있는 누리집(www.416letter.com)을 열고 13일 저녁 7시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 1층 품다(대강당)에서 <그리운 너에게> 북콘서트를 연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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