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친절한 기자들] 통계로 살펴본 실상
4곳 중 2곳은 야권 득표 합쳐도 새누리 득표에 미달
광주 서구을은 선거 결과와 아예 무관
관악을은 ‘득표율의 착시현상’…득표수까지 보면 사정 딴판
4·29 재보궐선거가 다시 한 번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새누리당은 서울 관악구을과 인천 서구·강화을, 경기 성남 중원구 등 수도권 3곳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주 서구을에서마저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완패했습니다. 이러면서 다수 언론과 일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이 ‘야권 분열’을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핵심 비판 대상은 서울 관악을에서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34.2%)와 분열하면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43.8%)에게 승리를 내준 정동영 무소속 후보(20.1%)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번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가 ‘야권 분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거구별로 하나씩 선거 통계 등을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 인천 서구·강화을: ‘새누리당 3대 악재’에도 이기지 못했다
인천 서구·강화을에서 안상수 새누리당 대표(53.6%)는 신동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43.3%)를 10.3%포인트라는 큰 차이로 이겼습니다. 박종현 정의당 후보는 2.9% 득표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 4월 열린 19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의 선거 결과를 보면, 안덕수 새누리당 후보(51.0%)와 민우홍 자유선진당 후보(3.9%)는 55%에 가까운 표를 가져갔습니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은 이후에 합당을 했지요. 신동근 민주통합당 후보는 40.7% 득표에 그쳤습니다. 결국 신동근 후보는 정의당과의 ‘야권 분열’로 약간의 표를 분산한 이번 선거에서 되레 표를 조금 더 얻은 겁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강화을 지역구에 있는 40개 투표소에서 지난 19대 총선에서와 같이 단 한 군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번 재보궐 선거가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안덕수 새누리당 의원이 회계책임자에 대한 징역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 △안상수 후보는 시장 재직 시절 인천을 재정 파탄으로 몰고간 흠결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 △새누리당에 ‘성완종 리스트’발 악재까지 있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판세를 뒤집지 못한 겁니다.
■ 경기 성남 중원구: 통진당 사태에도 여전히 ’야권 연대’하라?
경기 성남 중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는 55.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정환성 새정치민주연합 후보(35.6%),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던 김미희 무소속 후보(8.4%)의 득표율을 합쳐도 44%에 불과합니다. 신 후보와 11.9%포인트라는 격차가 나지요.
19대 총선에선 어땠을까요. 야권연대로 사실상 야권에서 단독 출마한 김미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45.9%를 득표해 신상진 새누리당 후보(45.3%)에게 0.6%포인트, 654표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습니다. 이런 결과를 생각해 이번에도 정환성 후보와 김미희 후보가 ‘야권 연대’를 했다면, 둘 중 한 명이 신상진 후보를 누를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19대 총선 때와 지금은 정치 지형이 달라졌지요.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등의 사태가 터지면서 ‘야권 연대’ 세력은 표를 준 지역구 시민들의 성원을 정치적으로 받아 안지 못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국가의 폭력에 대한 지적과 별개로,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대한 여론도 악화할 대로 악화한 상태입니다. 그 결과가 김미희 후보에 대한 8.4% 지지율입니다. 그러니 이 지역의 선거 결과도 “야권 연대를 하지 않아서 졌다”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 광주 서구을: ’분열’ 당사자가 ’분열’을 비판하다
30일 오후 광주 서구 금호교차로에 천정배 광주 서구을 당선자의 인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광주 서구을은 어땠을까요. 천정배 무소속 후보는 52.3%의 득표율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29.8%)를 22.5%포인트 격차로 이겼습니다. 정승 새누리당 후보는 11.0%, 강은미 정의당 후보는 6.7%를 득표했습니다. 호남에서 ‘야권 연대’는 사실 의미가 없는 개념이지요. 다만, 일부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 사이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치적 지향점이 별로 다르지 않은 천정배 후보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점에 대해 ‘분열’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천 후보는 당선된 뒤 “김대중 대통령을 이을 ‘뉴 DJ’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모아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호남에서 경쟁하겠다”고 새로운 정치세력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쪽은 천정배 후보를 ‘분열’이라는 키워드로 비판할 자격이 없을 겁니다.
