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5 19:52
수정 : 2019.05.08 09:19
【짬】 ‘유민 아빠’ 김영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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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12일 저녁 광주시 남구 대한성공회 광주교회에서 마련한 강연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교회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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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 김영오(51)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딸을 잃은 슬픔 외에 또 다른 세월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2014년 7월 14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그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단식을 풀지 않자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야당 의원들까지 동조 단식을 했다. 그는 46일 만에 목숨을 건 단식을 풀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의 온갖 음해와 협박에 시달렸다. 종북 빨갱이라는 막말을 들었고, 보수단체 회원들한테선 “죽이겠다”는 협박성 문자에 시달렸다. 밤에 잠이 설핏 들면 가위에 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그는 지난 1월부터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모습을 감추고 잠적했다. 지난 2월 한 방송에 출연해 진행하던 것도 중단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무서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5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가짜뉴스와 조롱은 여전했다. 그는 지난 12일 저녁 광주시 남구 대한성공회 광주교회에서 마련한 ‘세월호 참사 5주기 어떻게 기억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모임에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참가자 수가 적다고 해 가족처럼 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 주도하다
보수단체 음해·협박에 큰 고통
2017년 안산 떠나 광주 금호동으로
“안산에서조차 세월호 추모공원
혐오시설 몰리는 세태에 이주 결심
전남 무안에서 흙 만지며 살 생각”
김씨는 2017년 9월께 광주시 서구 금호동에 터를 잡았다. 안산에서 살면서 홀로 술로 의지하며 마음을 달랬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그를 위로해 준 곳이 광주였다. 안산에서 팽목까지 행진할 때도 광주 시민들이 제일 많이 반겨줬다. 진도 팽목항에 갈 때 광주가 가까워지면 유난히 4·16 리본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꼈다. 김씨는 “안산에선 지나가는 차들도 나를 욕하며 비웃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서조차 세월호 추모공원이 혐오시설로 내몰리는 것을 보며 광주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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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광주에서 열린 5·18 당시 도경 치안국장이었던 고 안병하 전 치안감의 가족들을 위해 시민들이 마련한 음악회에서 고인의 장남 안호재(맨오른쪽)씨,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고 김사복씨의 아들 김승필(맨왼쪽)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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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그는 은둔자처럼 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전남지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금호촛불 회원들과만 교류하며 살고 있다. 김씨는 “따뜻하게 맞아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옷엔 세월호 리본뿐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나비, 제주 4·3사건 기림 배지가 나란히 달려 있다. “광주에 살기 시작한 뒤 굉장히 마음이 편하다. 5·18의 아픔이 있어서인지 따뜻했다. 지나는 차량이나 시민들의 가방에도 노란 리본이 지금도 참 많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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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씨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주최로 연 근로정신대 소송 보고대회에서 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오른쪽에서 두 번째) 회장 옆에 앉아 펼침막을 들고 있다.김영오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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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엔 딸 유민이 잠들어 있는 경기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다녀왔다. 고교 중퇴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그는 유민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돈이 없어 딸에게 못 해준 것만 생각나지요. 내가 막 정규직이 돼 대학 입학할 준비를 하라고 하자 좋아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김씨는 “유민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월호 같은 사회적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기억과 관심, 동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6개월 전부터 귀농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졸업하면 전남 무안으로 귀농할 참이다. 김씨는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 땅을 밟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치유하는 또 하나의 방안은 주변에 버려진 고양이와 유기견들을 보살피는 일이다. 그는 “동물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딸이 떠나고 난 뒤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버려진 고양이(길냥이)들을 구조하고 유기견을 돌보며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요즘 집에 교통사고로 앞발이 뭉개져 버린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데 이 녀석이 제 마음을 아는지 저만 졸졸 따라다녀요.”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광주교회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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