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고문 경찰’도 인정한 박상옥 후보자의 부실 수사 |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외면했다는 사건 당사자의 증언이 나왔다. 검찰이 의도적인 부실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한층 커진 것이다. 당시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책임 또한 더욱 무거워졌다.
당시 검찰은 경찰의 자체 조사 결과대로 조아무개 경위와 강아무개 경사 두 명만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결론짓고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했는데, 최근 <한겨레>와 만난 강 경사는 ‘당시 검찰이 박종철씨를 담당한 주무 경찰관이 누구였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종철씨 고문을 지휘한 조 경위는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의 학원분과 1반장이었고, 강 경사는 4반 소속의 지원인력이었다. 조 경위가 휘하의 경찰관들을 놔둔 채 지원인력 한 명만 데리고 고문을 자행했다는 비상식적인 수사 결과였던 것이다. 이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공범이 더 있다고 폭로한 뒤 검찰이 2차 수사를 통해 구속한 세 명의 경찰관 중 두 명이 1반 소속이었고, 이 가운데 반아무개 경장이 박종철씨를 담당한 주무 경찰관이었다. 주무 경찰관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건 ‘수사의 에이비시’이고 그렇게만 했더라도 1차 수사가 엉터리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강 경사의 얘기다.
당시 강 경사와 반 경장을 직접 조사한 게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다. 그동안 일부 공개된 수사·재판기록을 보면, 박 후보자는 1차 수사 과정에서 강 경사에게 ‘반 경장이 주범인데 왜 강 경사가 주범자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하다가 답변이 없자 더는 추궁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보면, 주무 경찰관인 반 경장 등이 고문에 가담한 사실을 검찰이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덮고 넘어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박 후보자가 ‘막내 검사’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7일 열리는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이런 부실수사의 실체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수사기록도 낱낱이 검증해야 한다. 부실수사를 검찰 윗선이나 청와대·안기부 등의 외압 탓으로 돌린다면 그 실상이 어땠는지도 이참에 밝혀내고 관련자들의 과오를 역사에 남겨야 한다. 이처럼 검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부실수사의 장본인이 검찰을 대표해 최고 법관 자리에 오르려 한다는 것 자체가 국격을 떨어뜨리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의 신뢰를 깎아내리는 일이다. 박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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