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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9 18:06 수정 : 2019.04.10 09:49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4.16연대 회의실에서 ‘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 매뉴얼 초안 검토 워크숍’이 열렸다. 4.16 연대 피해자지원위원회·인권운동사랑방·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이날 피해자 지원 내용을 담은 매뉴얼 초안을 공개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4.16연대, 세월호 참사 5주기 앞두고 매뉴얼 초안 발표
자원봉사자·민간잠수사 등 ‘숨은 피해자’ 지원 내용 담아
4.16연대 “연내 완성해 시민에 공개할 예정”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4.16연대 회의실에서 ‘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 매뉴얼 초안 검토 워크숍’이 열렸다. 4.16 연대 피해자지원위원회·인권운동사랑방·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이날 피해자 지원 내용을 담은 매뉴얼 초안을 공개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수색 작업을 하다가 다쳐서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제가 이 참사 때문에 다쳤다는 것을 증명해야 돼요. 참사 때만 ‘우리 민족의 영웅입니다’ 등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요. 저희 주민등록번호만 치면 자동적으로 치료가 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민간잠수사 하규성씨)

“자원봉사로 잠수를 하다가 체력적·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도 정부와 약속한 서약서에서 이탈이나 정보 누설 시 처벌·벌금 조항이 저를 옥죄고 있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로서 지원을 받고 싶어서 국가의 문을 두드렸지만 굳게 닫혀있었어요.” (세월호 민간잠수사 강유성씨)

“자원봉사자들의 의무사항, 사회적 기여만 강조하고 자원봉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 자원봉사자도 피해자로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산 자원봉사자 황현주씨)

세월호 참사 발생 5년 만에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이 직접 만든 재난참사 피해자 지원 안내 매뉴얼이 마련돼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4·16연대 피해자지원위원회(4·16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9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회의실에서 ‘재난참사 피해자 지원 매뉴얼 초안 검토 워크숍’을 열고 매뉴얼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에는 △재난참사에서의 피해자 권리 △재난참사에서의 피해자 지원 △피해자로 인식되지 못했던 조력자들의 권리 △재난참사 언론 보도준칙 등이 담겼다.

4·16연대는 2017년 3월16일 피해자지원티에프(T/F)를 구성한 뒤 안산 단원고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문제, 민간잠수사 지원 문제 등을 논의하다가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참사 피해자의 개념을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 등에 한정해온 관행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매뉴얼에서는 우선 세월호 참사 자원봉사자들도 ‘숨은 피해자’로 꼽았다. 박성현 4.16재단 나눔사업팀장은 “4.16연대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민간단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참사 때 많이 생겼으나 그들에 대한 지원, 피해 현황은 밝혀진 게 없다. 재난참사 수습·대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심리적·재산적 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권리를 권리라 얘기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지나왔다”고 지적했다. 박 팀장은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에 비해서 나는 적은 고통 받고 있다’, ‘저를 도와주실 거면 피해자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한다”며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늘 이들 같은 조력자들이 늘어날 텐데 그들에게 참고 견디라고 하는 건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다. 앞으로 조력자들의 권리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매뉴얼 초안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단체는 악의적인 여론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며 심리적으로 지지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민간잠수사들의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잠수사로 투입됐던 강유성(50)씨는 “처음에 투입될 때 정확한 정보 습득 없이 들어갔다. 민간 전문가들이 재난 수습에 참여할 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 보장 내용이 매뉴얼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생긴 어깨 통증으로 최근 수술을 했다는 강씨는 “부상 등 피해를 입어 국가의 문을 두드려도 굳게 닫혀있었다”며 “민간 전문가들이 재난 이후 받은 피해에 대해 지원받을 수 있는 공공기관을 매뉴얼에 명시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참사 유가족들은 피해자 지원에 소극적인 국가의 태도를 보완할 내용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영주(42)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2017년 3월31일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이 터졌는데, 사건이 재난 인정을 받은 것은 그해 7월13일이었다. 재난 인정 유무는 국가가 사고 해결 및 지원에 나서느냐, 안 나서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유가족들이 몇 개월 동안 재난 인정을 받기 위해 항의하는 동안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허경주(40)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도 “우리는 해양수산부에 사건 해결을 요청했는데, 해외 재난 사고 주무부처는 외교부라는 사실을 사고 발생 4개월 뒤에야 알게 됐다. 재난 상황에서 이런 사소한 법조문 등을 알려줄 수 있는 시민단체가 어디인지, 어디에 조언을 구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매뉴얼에 들어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난 당시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참사 당시 시민들이 재난 정보를 얻는 창구로 언론 보도에 대부분 의존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정확하지 않은 보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민간잠수사 배상웅(41)씨는 “참사 당시 ‘나이트록스’라는 잠수 방식이 수심 20m 이상으로 잠수할 경우 잠수 시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언론 인터뷰를 많이 했으나 보도를 제대로 한 언론사는 없었다. 나름 현장에서 꾸준히 일해온 전문가인데 우리의 말에 해수부도, 해경도, 언론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간잠수사 하규성(50)씨는 “언론은 오보를 내고도 문제가 생기면 기사를 내릴 뿐,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며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했으면 정정보도를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번 매뉴얼이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에서 재난 보도 프로그램의 실무서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재난 보도준칙에 대해 구체적으로 작성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매뉴얼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도 제시됐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피해자에 대한 매뉴얼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공무원 퇴출 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피해자 지원 매뉴얼에 공무원 처벌 내용이 없으면 지원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허영주 대표는 “초안 검토 후 매뉴얼을 가시화하는 자리에는 행정안전부 공무원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사 피해자 지원 정책을 끌고 갈 정부와 연계가 돼서 피해자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정부 관료들도 인식하게 해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쪽은 “매뉴얼이 완성되면 사회적 참사 특조위나 공공기관 등에 입법을 제안하는 근거 자료로 활용해 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4·16재단은 이날 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초안을 검토한 뒤 연내 시민들에게 매뉴얼을 공개할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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