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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5 15:11 수정 : 2015.05.19 11:35

지난 8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주승용 최고위원(맨 왼쪽)을 향해 “사퇴한다고 공갈을 치고 물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며 막말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주승용 의원에게 ‘막말’
계파 갈등 아닌 정 의원 개인적 캐릭터에서 비롯
전략가 ‘마속’보다는 ‘장비·여포’에 가까운 인물

“제갈량의 공개, 공정, 공평이란 ‘3공 정신’을 되새긴다면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주승용 최고위원 5월8일) 

“공개, 공정, 공평도 중요하지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결에 협조했으면 좋겠다.”(정청래 최고위원 5월8일)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결정을 내린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당분간 자숙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문재인 대표 5월13일)

저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4.29재보궐 선거 패배 뒤 벌어지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에 ‘공갈’이라는 막말이 불을 지르고, 삼국지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제갈량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말입니다. ‘공갈’이란 말은 중국식 호떡인 ‘공갈빵’을 사먹을 때 말고는 요새 자주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의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지만 위기에 빠진 제1야당에 ‘제갈량 타령’도 좀 한가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숙의 시간’도 그러고 보니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기자회견에 더 어울리는 표현 같습니다. 정치를 희화화하거나 혐오와 냉소를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하지 말자고 매일 다짐하지만 이러면 저는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ㅠㅠ

안녕하세요 정치부에서 야당을 담당하고 있는 이승준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제1야당의 내홍에 갈피를 잡느라 진땀을 빼고 있지만, 막말 논란으로 태풍의 중심에 섰던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을 이야기하며 한박자 쉬어가려 합니다.

정 의원의 ‘공갈’ 발언은 당 안팎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새정치연합 당내 의원들 대부분에게서 “정 의원이 지나쳤다”, “정치의 품격을 떨어트린다” 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출당요구까지 나왔습니다.

초기에 일부 언론에서는 정 의원의 발언을 새정치연합의 고질적인 갈등인 친노(친노무현계)-비노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레임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 발언이 계파갈등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 의원 개인의 캐릭터에서 비롯됐다는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앞에서 이야기가 나왔으니 삼국지의 인물에 비유해보면, 정청래는 전략가였던 ‘마속’보다는 ‘장비’나 ‘여포’에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장비나 여포 모두 절륜한 무용을 자랑하던 장수들로 전장을 단기필마(單騎匹馬·한 필의 말에 홀로 타고 적진을 향해 가는 모습)로 누볐던 인물입니다. 삼국지에서 장비는 장팔사모 하나 꿰어차고 장판교에서 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호령하던 일당백의 전사였고, 여포는 누구의 편도 아닌 ‘외로운 늑대’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장비는 성격이 불 같아서 삼고초려 와중에 누워자던 제갈량에 화가 나 집에 불을 지르려 했고, 조조에 붙잡혔다가 돌아온 의형 관우를 향해 ‘배신자’라고 하는 등 때론 적뿐 아니라 아군에게도 불을 뿜는 등 좌충우돌하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유비가 늘 장비를 훈계하곤 했습니다.

평소 겪어봐도 정 의원은 자신감이 지나치게 강하고,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사람입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인터넷 팟캐스트인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카페’에서 “정청래 의원은 자기 맘에 안 들면 그 사람이 어느 정파에 속했든 공격하는 정치인, 외로운 늑대”라고 한 것도 그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줍니다. 2007년 정 의원은 유 전 장관에 대해 ‘간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독설가’에게 필요한 능력인 ‘애드립’도 능한 편입니다. 정 의원의 ‘공갈’은 ‘공개, 공정, 공평’이란 주 의원의 말을 듣고 즉석에서 ‘두운’을 맞춰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가 최고위원 경선에 나오며 앞세운 슬로건인 ‘당대포’도 그를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견제·공격하겠다는 ‘당의 대포’가 되겠다는 말로,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정부여당에 대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에 해외순방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해외도피처럼 느껴집니다”라는 트윗을 날렸고, 공무원연금 합의 번복 논란과 관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지칭해 “비겁하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야당의 열성 지지자들, 특히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강한 팬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14만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그는 당 공식 회의에서 “에스엔에스(SNS)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 의원을 직무정지시킨 당 지도부의 결정에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군을 향했던 ‘당대포’가 이번에는 좌표도 타이밍도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갈 발언이 나왔던 8일은 사퇴의사를 밝혔던 주승용 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교감한 뒤 최고위원회 회의에 복귀하면서 사태를 봉합하는 국면이었습니다. 문대표를 지지하는 듯한 정 의원의 발언이 주 의원에게는 자신의 당 혁신 요구에 “폭언으로 답한 것”으로 해석된 것입니다. 주 의원은 당시 즉각 발끈해 회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주 의원에게 사과한 당일 밤에 ”후원금 보내겠다. 속시원하다. 더 용기를 내라는 격려가 많았습니다. 기죽지 않고 최전방 공격수로서 소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트윗을 올려 사과의 진정성이 입길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정 의원은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됐고, 징계여부는 20일께 결정될 예정입니다.

그의 행보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쾌감을 주지만, 반대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겐 거부감을 줍니다. 그의 독설은 ‘양날의 검’일까요, ‘막말’일 뿐일까요?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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