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개의 해를 맞아 삽살개 두 마리가 일출을 보러 경국 포항 월포 바닷가로 나왔다. 천연기념물 제 368호인 삽살개는 인간 세상의 모든 액을 없애준다고 한다. 촬영협조-한국삽살개 보존회. 포항/강재훈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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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100 ° ] 멍! 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멍 (개들아, 떨쳐 일어서라)
올해도 설 특집 상차림을 마련했습니다. 따끈한 떡국과 시원한 수정과와 더불어 <한겨레> 100도가 마련한 메뉴판을 펼쳐 보세요. 소설가 김종광씨가 개의 해를 기념하는 발랄한 상상력의 콩트를 보내왔습니다. 설 연휴 동안 볼 거리, 읽을 거리, 나들이할 곳과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 재미있는 퀴즈와 함께 행복한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설날, 올해가 개의 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개들이 종일 난리를 쳤다. 그 많은 개들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전국의 주요 역, 터미널마다 수백에서 수천 마리의 똥개들이 집결, 맹렬히 짖어대었다. 놀랍게들 개들은 한글이 또박또박 적힌 플래카드까지 마련했고, 종이 유인물까지 준비하여 사람들에게 강제로 쥐어주었다. 성묘객들은 개들에게 물릴까봐 개들이 준 유인물을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개들은 오후 3시를 기해 서울역, 부산역, 대전역, 대구역, 광주역 등으로 집결했다. 수십만 마리가 짖어대는 역은 개나라 같았다. 경찰은 개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마침내 최루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개들은 사람보다 비위가 약해 최루탄을 쏘아 댄 지 1시간 만에 모두 기절하거나 달아났다. 경찰들은 기절한 개들을 모조리 붙잡아 개사육장에 가둬놓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개한테 물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개들이 뿌린 유인물에 실린 글은, 오전 7시를 기해 인터넷에도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하는 그 글이다. 『인간 여러분, 우리는 ‘개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위하여(이하 약칭 <견인공세>)’ 소속 개들입니다. 인간 여러분, 지하에서 은밀히 활동했던 우리 견인공세는, 개의 해를 맞이하여, 여러분의 최대 명절 설날을 기해, 기습적으로 공개투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인간 여러분께서 그나마 개들을 관대하게 봐주고, 덜 잡아먹는 해가 개띠해입니다. 우리가 심하게 설쳐도 여러분의 개의 해니까 많이 봐주겠지 하는 비겁한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우리의 요구조건은 아래와 같이 소박합니다. 첫째 개의 해를 맞아 우리 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라. (날마다 소, 돼지, 닭 등을 먹는 인간 여러분께서는 희한하게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들은 잡아먹기는커녕 웬만한 사람보다 더 대우하더란 말입니다. 우리 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주시길 간절히 간청 드립니다. 이거 어려운 일 아니시잖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이미 경산의 삽살개와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확대해주시면 되는 겁니다.) 둘째 외국종과 똥개를 차별하지 말라.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 견인공세는 백퍼센트 똥개 무리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똥개들이 순수혈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온갖 ‘신토불이’ 찾아가면서도 애완견은 꼭 외국종으로 쓰더란 말입니다. 우리 똥개들도 애완견 잘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애완견들에게도 견인공세에 가담할 것을 줄기차게 설득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국종들은 호위호식을 버리고 우리 똥개들과 함께 할 생각이 먼지만큼도 없더군요. 외국종자들이 뭘 알겠습니까?)
첫술에 배부르랴, 우리는 우선 이 두 가지만을 투쟁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한테 물렸다는 사람이 나오면 우리는 그날 부로 투쟁을 멈추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설날에 뛰쳐나와 외칩니다. “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라!” “외국종과 똥개를 차별마라!” 성묘가고 다녀오시는 길에 우리들의 호소를 눈여겨봐주십시오. 개와 인간은 공존해야한다는, 저희들의 소박한 견해를 경청해주십시오.』
경찰은 설연휴 내내 수만 마리의 개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수확은 전무했다. 혹시 정말로 글자를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컴퓨터 자판에 개들을 올려놓았지만, 똥오줌이나 지릴 뿐이었다. 경찰은 또 이번에 잡힌 개들이 대부분 떠돌이 개이거나 개사육장에서 탈출한 개들이어서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계속해서 견인공세를 빙자한 조직의 글이 게재되고 있다. 개들의 시위인지 난동인지를 찍은 동영상은 불티나게 퍼져나가고 있다. 여기에 덩달아 신난 일부 네티즌까지, 닉네임을 개 이름 비슷하게 달고서는, 개와 인간의 공존을 표방한 글을 올려대고 있어, 인터넷은 완전히 개판이 되었다. 경찰은 이번 사태를 조장한 인간들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솜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최면술이든 초능력이든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사나이가 피리 하나로 쥐 떼를 끌고 다닌 것처럼, 몇몇 인간들이 신비한 능력으로 개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에서는 정말로 똑똑한 개들이 출현한 것이고, (생명공학이 워낙 발전한 나라이다 보니 뭔 일인들 없겠냐는 거다), 이 모든 상황이 실제로 개들이 주도한 것이라는 설을 내놓기도 했으나, 개소리로 취급되고 있다. 하여간 개들은 자신들의 해를 화려하게 열어젖힌 셈이다. 견인공세는 인터넷에 배포한 글에서,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명절 국경일 등을 기해 계속적인 시위를 갖겠다고 밝혔다. 견인공세의 요구조건은 인간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따라서 견인공세들의 발표문처럼 된다면, 올해에는 종종 개판을 구경할 수 있을 듯하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즐거움을 잃은 국민들에게 그만한 웃을 거리가 어디 있겠냐며, 일부 국민들은 벌써부터 견인공세의 2차 시위를 기다리는 눈치다. 김종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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