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25 17:15 수정 : 2006.01.26 17:11

골목길 풍경 낯선 즐거움

미술관의 걸작보다 골목길 풍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골목길처럼, 만화 가운데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또 작은 만화들이 있다. 무턱대고 꺼릴 예술 만화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 맛, 그 재미, 아는 이들은 안다. 골목길 여행처럼 낯선 즐거움을 이번 설에 만나게 되길 바란다.

<미스터 오>(루이 트롱댕 지음·샘터사 펴냄)=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동그라미씨(미스터 오)는 운명처럼 절벽 넘어 저쪽으로 가려 한다. 3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미스터 오>는 절벽을 건넌다는 단순한 설정으로 얼마나 다양한 상황이 가능한가 보여준다. 절벽의 골을 돌멩이로 가득 메워보기도 하고 인간 대포가 되어 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막 성공의 환호를 내지르려는 찰나, 시도는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갖은 고생을 하고 건넌 절벽 저쪽이 섬처럼 오갈 데 없는 또 다른 절벽이었다면…. 단조로운 설정, 단순한 캐릭터로 매번 절벽을 건너야 하는 우리네 삶을 유쾌하게 은유한다.

<헤이, 웨잇…>(제이슨·새만화책)=죽음의 순간, 눈 앞으로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모든 삶의 여정은 기억으로 환원되고 그 조각들이 모여 한 편의 만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 대한, 자신만을 위한 만화를 완성한다. 노르웨이의 꺽다리 만화가 제이슨의 <헤이, 웨잇…>은 기억의 조각들로 징검다리를 놓아 만든 만화이다. 단짝 친구, 욘과 비욘의 솜사탕처럼 달던 어린 시절이 포말처럼 사라지는 순간이 애잔하게 펼쳐진다. 70쪽 분량의 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면 다리와 그 사이를 지나는 인생의 강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찻물 우려내기>(스테판 반 딘더·allow-to-infuse.com)=칸은 시간과 공간을 담고, 말풍선을 정신을 담는다. 만화가는 연금술사가 되어 한 곳에 칸과 말풍선을 올려 놓고, 새 언어와 문법을 창조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만화를 오가며 작업해온 반 딘더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만화 언어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만화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실험이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은 형식을 견고히 하는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우려내는 짧은 순간, 우리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접속해보시라.

<아날로그 맨>(김수박·//blog.naver.com/orpeo74.do)=발신지 없는 편지를 받아들고 다부동 숲 속으로 숨어 버린 옛 친구 칠칠이를 찾아 헐랭이(만화가 김수박)는 길을 떠난다. <아날로그 맨>은 서울에서 다부동까지의 여정을 그리는 ‘로드 코믹스’이지만, 우선 이야기는 내가 서울에서 경험한 지난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곧 다부동에 도착할 테고, 친구의 삶을 들을 차례이다. 헐랭이의 여정이 헛되지 않을 거란 믿음이 가능한 건 그 발걸음이 현실 위를 걷고 있어서이다.

<페르세폴리스> 1권(마르잔 사트라피·새만화책)=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영화들과 이슬람의 가장 종교성 강한 수아파 근본주의, 그리고 고작해야 테헤란로 정도를 통해서만 상상되던 이란의 이미지는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현실성을 얻게 된다. 부르주아, 왕족의 후예, 지식인, 여성으로서 마르잔 사트라피가 들려주는 이란의 이야기는 자신이 사는 곳만큼 남들이 사는 곳도 충분히 아름답고 인간다운 곳임을 일깨워준다.

<손바닥 동화> 1, 2, 3(오나리 유코·민음사)=비 내리는 바닷가를 걷다가 파도 속에서 실연 당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대 흑곰이 눈 오는 겨울밤에 벽장에서 겨울잠을 자겠다며 찾아온다. 언니 새의 차분한 목소리를 부러워하던 작은 새 루루에게 언니는 ‘네 투명한 목소리가 좋았어’라고 말한 뒤 떠나간다. 오나리 유코가 부끄러워하며 그려낸 <손바닥 동화>의 짧은 이야기들은 별처럼 빛나고, 바람처럼 시원하며, 햇살처럼 따스하게 헐거운 마음들을 어루만진다. 무뚝뚝 고집불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읽어 보시라. 동화의 단맛에 인생의 신맛도 함께 맛볼 수 있다.

김대중/만화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