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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2 18:45 수정 : 2015.05.19 11:43

그는 솔직했다. “나는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과연 그런 짐(대통령직)을 감당할 수 있을까, 때때론 고민한다”고도 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왜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얘기일까. 실은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다룬 다큐멘터리 <밋>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2012년 11월6일 밤 판세가 기우는데 캠프의 누구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패배 연설문엔 어떤 내용을 담을까”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게 밋 롬니다. 그날 롬니의 득표율은 48%였다.

다큐멘터리를 보노라면 자연스레 문재인 대표를 떠올리게 된다. 따뜻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 담백하고 꾸밈없는 태도, 흔들리는 마음…,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드문드문 ‘왜 롬니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는지 알겠다’는 평이 섞여 있는 건 의미심장하다. <허핑턴 포스트>는 “롬니는 그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걸 확고하게 지탱할 능력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다시, 문재인 대표가 위기다. 4·29 재보선 패배에서 시작된 어려움은 주승용-정청래 충돌로 이어지며 문 대표를 옥죄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에 대한 분석도 엇갈린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문 대표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당내에선 ‘친노패권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분과 공천권이 걸린 당내 싸움에선 이게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문 대표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하진 않을 것이다. ‘친노는 없다’는 말만큼이나 ‘친노패권주의 청산’이란 구호도 국민들 보기엔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더 본질적인 위기는 다른 데 있다. 지난 6일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국회를 흔들었다.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였던 박상옥씨가 대법관 인준 투표를 손쉽게 통과했고, 여·야·공무원단체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공무원연금 합의내용을 못마땅해한 청와대의 반대 탓이 크지만, 야당도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라는 조항에 스스로 발목을 묶어버렸다. 국민연금 개혁의 명분이나 사회적 기구 구성 문제는 뒤로 밀리고, ‘50%’라는 수치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장차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을 지금 당장 통과시켜야 할 법안과 연계하는 게 맞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더구나 ‘노후 보장’ 문제에선 세대간 갈등을 완화하고 젊은층의 동의를 구하는 게 긴요하다.

박상옥 대법관 인준에서 야당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 시절의 엄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걸 미안해하는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 그런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박종철씨 사건 수사검사였던 박상옥씨의 대법관 인준은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문재인 대표는 그날 젊은층과 486세대에게 동시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박찬수 논설위원
5월6일의 국회 상황은 문 대표가 지금까지 헤쳐왔고 앞으로 헤쳐나갈 수많은 결단과 선택의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걸 보면서, 문 대표가 지금 상황을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의구심을 씻어내는 게 문 대표에겐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래야 ‘야당이 집권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을 테니까.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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