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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0 21:44 수정 : 2015.05.12 17:58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10일 오전 춘추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우선 처리’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힌 뒤 나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후보장, 연금을 연금답게 ①]
‘보험료 2배’ ‘세대간 도적질’ ‘세금폭탄’ 등
국민연금 갈등 부추기는 복지부와 청와대

정부가 연일 검증되지 않은 수치와 편향된 주장, 거친 표현을 쏟아내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보험료 두배 인상론’과 ‘미래세대 부담론’ ‘세대간 도적질론’에 이어 이번엔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섰다.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가 ‘소득대체율 상향 반대’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되레 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세대간 연대에서 비롯하는 사회보장제도인 만큼, 정부가 제도 취지를 해치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선두엔 청와대가 있다. 청와대는 10일 국민연금 수급액을 높여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하자는 내용의 국민연금 강화 방안에 대해 ‘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국민연금은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다’, ‘2060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 그 뒤 보험료는 급격하게 오른다’ 등의 발언도 함께 쏟아냈다.

청와대 “소득대체율 50% 땐
65년간 1702조 세금 추가 부담”
구체적 산출 근거는 안 밝혀

김성우 홍보수석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인다면 앞으로 65년간 미래세대가 추가로 져야 할 세금 부담만 무려 1702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 수석은 “국민한테 세금 부담을 지우지 않고 보험료를 상향 조정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2016년 한해에만 34조5000억원의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며 “일부 주장처럼 보험료 1%만 올려도 미래세대는 재앙에 가까운 부담을 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이 꺼낸 ‘세금폭탄 1702조원’ 등의 주장은 여야의 소득대체율 50% 합의와 관련해, 지난 2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반대의 논거로 밝힌 ‘보험료 두배론’이나 복지부의 ‘미래세대 부담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발언에 해당한다.

문제는 ‘세금폭탄 1702조원’ 주장이 내년부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올리되, 보험료는 65년 뒤인 2080년까지 전혀 올리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전제 아래에서만 나올 수 있는 수치라는 사실이다. 또 그는 세금폭탄 1702조원 주장을 내놓으며, 이를 해소하려면 소득대체율 40%일 때와 50%일 때 각각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청와대가 뻥튀기 자료와 세금폭탄론을 꺼내들어 국민을 협박한다”며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문 장관이 제기한 보험료 두배론도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2013년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의 재정계산 모형을 근거로 제시한 탓에 섣부른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대학원장)는 “가입자 개인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노후생활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좀 더 자리를 잡으려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며 “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경우 국민연금 제도만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정책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짚었다.

현 정권 초기 ‘기초연금’ 논란 때
“국민연금과 연계” 밝혀 불신 자초
이번에는 ‘연금 괴담’ 진원지 역할
언론도 “기금고갈=지급불가” 부추겨
전문가들 “국가 신뢰도 떨어뜨려”

정부가 국민연금과 관련해 설익은 주장을 내놓거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 더 많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야 하는 젊은층의 국민연금 불신은 높아진다. 이런 불신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현실과 맞물릴 때마다 ‘연금을 더 받는 건 좋지만, 보험료를 더 낼 수는 없다’는 대중 저항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1년차 직장인인 이아무개(26)씨는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나중에 연금액을 더 받을 수 있다면 찬성이다. 그런데 연금을 받으려면 수십년이 남았는데 국민연금을 굴리고 집행하는 정부가 그 전에 말을 바꿀 수도 있으니 부담만 커지고 받는 건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국민연금 개편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장아무개(33)씨는 “며칠 전 뉴스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조차 소득대체율 높이는 게 ‘세대간 도적질’이라고 말한 걸 들었다. 공적연금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쓸 돈도 부족한 젊은 세대가 부담만 더 커진다면 국민연금 강화를 마냥 반기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주도한 ‘보험료 두배 인상론’과 ‘미래세대 부담론’에 이어 청와대가 10일 내놓은 ‘세금폭탄론’과 관련해 많은 연금전문가가 우려를 내놓는 이유도 이런 무책임한 표현이나 편향된 주장이 국민연금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있다. 특히 정부가 내놓는 세금폭탄론은 기금 고갈론과 함께 국민연금의 성장을 지체시킨 대표적 ‘오해’다.

역대 정부는 국민연금에 대한 뚜렷한 정책 기조 없이 그때그때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관성이 없는 국민연금 정책을 추진해온 탓에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의 불신의 폭은 좀체 줄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서도 정부의 ‘오락가락 연금정책’과 신중하지 못한 ‘연금 고갈 발표’ 등이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와 어우러지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운 사례는 한두번이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2013년 정부 출범 초기에 빚어진 국민연금 탈퇴 운동이다. 직접적 계기는 2013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기초노령연금 방안이다. 당시 인수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빚어졌다. 그에 앞선 같은 해 1월 역시 인수위는 기초연금 재원으로 정부가 걷는 세금이 아니라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표도 했다.

정부가 이처럼 공약 사항인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연금 가입자의 우려는 커졌다. 여기에 3월 말 정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의 ‘2060년 기금 고갈’ 발표까지 이어지며 국민연금 가입자 우려는 ‘국민연금 폐지 주장’으로 번졌다. 거의 모든 언론이 2060년 기금 고갈 소식을 국민연금의 주요 문제로 조명했다. 납세자 이름을 빌린 한 단체에서 벌인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은 순식간에 9만명이 서명했다.

언론이 기금 고갈을 다루는 방식은 국민연금 제도 도입 직후인 1990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비슷하다. 연금 재정의 악화나 낮은 기금 운용 수익률이 기금 고갈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국민연금 재정의 파탄을 부른다는 식이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기금 고갈을 곧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한편으로 당연했다.

국민연금 제도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만큼 앞으로 추진될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려는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국민연금처럼 공적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데 대다수 경제 매체는 단기 수익률의 증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며 “낮은 단기 수익률에 대한 언론의 문제 지적은 기금 고갈에 대한 일반적 우려와 맞물려 국민연금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국민연금 기금이나 제도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박수지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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