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27 20:48
수정 : 2015.04.27 23:35
무너진 건물 속 주검 계속 수습
관광지 타멜 가게·식당 모두 철시
기도 시간 알리던 빔센타워 밑동만
“진짜 큰 지진 온다” 유언비어 난무
많은 네팔인들에게 이 재난은 연대로 극복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돈벌이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택시 기사들에게는. 외신 기자들이 대거 네팔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원래 미터 없이 협상해서 타는 것이 일상인 카트만두의 택시비는 세 배 이상 뛰었다. 지진 직후부터 정전이었던 관계로 TV 없이 라디오와 SNS에 모든 정보를 의존해야 했다. 그래서 직접 현장을 살피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이 인플레이션이었다. 재난 복구 과정에서 더 많은 외신 기자들과 구호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인플레는 더 심해질 것이다.
택시기사들과의 협상에 실패해 약 10㎞를 걸어서 이번 대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컸다는 바산따뿌르 덜발광장으로 향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뿌르’는 도시를 말한다. 우리의 ’부락’이란 단어도 ’뿌르’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한자를 음역한 가차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18세기까지 카트만두 분지는 3개의 작은 왕국들이 있었는데, 그 왕국이 지금 카트만두 중심가의 바산따뿌르, 카트만두 서남쪽의 빠탄, 카트만두 동쪽에 떨어진 박타뿌르다. 8세기 정도에 형성되었다는 이 곳은 최소 500여년 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500년 이상 된 건물들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카트만두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였고, 덜발광장은 이 왕국 시절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세 왕국의 모든 덜발광장이 무너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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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지진 전·후의 모습. 사진 네팔 교민 성상원.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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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 단지들과 대형 쇼핑몰들은 겉으로는 큰 피해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규모의 대지진은 지반을 흔들어놓기 때문에 건물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네팔에는 이런 검사를 실행할만한 장비나 인력이 없다. 사실 이것이 가장 무섭다.
덜발광장의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는 26일 오후까지 계속 사망자들의 시신이 수습되고 있었다. 네팔 보이스카웃이 무너진 현장 통제에 자원봉사를 나섰다. 네팔 경찰은 무너진 덜발광장에서 수습할 수 있는 목재들은 모두 수습하고 있었다. 지진이 완전히 수습되면 복원 전문가들이 복원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혹했던 것은 빔센타워였다. 무슬림이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며 기도를 이끌던 아잔이 울려퍼지던 이 곳은 밑둥만 남고 완전히 무너졌다. 네팔에서도 아주 소수인 이들 무슬림들은 빠른 복원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네팔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가 넘는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로 치면 이태원에 해당하는 곳이 타멜이다. 타멜의 모든 가게, 식당들은 모두 철시한 상태였다. 26일 오후 3시 이후에는 정상화한다는 안내문을 붙인 가게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28일 정오 이전까진 어려울 것이다. 네팔 내무부는 최초 지진 발생 72시간까지는 안심하지 말고 건물 밖에서 지내라는 권고를 했다. 실제로 계속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가스를 쓸 수 없으니 대부분의 식당은 영업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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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무너진 현장을 보고 망연자실한 시민들. 사진 네팔 교민 성상원.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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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가 싸서 호주머니가 가벼운 한국 배낭여행자들이 애용하는 네팔 짱에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네팔인 직원들과 그 직원들의 가족, 그리고 지진으로 일정이 뒤엉킨 여행자들과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숙소로 되돌아온 한국인들이 모여있었다. 여진 때문에 네팔인 직원들과 그 가족들은 밖에서 자고 있었지만 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은 네팔 내무부의 권고를 듣지 못한 까닭에 건물 안에서 자고 있었다. 가스를 쓸 수 없어 장작으로 만든 네팔 전통 음식인 달 밧 터커리가 호텔에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식사였다. 재앙적인 지진이 닥쳤음에도 이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고 표정도 밝았다.
재난이 벌어지면 항상 퍼지는 것은 유언비어다. 지금 가장 많이 퍼지고 있는 유언비어는 '진짜 큰 지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팔 정보통신부 미넨드라 리잘 장관은 "지진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예언이라는 것은 그 속성상 어떻게 해서든 해석되기 마련"이라며 이런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재무부 장관 람 샤람 마하트는 지진으로 사망한 유족들에게 4만 네팔루피(약 42만원), 네팔 대졸 초임 두달 반 정도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네팔 상공회의소는 지진 성금으로 펀드를 구성하기로 했다. 첫날은 400만 네팔루피(약 4250만원)을 모았다.
역시 인상적인 것은 인도다. 26일 월례 라디오 연설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수상은 “나는 지금 네팔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네팔의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지원인력을 파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구조업무와 복구업무에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네팔인들의 어려움은 인도인의 어려움입니다. 우리는 모든 네팔인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며 그들의 손을 잡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인도로부터 파견된 송전선 기술자들의 덕택만은 아니겠지만, 26일 오후부터 전기 공급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인터넷도 일부 정상화 되었다. 컴퓨터로 2신을 쓸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최대 절전모드로 쓰고 있다.
많은 지인들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어떠냐고? 이재민의 삶이 편안할 수는 없다. 여진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간이천막을 친 상태에서 이틀을 잤다. 네팔 내무부의 권고에 따라 아마 내일 정오 정도에나 들어갈 수 있을 같다. 특히 26일 밤에는 상당한 폭우가 왔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천막의 안쪽, 사람의 체온으로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곳에서 잤고 남자들은 천막의 바깥 쪽에서 잤다. 천막 가에서 잤던 남자들은 대부분 흠뻑 젖었다. 그러나 첫날 계속된 여진에 겁먹었던지라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다만 하루종일 먹을 것과 천막을 새로 만드느라 피곤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잤다. 몇 번의 여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긴급 구조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지금 급한 곳은 카트만두보다는 다른 지역이다. 고르카에서 수습한 시신이 벌써 210명이 넘었다. 그 인근 지역에선 아예 마을이 사라진 곳들이 보인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긴급 구조대가 네팔인들의 손만으로는 복구할 수 없는 지역을 담당해 이 거대한 재난에서 일어서려는 네팔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네팔 교민 성상원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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