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10 19:02
수정 : 2015.05.11 11:08
아이 키우는 집에선 부모들이 굶어도 배가 부를 수가 있다.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볼 때이다. 예로부터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고 했다. 커가는 아이들보고 ‘부모 등골 휘게 할 식충이’로 여긴다면 비정상이다. 거꾸로 늙어가는 부모더러 자식 등골 빼먹겠다고 생각한다면 정상일까?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자꾸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마련된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민연금 강화 방안이 청와대와 정부의 반발에 부닥쳐 표류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급여율(명목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논란의 불씨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한결같다. 지금의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는 혜택을 늘리는 대가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잘못된 사실이나 편견에 기초한 괴담과 궤변이 난무한다는 게 문제다. 세대간 갈등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목소리도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이다. 국민연금은 궁극적으로 미래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완충해주는 장치이다. 이런 장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면 미래세대에게도 결국 재앙이 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키우는 단골 논리는 ‘기금(적립금) 고갈론’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관리·운영의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최근 기금 고갈론이 나왔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빚을 후대로 넘기는 것은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누군지 모를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 교묘하게 자기 주장을 했다.
정부 추계에 따르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은 언젠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금은 정부가 한시적으로 관리하는 책임준비금일 뿐이다. 기금 운용수익률의 제고 등으로 고갈 시점을 설사 몇년 뒤로 미루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미봉책이다. 그렇다면 기금 고갈 뒤 국민연금 지급이 중단되거나, ‘미래세대에 대한 도적질’로만 국민연금 제도를 겨우 유지해야 하나? 문형표 장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누구나 겪게 될 노령화라는 위험을 국가가 해결해주는 제도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1조에서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해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힌다. 또한 연금급여의 안정적 지급을 넓은 의미의 국가 책무(3조의 2)로 정했고, 제도 자체의 관리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국고 부담(87조)도 명시하고 있다. 요컨대 가입자에 대한 연금 지급의 책임은 국가 몫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의 불안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를 절대 조건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적극 대응해야 한다. 복지 수준을 높여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질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많은 가입자가 보다 높은 등급의 보험료를 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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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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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재정의 안정은 연금제도의 수단일 뿐이다. 최종 목적은 든든한 연금제도를 통한 국민 노후소득의 보장이다. 늙거나 병들어 스스로 먹고살기 힘들면 기본적인 생계를 국가가 보장해주는 제도는, 지금 우리 세대가 미래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유산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을 내세워 미래세대의 부담을 짐짓 걱정하며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위선자들이야말로 미래세대의 적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하지 않는다.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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