조 후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이번에는 당 지도부가 공정한 경선을 보장하겠다고 했는데도 탈당하는 것이 과연 명분이 있느냐”고 천정배 후보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대 총선에서 공천 과정에 불복해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광주서구갑 지역구에서 무소속 출마해 17.8%를 득표한 적이 있습니다. 조 후보는 당시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전형적인 코드 밀실 공천으로 친노 세력의 각본에 따라 유력한 호남 정치인을 학살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과거는 잊은 걸까요.
그러니 광주 시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본때를 보여줘 속이 다 시원하다”거나 “시민들 인식은 변하는데 당만 보고 찍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라고 지적합니다. 지난해 7·30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돼 파장을 일으킨 일과 이번 천정배 후보의 당선이 같은 흐름 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무능에 대한 성찰 없이 ‘분열’이라는 키워드로 남 탓만 하는 건 여전히 민심과 괴리되어 있는 인식이라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 서울 관악구을: 새누리당 표는 그대로였고, 야권표만 줄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야권 분열’ 비판의 핵심 지역인 서울 관악구을을 살펴보겠습니다. 관악구을에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는 43.8%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34.2%, 정동영 무소속 후보는 20.1%였습니다. 기계적인 수치로만 본다면, 정태호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야권 연대’를 통해 단일 후보를 냈다면, 오 후보를 누르고 이길 수 있었을 겁니다.
특히 서울 관악구을은 전통적으로 야권 지지가 높은 지역입니다. 호남 출신 유권자도 많지만, 관악구에 거주하는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대가 가장 많고, 20~30대를 합하면 구 전체인구의 38%를 차지할 만큼 젊은층 유권자가 많은 지역이지요. 야권의 유력 정치인인 이해찬 의원이 13대 총선부터 17대 총선까지 당선된 지역으로, 1988년 이래 단 한 번도 새누리당 계열에 의석을 준 적이 없습니다.
관악은 영원한 야권 텃밭?…지난 총선의 다른 징후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결이 보입니다. 먼저 19대 총선 결과를 보면,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는 이때도 출마해 33.0%를 득표했습니다. 당시 ‘야권 연대’를 통해 출마한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는 37.9%를 득표해 당선됐습니다. 더구나 19대 총선 때도 완전한 연대가 됐던 건 아닙니다. 이 지역에서 18대 의원을 지낸 김희철 후보가 ‘야권 연대’에 불복하고 민주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요. 28.2%의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19대 총선과 견주어보면, 오신환 후보는 10.8%포인트나 더 득표했습니다.
득표율은 상대적인 지수입니다. 득표수까지 따져보면, 실상은 더욱 달라집니다. 오 후보의 이번 재보궐 선거 득표수는 19대 총선과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오 후보는 이 지역 투표율이 53.8%에 달했던 19대 총선에서 3만7559표를 득표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투표율(36.9%)이 훨씬 낮았음에도 3만3913표를 득표했지요. 그러니 재보궐 선거임을 감안해 투표율이 16.9%포인트나 떨어졌고, 19대 총선(11만3913명)보다 3만6342명이나 투표자가 적었던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는 이탈이 적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수치가 보여주는 건 ‘새누리 승리’가 아닌 ‘야권의 패배’
4ㆍ29재보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림동 신성초등학교 담장에 이 지역 후보들의 벽보가 붙어 있다. 성남/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반면, 야권 지지자들은 그만큼 투표를 덜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투표소별로 구체적인 통계를 봐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고시촌이 밀집해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대학동 4개 투표소의 투표율은 19대 총선에서 56%를 기록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30.4%에 그쳤습니다. 오 후보는 19대 총선 때 대학동 4개 투표소에서 2995표를 얻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얻은 2213표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태호 후보는 2526표를 얻었고, 정동영 후보는 962표를 얻는 등 모두 3488표를 얻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5575표)와 김희철 무소속 후보(2822표)의 득표수(8397표)의 41% 수준에 그친 거지요. 그만큼 기존의 야권 지지자들 중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정태호 후보와 정동영 후보를 모두 외면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 투표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일부에선 또 “젊은층이 투표를 하지 않아서 진 것”이라고 비판할 것 같습니다. 2008년 총선 이후에 나왔던 ‘20대 개새끼론’의 재판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비판보단 왜 젊은층이나 야권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부터 할 일입니다.
