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14 15:20
수정 : 2018.12.1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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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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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조항 제정 31년만 첫 처벌 사례
재판부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 부당간섭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된다는 선언”
징역 1년·집유 2년… 의원직 상실 위기
이 의원, 항소 계획 묻는 취재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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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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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조항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경각심 없이 행사돼왔던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이 더는 허용돼선 안 된다는 선언입니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17호 법정. 세월호 보도 개입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가운데,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오연수 판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 이 의원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그 이유를 30여분 동안 조목조목 설명한 뒤다. 피고인석에 앉은 이정현 의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침묵을 지켰다. 방송 편성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방송법 조항이 만들어진지 31년 만에 내려진 첫 처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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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12.1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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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오연수 판사는 방송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정현(60) 의원(무소속)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형이 확정되면 이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형사 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실 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당시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은 좀 지나고 나서 해달라”, “(보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말만 바꿔서 녹음을 다시 한 번 해달라”고 하는 등 방송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방송법(제4조2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의원은 “홍보수석비서관의 지위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으로 부탁하고 사정한 것이다. 의견을 개진했을 뿐,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정당한 공보활동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 판사는 이 의원의 행위는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 간섭’으로 방송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오 판사는 “홍보수석의 요구는 보도국장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사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화 내용, 어조, 말투 등에 비춰봤을 때, 이 의원 전화는 의견 제시가 아닌 상대방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 구체적 요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방송 편성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방송 편성 개입 의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조항 의미를 살폈을 때 범죄 성립이 가능하다고 봤다. 또한 오보를 정정하려 했다면 해명 자료를 내는 등 정상적이고 공식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고 짚었다.
오 판사는 ‘정치적 의도’를 언급한 이 의원을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이 의원측은 “31년 이상 한 번도 적용된 적 없고 의미도 애매한 법률로 기소해 현역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법 절차가 이용되는 것으로, 유죄 판단이 나올 경우 대한민국 사법제도가 후진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오 판사는 이에 대해 “해당 조항이 만들어진지 상당 기간이 지나도록 기소와 처벌이 전무했던 이유는 이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언제든지 쉽게 방송관계자와 접촉해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이를 관행 정도로 치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 시스템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변호인 주장이야말로 매우 정치적이고 위험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오 판사는 “이제껏 관행적으로 언론 간섭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게도 방송법 첫 적용 대상인 피고인에게 실형을 부과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이 자신의 행위를 정상적인 공보활동이라고 생각해 처벌 위험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점, 범죄 전력이 없는 점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의원에 징역 1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선고공판이 끝난 뒤 “항소할 계획인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꾹 다문 채 차를 타고 법원을 서둘러 떠났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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