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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26 21:45 수정 : 2015.04.27 09:53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 인근에서 25일(현지 시작)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2015.4.25 카트만두 / 신화=연합뉴스

[네팔 교민 성상원씨가 보내온 참사 상황]

나라가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환경, 특히 사회간접자본으로 통칭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가난하기로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네팔에 최악의 지진이 강타했다. 지진이 강타한 25일 토요일은 마침 네팔의 공화국 선포일(Loktantra Diwas)로 연휴였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점심을 막 먹었거나 식사 준비를 하던 오전 11시57분, 진도 7.9의 강진이 이 땅을 흔들었다.

땅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림이 거세어졌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 역시 밥을 먹는 중이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숟가락을 놓고 “지진이다”라고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웃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우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정보가 필요했다. 간신히 연결돼 있던 통신망 3G로 SNS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계속 여진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음성 통화는 안 되고, 데이터 통신망만 간신히 작동했다.

네팔 공화국 선포일 아침 참사
전봇대 넘어지고 송전탑 무너져
카트만두 덜발광장 등 구건물 폐허
맨몸으로 최악 참사 맞서고 있어

발전소 등 사회간접시설 태부족
신속 복구 위해 외국의 도움 절실

지진으로 도시에선 전봇대가 넘어지고 지방에선 송전탑이 무너졌다. 대규모 정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요일인 26일 인도 전기 기술자들이 파견됐다. 네팔은 대부분의 전기를 소수력발전소로부터 얻는데 그 소수력발전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고산지대다. 전기가 카트만두까지 오기 위해 필요한 송전탑 상당수가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배터리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 전기가 수리되지 않으면, 이 글은 ‘1신’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지진이 들이닥쳤을 때, 네팔의 실질적인 정치권력 1인자인 수실 코일랄라 수상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 가 있었다. 의전상 국가의 대표자인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도 부재중이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은 그래서 조금 늦었다. 네팔은 2006년 왕정 타도 이후 공화국 선포만 하고 제헌헌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국가기구가 제대로 가동된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최고책임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혼란 후 네팔 정부는 내무부를 책임 부처로 내세워 재난의 피해 상황 조사와 구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구조를 위해 동원할 자원이 없는 네팔이기에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모든 학교에 일주일간 휴교령을 내렸다. 내무부는 방송을 통해 긴급 전화번호와 병상이 충분한 병원이 어디인지 파악했고, 헌혈을 하려 경우에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를 계속 알렸다.

네팔은 정말 가난한 나라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히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거기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네팔의 한 가운데로 지진파가미치지 않은 네팔의 영토는 없었다. 산악 지역에서 지진은 반드시 산사태가 따라온다. 산사태에 쓸려간 사람들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네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사망 뒤 24시간 안에 화장을 해야 한다.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주검을 빨리 찾지 못해 제 시간에 사망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지 못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두 배의 슬픔이다. 이걸 막을 방법은 사실 없다. 네팔은 장비도 없고, 무엇보다 해발 4000m 이하는 산이라 부르지 않고 언덕이라 부를 정도로 지형이 험한 나라다. 이런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를 맨손으로 수습할 방법은 없다.

그런 이유로 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 요청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취임 이후 첫 번째 방문지로 네팔을 선택할 만큼 네팔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나렌드라 모디 수상의 인도였다. 지진이 일어나고 여섯 시간 반 뒤, 인도 특별기는 구조팀과 응급의료팀을 싣고 지진 직후 폐쇄됐던 카트만두의 국제공항, 트리듀번공항에 착륙했다. 델리에서 카트만두까지의 비행 시간은 한 시간. 델리 도심에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까지 역시 차로 한 시간 걸린다. 그러니까 자카르타에 있던 모디 수상에게 네팔 지진이 보고되자마자 즉시 구조팀을 투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 명령에 따라 바로 날아온 것이었다. 또 고르카와 같이 원래 도로 사정이 극악한 지역에는 접근이 어렵자 인도 공군은 6대의 MI17 헬기를 투입했다. 인도군은 이 구조작전명을 ‘미륵불 작전’(Operation Maitri)이라 명명하고 유례 없는 속도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네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의 이런 태도에 자극받았는지 중국도 신속하게 지원을 하고 있다. 접근하기 힘든 고르카 지역엔 아예 구조대와 식량을 같이 투입했다. 

직접 이해당사자로 자신들이 뭔가 할 말이 있으면 항상 직접 하지 않고 네팔을 이용해온 양국은 대규모 재난이 벌어지자 역시 경쟁적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런 고지대에서의 구조·수색 업무는 자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가 극소수다. 무엇보다 네팔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워낙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구조에 필요한 것을 리스트로 만드는 일에도 시간이 꽤 걸리고 있다.

25일(현지시각) 규모 7.8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맨손으로 들어 올리며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의 재난대책본부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바로 그때부터 네팔 내무부는 주민들에게 건물 밖으로 나와 있으라고 권고하기 시작했다. 진도 7.9의 강진이 지나간 건물의 안전을 확인할 방법이 네팔에는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진이 있었던 25일 오후 11시57분부터 26일 오전 6시까지 진도 4.2~5.7사이의 여진이 32차례나 있었다. 여진의 공포 때문에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은 내무부의 권고에 따라 밖에서 천막을 치고 가벼운 비를 맞으며 노숙을 했다. 매트를 깐 간이천막의 가운데엔 여자와 아이들을, 그 가에는 남자들이 누워서 간신히 잠을 청하며 라디오를 들었다. 인기 있는 라디오 진행자 꼬몰 홀리가 밤새 진행하던 ‘라디오 네팔’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장비가 있으니, 내 도움이 필요한 이재민들은 이 번호로 연락해 달라”는 시청자 통화가 이어졌다. 불안정한 네트워크 사정 때문에 전화가 수시로 끊겼고 통화중에도 여진 탓에 방송이 중단되는 혼란이 있었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카트만두의 지진은 꽤 수습되었다. 18세기까지 독립된 국가들이었던 파탄, 박타푸르, 그리고 카트만두의 공동 광장이었던 덜발광장(Durbar Square)이 모두 무너져내린 데 반해 최근 건설된 건물들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네팔에는 건물의 안전진단을 할 인력도 장비도 없다. 실제로 그 건물들이 안전한지 아닌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 네팔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72시간 동안 비슷한 규모의 여진이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건물 밖에서 대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다른 문제들이 터졌다. 26일 오전 9시부터 인터넷과 3G 네트워크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정오까지 정상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기계 수리공은 아주 드물다. 또 장비를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네팔 교민 성상원.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공저자.
소박한 사회간접시설을 가지고 있던 나라에 재앙이 닥쳤다. 그 시설의 수준이 워낙 소박했기 때문에 작은 충격만으로도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는데, 회복불능의 재앙은 이 사람들에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맨몸인 이들이 최악의 참사에 맞서고 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장비와 그 장비에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 인력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재앙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데 얼마가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네팔 교민 성상원.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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