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맨 앞)가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열사의 친형 박종부씨(뒤편 왼쪽)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에 당시 수사검사들이 충분한 진실규명 노력을 했는지 묻는 야당 의원 질의에 답하는 동안 눈을 감고 듣고 있다. 오른쪽은 당시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 고문치사사건을 전해 듣고 교도관을 통해 이 사실을 시민사회에 전파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정우 선임기자woo@hani.co.kr
1987년 1월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 보도한 신문은 <중앙일보>였다. 이후 경찰의 축소·은폐 시도 등을 잇달아 보도하며 흐름을 주도한 것은 <동아일보>였다. 당시 <조선일보>가 권력에 맞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조선일보> 기자로 펜을 잡다 12·12 군사쿠데타 뒤 전두환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로 들어간 허문도씨는 이후 언론인 대량 해직과 언론 통폐합을 주도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국토통일원 장관을 하며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에 동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7일 끝났다. 28년 전에도 별 역할이 없었던 <조선일보>에서는 이번에도 ‘문제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신문이 박 후보자에 대한 검증 취재를 얼마나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사와 칼럼을 통해서는 ‘하자가 없으니 청문회나 빨리 열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 신문은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나자 9일치 지면에 ‘고문 경찰을 증인으로 내세워 수사 검사를 심판하려 한 코미디 청문회’라는 내용의 ‘기자수첩’을 실었다. 취재할 때 쓰는 기자수첩이, 정작 취재는 하지 않고 쓰일 수도 있다는 코미디 같은 상황은 논외로 하자.
<한겨레>는 지난 1일 박 후보자가 직접 수사했던 고문 경찰관과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썼다. 세상과 절연하다시피 살고 있는 그의 행적을 찾아 한달 넘게 수소문하고, 가까스로 찾아낸 당사자를 어렵게 설득해 이뤄진 인터뷰였다. 박 후보자의 축소·은폐 동조 의혹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둘로 나눠진 상황에서, 당시 ‘검사 박상옥’의 조사를 받았던 고문 경찰은 박 후보자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최고의 취재원이다.
<조선일보>는 그 ‘기자수첩’에서 ‘박 후보자 임명을 결사반대해온 친야 성향 신문이 야당을 사전 지원하려는 취지로 고문 경찰에게 질문 공세를 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썼다. ‘박상옥 검사가 알았다면 위에 보고했을 것’,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며 <한겨레>가 보도한 고문 경찰관의 멘트까지 인용했다.
김규남 기자
그러나 <조선일보>는 박 후보자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게 왜 곧바로 ‘야당 지원 사격용’이라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이 신문에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박종철씨의 희생은 보이지 않고, 그저 여야간 셈법과 유불리의 문제만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중요한 인물의 인터뷰 발언 그대로를, 그의 혼란스런 기억이나 망설이는 심리까지 가감 없이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 저널리즘 관점에서 무슨 문제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조선일보>야말로 그동안 자신들 입맛에 맞는 누군가를 ‘사전 지원’하기 위해 기사를 써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신문이 박 후보자가 지명되기 무섭게 검증은커녕 ‘변론’에 나선 것은 왜일까? 그 속내가 자못 궁금하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관련 영상] 불타는 감자/ 막내 검사님, 그래도 대법관은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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