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생명은 논리에 있지 않고 경험에 있다.” 미국의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의 말이다. 홈스 대법관은 이어 말한다. “시대의 요청, 시대의 도덕률과 정치이론, 공공정책과 본능적 직감, 심지어 판사들과 소송 당사자들이 공유하는 편견조차도 삼단논법에서 나오는 메마른 논리보다 낫다.” 사법 판단은 삼단논법으로 완결되는 깔끔한 논증 과정이 아니다. 판결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판사 자신의 경험에 의하여 형성된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대법관 후보자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그가 ‘정의’와 ‘인권’의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 나갈지를 예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라는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만난 한 젊은 검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사건을 처리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당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대의 요청을 이해할 능력도,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본능적 직감도, 권력의 남용을 통제할 용기도, 고문으로 숨진 한 젊은 대학생의 삶에 공감할 능력도, 그의 인권을 보장해줄 의지도 없었다. 더욱이 당시 ‘말석 검사’에 불과했다는 항변을 하는 후보자의 태도에 비추어 보면, 대법원 판결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대법관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라는 계기적 사건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우리 사회 평균인의 감각이라고 믿는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관한 논란의 근본적 책임은 대법원에 있다. 대법원장은 국회의장에게 친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국회를 압박할 뿐,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관련 경력을 검증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장은 밝혀진 후보자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는지, 후보자 제청을 철회하지 않고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에 관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 힘의 관계를 공정하게 반영”(최장집)하기 위한 것이다. 사법부에서 사회적 힘의 관계가 공정하게 반영되지 않을 때 ‘법의 지배’는 ‘법을 통한 지배’로 변질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이 노동자와 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적 다양성을 갖추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대법관 후보자 제청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비공개주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법관은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행 제도하에서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의 추천이 있기 전까지는 심사 대상이 되는 후보들을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대법관 후보를 공개적으로 추천하면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의 심사 대상에서부터 제외된다. 이러한 밀실주의, 비공개주의는 법관의 독립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법관의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지,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이 될 수는 없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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