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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5 18:15 수정 : 2018.04.15 18:49

어느덧 네번째 맞는 세월호의 봄이지만, 올해는 상징적인 변화들이 있다. 16일 경기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앞에선 처음으로 정부합동 영결·추도식이 열린다. 방송들은 4년 만에 세월호 관련 뉴스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잊지 않겠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억압했던 정부가 사라진 이제, ‘진정한 봄’을 맞기 위해 온 사회가 나아갈 때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노란 리본을 묶고 있다. 목포/백소아 기자
돌이켜보면 과연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 절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는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고, 유족들은 ‘보상금 욕심’이라며 매도·조롱당하고, 힘겹게 출범한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방해 속에 본격 활동 1년여 만에 강제로 해산됐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서로 위로하며 진실규명 호소를 멈추지 않았던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는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페이스북에 ‘완전한 진실규명’을 다짐하며 “촛불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다짐도 세월호로부터 시작됐다”고 표현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3월 1075일간의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온 뒤 미수습자 9명 가운데 4명의 유골을 찾을 수 있었다. 영원히 미궁으로 빠질 것 같던 ‘대통령의 7시간’도 검찰 수사 결과,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최순실과 회의를 한 사실 등이 밝혀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7시간’에 의문을 가진 건 단순히 그날 대통령의 행적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진실을 은폐하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영결식 뒤 정부합동분향소가 문 닫으며 논의가 본격화할 화랑유원지 일대 추모시설에 대해 인근 주민들의 찬반은 엇갈린다고 한다. 조만간 세월호 선체를 세워 남은 미수습자 수색과 사건 원인규명을 위한 조사를 진행한 뒤 어떻게 보존할지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2기 세월호 특조위)에 1기 활동을 방해해 유족들에게 고발당했던 황전원 상임위원을 그대로 다시 임명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세월호를 더이상 이데올로기 대결 속에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은 물론 기억과 애도 방안부터 안전한 사회를 향한 근본적 대책 마련까지, 4년 전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기며 다짐했던 그 마음을 떠올리며 사회적 공감대를 모아갈 때다. 그것이 별이 된 희생자들도 진정 소망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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