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 5년의 기록
‘고통의 사전’ 표제어는 늘어나고
기억하고 되새길 장소조차 사라져
“416 가족 성장·변화 멈추지 않는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창비·1만6000원
“부러웠어요. 옆집에서 나는 라면 냄새도 부러웠어요. (…) 시간이 지나니까 꽉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더라고요. 나보다 힘든 사람도 보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여기까지 온 거예요.” (유희순, 김호연 엄마)
“이 일 겪고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준이 바뀌었어요.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가족의 재탄생이에요.” (유점림, 이지민 엄마)
“배·보상을 받았건 안 받았건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 같은 아픔을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 그분들도 가족인 거죠. 세월호 가족. 새로 생긴 가족. 크-은 가족.” (전수현, 오경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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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덕, <정지된시간-귀향.2>(2018, 한지 위에 먹, 130x90cm). 오는 16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에서 여는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4.16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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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세월호의 시간’을 따로 또 같이 겪은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들의 육성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3년 만에 다시 내놓은 ‘세월호 프로젝트’다. 참사 초기 유가족을 만나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2015·창비)은 10만부가 팔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생존 학생,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모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2016·창비)도 2만부가 판매됐다. 이번 책은 지난 5년간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416 운동’을 이끌어온 416가족협의회를 중심으로 가족이 재난을 어떻게 겪고 변화했는지 각자의 삶을 섬세하게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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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달빛이 우리를 구하다>(2015, 캔버스에 아크릴, 72.5x91cm). 오는 16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화랑전시관에서 여는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4.16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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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미류·박희정·유해정·이호연·홍은전 작가는 모두 인권운동 활동가로, 2014년 여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재난 참사를 기록해왔다. 2017년엔 세월호 이외의 재난참사 일곱 건을 다룬 <재난을 묻다>(서해문집)를 펴내기도 했다. 기록으로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 모건 스콧펙의 말처럼 죄를 밝히는 ‘유죄 평결’ 없이는 진정한 치유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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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역사책방에서 연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연계 프로그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낭독회 겸 북토크에서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가 낭독하고 있다. 4.16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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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역사책방에서 연 낭독회 겸 북토크 행사에서 <한겨레>와 만난 기록단은 이번 책의 열쇳말로 ‘시간’과 ‘관계’를 꼽았다. <금요일엔…>은 13명의 유가족을 인터뷰했지만 이번엔 4배가 넘는 57명의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을 만났다. 오랜 시간 동안 신뢰가 쌓여 인터뷰 참여 의사를 밝혀온 이들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홍은전 작가는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안 너무 슬프고 감정적으로 무거워 종종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걸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기록자들 또한 유가족들 ‘곁’에서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온 셈이다. 유해정 작가는 “5년 동안 가족들을 지킨 것도, 관계를 파괴한 것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며 “재난 피해자이자 투쟁 공동체로서 ‘416가족’이 외상 후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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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역사책방에서 연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낭독회 겸 북토크에서 안명미(문지성 어머니)가 참석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4.16 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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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유가족들의 연대가 한결같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아픈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게 더 힘들어요. (…) 저도 자기 새끼 잃었으니까 서로 다 힘들어요.” “우리도 유가족이 처음이니까. 다들 생각이 다르고 치유하는 방법도 다르고 화풀이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걸 몰랐어요.” 아이들이 잊히는 게 두려운 건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인데 어떤 아이는 많이 알려지고 나머지 아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 마음 아픈 시간을 보낸 부모도 있었다.
‘유가족의 상’을 강요하는 색안경 때문에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만날 울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안 먹고 살고 싶더라고요. 그래놓고도 너무 배가 고프니까 나도 모르게 밥통을 끌어안고 먹다가 배가 좀 차면 막 울어요….” “울기만 한다고 뭐라고 그래서 웃었더니 웃었다고 다시 뭐라고 하니까, 결국 이런 말이 나왔다니까요. ‘간간이 울어.’” “제가 그랬어요. 어차피 진실규명 길게 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웃으면서 싸우겠다. 세월호 이름을 달고 가지만 우리를 시민으로 봐달라. 동네 주민으로 봐달라.”
각자의 시간은 너무 달랐다.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았다. 어떤 가족에게는 ‘세월호’ 문제에 배타적인 보수교단까지 찾아가 지지 서명을 받아오며 “끝까지 싸우라”고 격려해주는 친지가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친척 사이 왕래가 뚝 끊겼다. 부부 사이가 좋아진 집도 있고 이혼한 집도 있다. 참사 초기가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데 팽목항이나 광화문 분향소 등 ‘장소’가 사라져가는 지금이 오히려 “굉장히 헷갈린다”는 가족들도 많다. “싸움의 시간인지, 기다림의 시간인지” 알 수 없고 더 조바심이 나면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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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교실, 안산 분향소, 광화문 분향소, 희생 학생 형제자매들이 모이던 공간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제 시민들의 기억조차 희미해질까 가족들은 두렵다. 사진은 지난 3월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에서 304명의 영정사진을 서울시청 서고로 옮기는 '이운식' 장면.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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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책에 쓴 분석글에서 변화의 싹을 발견한다. 촛불광장, 대통령 탄핵과 파면, 세월호 인양과 장미대선을 거쳐 2018년 말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격변의 시간 동안 가족들도 커졌다는 것이다. “기존 참사 피해자들은 국가의 회유와 공세를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가족협의회를 만들며 요구를 사회화했다.” 참사 유가족은 운동을 이끌며 스스로 명명한 ‘416가족’이 되었고, 초등·중학생들은 스스로 ‘416세대’라며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나 이거 시작할 때 10년 봤어. 10년 봤는데 4년 안에 우리가 이 정도 이뤘으면 성공한 거야. 어차피 1, 2년에 끝날 거 아니잖아. 난, 사람 자체가 세월호야. 긴 세월이니 오늘 또 살아 내야지.” (박혜영, 최윤민 엄마)
‘416가족’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미투’도 있고, 군대 내 사고도 있고 (…) 다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내가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정치”임을 알게 되었기에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대구지하철참사 피해자 등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연결되었고,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나 중증화상사고 경험자와 가족들도 만나 서로 경험을 나누며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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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펴낸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왼쪽부터 미류, 박희정, 이호연, 홍은전, 유해정 작가. 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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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엄기호는 책에서 “이 사회의 깊은 심연, 봉합 불가능한 균열”을 폭로하는 존재로서 유가족을 분석했다. “참사 이후 이들이 ‘동시대인’으로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현재’에 살고 있지 않다”는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처럼, 지난 5년 한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어쩌면 서로 ‘비동시적 시간’을 살아 왔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무기력하게 수긍하는 것이야말로 퇴영적인 일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독자로서 감사함과 시민으로서 죄책감, 고통을 동시에 선사하는 책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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