외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상징적인 단초를 하나 엿볼 수 있습니다. 4·29 재보궐 선거를 12일 앞둔 지난달 17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관악구의 한 고시식당에서 20~30대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고시생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로스쿨의 취지가 처음엔 좋았지만 이제 있는 집 자식만 가는 거 아니냐.”
참여정부 때 도입한 로스쿨 제도가 애초 취지와 달리 부유층 법조인을 양성하는 제도로 왜곡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법고시생의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임내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2~2014년 3년 동안 법무부가 임용한 로스쿨 출신 검사 114명 가운데 서울 강남 3구(강남, 송파, 서초) 고교 출신이 12.3%, 특목고 출신이 29.8%로 42.1%에 달하는 반면, 사시 출신은 31.1%에 그쳤습니다. 연간 등록금이 2000만원이 넘는 로스쿨이 2012년 기준으로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6곳이나 됩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의 대답은 “잘 몰라서 그렇지, 로스쿨에서 그냥 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학제도가 많다”였습니다.
젊은층은 야권에서 미래를 보지 못했다
물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지난 3월 비슷한 취지로 고시촌에서 한 간담회에서도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원룸과 도시형 생활주택이 난립해 주차장 문제가 심각하다. 차를 가지고 있는 원룸 거주자 문제도 꼼꼼히 챙기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차도 있고 주차 문제도 걱정하느냐”는 실소 섞인 반응을 얻었지요. 하지만 젊은층의 기대는 새누리당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안에 쏠려 있었을 겁니다. 대안이 매력적이지 못하면 당연히 투표를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층은 당장의 정권 심판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릴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이들에게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려줬을까요.
정동영 후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 후보는 선거 기간 대학동 고시촌의 한 원룸에 입주해 “고시촌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그리고 상처를 이해하고 배우려고 왔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층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힘든 이유는 윗세대들이 보여주는 암담한 미래 때문인데 관심받기식 퍼포먼스를 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정동영 후보와 국민모임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헐뜯기 비판 외에 대안 세력으로서의 진보를 대변하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새누리당을 비판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받는 새정치민주연합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을 비판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받는 국민모임의 모습만 보여줬던 겁니다.
정의당의 ‘애매한 철수’에서도 국민모임의 정치력 부족이 대표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진보결집을 위한 4자연대(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를 통한 단일화 논의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후보 등록을 했습니다. 이에 정의당 이동영 후보는 출마를 했다가 중도 사퇴를 하면서도 “정동영 후보 지지를 위한 사퇴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동당 나경채 후보와는 갈등 끝에 후보단일화에 합의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및 노동 주도 경제 회생 △보편복지 확대 △민생 경제 및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현 △핵발전소의 단계적 철폐 및 세월호 진상규명 △민주주의 되살리는 정치대개혁 등의 공동정책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지지 않으면서 각 당 지지자들 사이에 앙금만 남았습니다. 물론 정의당의 ‘애매한 철수’에는 내부의 복잡한 정치 탓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거에 나선 정동영 후보와 국민모임이 오롯이 책임을 지고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부패’로도 승리한 여당…‘분열’ 아닌 이유로 패배한 야권
재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 많은 이들이 ‘멘붕’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국민개조론’을 거론하며 시민들을 탓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어찌 보면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랜 명제에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결과가 나온 것 아닐까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승리했고, 야권은 분열보다는 다른 이유로 패배했으니까요. 20대 총선까지 1년이 남았습니다. 바닥부터 환골탈태하는 성찰과 쇄신만이 시민들의 냉소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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