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교육갈등 접점 찾기 ⑤
진보는 2011년 무상급식 논란이 끝났다고 여겼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미달로 사퇴하고,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것을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고 판단했다. 보수는 생각이 달랐다. 무상급식 탓에 학교시설 보수도 못하고 저소득층 복지도 축소됐다는 논리를 집요하게 재생산했다. 급기야 홍준표 경남지사는 주민투표도 없이 무상급식 중단을 감행했다.
무상급식 논쟁이 오십보 전진과 백보 후퇴를 오락가락하는 모양새지만, 진보와 보수가 ‘아이들 밥그릇’이나 가지고 싸운다고 보긴 힘들다. 사실 2001년 한국 최초로 무상급식을 시작한 곳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역구였던 경기 과천시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도 무상급식을 했다.
그런데도 보수가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논쟁을 향후 한국의 복지국가 성격과 방향을 판가름하는 힘겨루기로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무상급식은 2010년 전국구 이슈로 떠오른 이래 이른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쟁의 아이콘이 됐다. 서구 복지국가의 원형을 제시한 영국에서도 1945년 노동당 집권부터 1979년 보수당 집권까지 정권교체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논쟁이 첨예했던 전례가 있다. 한국 사회는 이 지난한 논쟁의 첫발을 뗐을 뿐이다.
진보-보수 ‘아이들 밥그릇’ 다툼 말고헌법 의무교육 범위 어디까지인지
기준·목표·우선순위 세울 필요
헌재도 “사회적 합의 등 고려를”
독일선 교통비까지 지원 법규정 국가예산 중 교육비 비중
최근 24년간 22%→15%로 줄어
“의무교육 정상화 하려면
교육재정 확대 불가피” 지적 ■ 보편·선별 복지 논쟁보다 ‘의무교육 기준’ 합의를 보수와 진보의 복지 논쟁 최전선에서 새우 등이 터지고 있는 교육계는 누리과정 예산 논란과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을 계기로 큰 교훈을 얻었다. 교육재정 문제를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프레임 안에서 다루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을뿐더러 정쟁에서 헤어나오기도 어려우리란 자각이다. 교육계에서는 다시 헌법으로 돌아가 이 정쟁을 ‘의무교육의 공적 기준’을 세우는 생산적 교육 토론의 영역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래야 애먼 아이들이 정치인들 눈치 보느라 밥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는 후진국형 촌극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봉운 경기대 교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에서 초·중등 의무교육을 규정하고 있으나, 초·중등 학비 면제를 완성하기까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반세기가 걸렸고 의무교육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시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1954년 시작돼 1959년 완성됐다. 중학교 의무교육은 1985년이 돼서야 도서벽지에서 시작됐고 도시까지 올라오는 데 17년이 걸렸다. 2002년 도시지역 중학교 의무교육이 시작돼 2004년에 완성됐으니, 초등·중학교 학비 면제에만 꼬박 50년이 걸린 셈이다. 김영삼 서울시교육청 교육복지담당 장학사는 “의무교육의 범위가 학비까지인지, 학습준비물과 체험학습비, 교복비, 급식비 등 학교 교육활동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포함하는 것인지 ‘공적 기준’이 없다 보니 학비만 지원하면 의무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독일에선 등·하교 교통비까지 의무교육의 범위에 포함해 주정부가 지원하기도 한다. 의무교육의 기간과 대상, 무상의 범위, 재원 부담 주체도 관련 법령에 구체적으로 규정해놨다. 정치권이 교육재정이 있네 없네,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싸울 게 아니라 의무교육의 기준과 목표, 우선순위를 세운 뒤 거기에 맞춰 교육재정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 사회적 합의의 시작은 헌법 비록 ‘의무교육의 공적 기준’과 관련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견해가 엇갈릴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근본 법규인 헌법이 논의의 디딤돌이자 주춧돌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 제16조에서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의무·무상교육의 원칙을 정한 이래 그 범위를 중등과 영유아 교육으로 확대해왔다. 현행 헌법 제31조 제3항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못박고 있으며, 교육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는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고 돼 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 역시 무상보육과 고교 무상교육 공약으로 당선된 만큼, 무상·의무교육의 원칙에는 진보든 보수든 공식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4월 학교급식법 제8조 제2항 등 헌법소원에서 “학부모에게 급식비를 부담하게 한 것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결정하면서도, 완전 무상 의무교육의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헌재는 당시 “학교교육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완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나 국가의 재정 상황을 도외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교육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 여부와 함께 국가 재정 상황, 국민소득, 사회적 합의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무상의 범위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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