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편안 처리가 무산되며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국민연금 강화 방안에 관한 논의도 멈췄다. 여야 합의가 물건너간 1차적 책임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명문화’를 거부한 새누리당한테 있지만, 보험료 2배 인상론과 미래세대 부담론 등을 내세우며 세대간 갈등에 불을 지핀 보건복지부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지나치게 재정 안정화만을 강조하는 편향된 시각으로 정치권의 혼선과 연금정책에 관한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득대체율 상향 등 국민연금 강화에 관한 여야 합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결정적 요인은 보험료 두배 논란이었다. 이를 촉발시킨 장본인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다. 문 장관은 여야 합의가 이뤄진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두배 수준으로 올려야 가능하다. 보험료를 두배 올릴 자신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장관의 ‘보험료 두배’ 발언은 많은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됐다. 이는 소득대체율 10%포인트 상향 변수에 더해 2100년 이후에도 국민연금 기금을 보유한다고 가정했을 때나 성립이 가능한 주장인데도, 마치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는 것만으로 보험료 두배 인상의 결과가 빚어지는 것으로 여권과 일부 언론은 받아들였다.
문형표 장관 ‘10%p 비용’ 부풀려 ‘보험료 2배 인상론’ 적극 전파 뒤늦게 “3.5~4%p 올리면 가능”
여야합의 전후 줄곧 제동 걸어 ‘부과방식, 세대간 도적질’ 비유 ‘미래세대 부담’ 세대갈등 촉발도
문 장관의 ‘보험료 두배’ 발언은 관점에 따라 틀릴 수도 있다는 게 7일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이날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자실을 찾은 문 장관은 “연금제도의 안정성을 따져볼 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려면 3.5~4%포인트 정도의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소득대체율(40%)을 여야 합의대로 50%까지 올린다면 추가로 필요한 보험료는 3.5~4%포인트라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논의 경과
문 장관의 이날 발언은 현행 보험료(9%)를 12.5~13%로 인상하면 소득대체율을 여야가 합의한 대로 50%까지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문 장관과 복지부의 기존 ‘보험료 두배(16.69~18.85%)’ 인상 주장에 크게 못 미친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를 했어야 한다. 보험료 두배 주장에 대한 반론이 커지자 이제 와서 발을 빼는 것”이라고 짚었다.
문 장관은 국민연금 재원 조달 방식과 관련해서도 “선택의 문제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바꿀 수 있다”면서도 “연금학자 중에서는 부과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부과 방식이란 국민연금 재원을 쌓아놓지 않고 그해에 걷어 충당하는 방식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재원 조달 방식은 가입자의 보험료를 쌓아 기금화한 뒤 운용하는 ‘부분 적립 방식’이다. 앞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면서 보험료를 크게 높이지 않으면 이는 미래세대한테 부담을 미루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보다 더 강한 어조로 ‘세대간 갈등’을 표현한 것이다. 복지부의 이런 주장은 많은 언론을 통해 ‘2030세대 분노 폭발’ 등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갈현숙 민주노총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합의에 놀란 복지부가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보험료 인상론을 흘리는 방식으로 연금정치를 한 것”이라며 “‘보험료 폭탄’과 ‘미래세대 부담론’ 등으로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며 공적연금 강화에 관한 합리적 논의를 방해하는 정부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보험료를 두배 올릴 자신이 없다면 소득대체율에 손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연금 재정 계산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연금전문가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오 위원장은 “여권과 야당이 국민연금 강화에 관한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어떻게든 공적연금 강화에 관한 논의의 불씨를 다시 살려 나가는 방향으로 뜻을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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