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4.29 19:37 수정 : 2015.04.30 00:15

카트만두 중심부의 툰디켈 광장에는 수십동의 천막이 난민캠프를 이루고 있었다. 한 난민 가족의 아이가 지나가는 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트만두/허재현 기자

[르포] 울부짖는 네팔

‘가장’ 아들 잃고 넋놓은 구마리
엄마의 죽음 모르는 여자아이…
구호손길 부족한 외곽은 전쟁터

최악의 지진 참사가 덮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더이상 ‘신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불행에 주민들은 허공만 바라봤다. 지난 28일 새벽 발생한 여진을 끝으로 카트만두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구호인력의 손길이 충분히 닿지 않은 네팔의 시골 지역에서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29일 오전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박타푸르를 찾았다. 박타푸르는 네팔 역사상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말라 왕국의 중세도시다. 카트만두와 박타푸르를 연결하는 아라니코 고속도로는 버스와 오토바이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한가득 짐을 들고 버스 지붕에 올라가 매서운 바람을 맞고 있다. 버스 위의 한 남성이 “카트만두를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카트만두 밖이 더 힘들어 보였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박타푸르는 카트만두와 달리 여전히 혼란스러운 전쟁터 같았다. 도시의 일부는 여전히 낡은 콘크리트와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세워진 수십 채의 집들은 통째로 무너졌고 주민들은 가재도구 하나라도 건지려고 흙더미를 헤집었다. 잘못 만지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폐허의 산에서 사람들은 장롱이나 텔레비전을 꺼내 등에 지고 사라졌다.

82시간 만에 기적같은 구조 28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네팔과 프랑스 구조대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있던 청년 리시 카날을 구조하고 있다. 카날은 지진 발생 82시간 만에 구조됐다. 카트만두/AFP 연합뉴스
박타푸르는 카트만두 인근에서 비교적 피해가 심한 곳이다. 자베르 푸르자부티(31)는 지난 25일 아내를 잃었다. 하루가 지나 아내는 벽돌 더미 안에서 눈을 감은 채 발견됐다고 푸르자부티는 말했다. 가족이 살던 무너진 집 앞에 그는 천막을 쳤다. 28일까지 이어진 여진은 다행히 가족의 새 안식처까지 무너뜨리진 않았다. 천막 안에서 다음달 돌이 되는 여자아이가 할아버지 품에 안겨 라면과자를 먹고 있었다. 아직 엄마의 죽음을 모르는 듯 해맑았다. 푸르자부티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화장장에 넘쳐나는 주검…장작 타는 소리·통곡소리 뒤엉켜

카트만두 차츰 안정 찾아가
도시 곳곳에 천막·난민생활
약탈 같은 사회적 범죄 없어

박타푸르는 여전히 ‘전쟁터’
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건지려
주민들 폐허속 장롱 등 꺼내

카트만두는 비통함 가득한 애도의 도시가 되었다. 25일 대지진 첫날은 충격이 워낙 커 아비규환 상태에 가까웠다면, 28일 기자가 도착한 뒤 지켜본 카트만두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실종자 수습과 희생자 장례에 집중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온종일 추모 음악이 흐르고, “실종자 접수를 한다”는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도시 전체가 장례식장 같은 분위기다.

“에메로 초라, 에메로 초라.”(내 아들아, 내 아들아)

28일 오후 얼굴에 가죽만 남은 듯 삐쩍 마른 여성 빈차 구마리(50)가 카트만두의 힌두교 사원 파슈파티나트 화장장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구마리는 이번 대지진으로 스물세살 된 아들을 잃었다.

“아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서둘러 밖으로 도망치는데, 그만 옆 건물이 무너져 깔렸어요. 아들은 우리 집안의 가장이었어요. 이제 우리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두 손을 모은 채 구마리는 재로 변해가는 젊은 아들의 주검을 바라봤다.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바그마티 강은 화장장을 끼고 있다. 카트만두 사람들은 이 강에서 화장을 하고 목욕을 한다. 아들은 이 강에서 목욕을 하지 못하고 화장을 당했다. 재가 된 그의 육신은 바그마티 강을 성스럽게 흘러갔다.

희생자 수습이 본격화하면서 파슈파티나트 화장장에는 주검이 넘쳐났다. 장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풍습을 가진 나라지만 이날만큼은 더러운 헝겊에 대충 몸만 가린 채 실려 오는 주검이 많았다. 밀려드는 파리 떼와 솔솔 풍겨오는 주검 썩은 내,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황망한 통곡소리와 뒤엉켰다.

도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을 볼 수 있다. ‘궁정’이라는 뜻의 두르바르 광장은 대지진 전만 해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궁터였으나 이제는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폭격을 맞은 듯 벽돌이 다 무너져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구조대원들이 헤집고 있었다. 주민들은 통제구역 밖에서 웅성거리며 구조대원의 활동 모습을 지켜봤다. 급하게 트럭에 실려 나가는 주검이 보였다. 천으로 대충 가린 주검의 발끝이 삐죽 나와 있었다. 이를 지켜본 시얌 번터(34)는 “오늘만 주검을 두번 봤다. 더이상 산 채로 나오는 사람은 없다. 조금만 더 빨리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흙더미에 파묻힌 생존자가 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시효를 다해 간다.

29일 오전 네팔의 아라니코 고속도로는 수도 카트만두를 탈출하려는 주민들이 탄 버스와 오토바이로 가득했다. 카트만두/허재현 기자
목숨은 구했어도 삶은 힘겹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도심 곳곳에 천막을 치고 난민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8일 오후 카트만두 시내의 툰디켈 광장은 수십동의 천막이 세워져 흡사 ‘난민캠프’ 같았다. 비까지 내린 탓에 바닥은 질퍽였다. 어린 딸들과 집을 나와 나흘째 천막생활을 이어가는 럭츠이(25)는 “집 벽에 금이 가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다. 비도 오고 추운데다 먹는 물도 제대로 공급받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카트만두 대부분 지역에서는 낮에 전기가 끊기고 밤에만 제한적으로 전기가 공급된다. 구호 차량이 가끔씩 캠프촌을 다녀가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구호품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카트만두는 여전히 뒤숭숭했지만 그래도 최악의 혼란은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 상점이 며칠째 문을 닫아 식료품 구하기가 어렵지만 약탈과 같은 범죄는 없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헴 쿠마르타파(40)는 “돌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곳이 네팔이다. 네팔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벌 받을 짓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트만두 외곽으로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28일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여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녀온 기독교단체 소속의 한국 의사 양현석(55)씨는 “주민들이 구호대를 발견하자마자 흥분한 상태로 달려들어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도시에서 벗어날수록 구호물품이 부족해 주민들이 더 힘들다”고 전했다.

네팔 정부는 군 인력까지 동원해 실종자 수색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해외구조팀도 속속 도착해 카트만두 이외 지역의 수색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 구조팀도 28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네팔 정부는 29일 오전 현재 집계 결과 사망자 5057명, 부상자 1만915명이라고 밝혔다.

박타푸르·카트만두/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