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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5 23:01 수정 : 2006.01.25 23:01

“수십년 정든 땅 따뜻한 인심들 어디서 찾을꼬”

“대대로 내려온 끈끈하고 따뜻한 마을 인심을 어디서 찾겠어?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인심도 사라질 텐데…”

설을 앞둔 25일 충남 연기군 남면 행정도시 예정지 주민들과 만났다.

연양학구노인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행정도시가 건설돼 고향이 크게 발전할 거라는 기대에 앞서 평생 함께 살아온 이웃들과 헤어져 떠나야 하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임헌호(77·남면 송담리)씨는 “50여 년 전 장가들고 쌀 열닷말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사 분가했다”며 “낡은 집이지만 우리 부부가 아들 3형제 키우며 늙도록 살아온 보금자리이자 유일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동네에 한섬지기만한 방죽이 있었는디 희철이(오희철씨·임씨 친구)하고 멱감다 죽을 뻔했어. 장경진이라고 3살 많은 형이 날 구해줬는데 6·25때 의용군에 입대했지. 잘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최전방에서 포위돼 이레를 굶고 숨어있을 때 보고 싶던 건 ‘집’이었다는 그는 이웃은 물론 동네 나무 한그루, 또랑 여울, 골목길 돌에도 추억이 있다고 ‘쌓인 정’을 소개했다.

임헌봉(85·남면 월산리)씨는 고향 가까이 살고 싶은데 땅 값이니 집 값이 너무 올라 큰 일이라며 한숨지었다.

“돈 없어도 노는 땅 부치고 마당에 상추며, 고추, 오이 심어 먹고 사는 건 걱정안했지. 이 나이에 몇천만원 쥐어주며 살붙이 같은 동넷사람들과 헤어져 타관살이 하라는 건 없는 사람들 죽이는 일이라는 걸 정부가 아는지 몰라.”


마을 주민들이 “차범근같이 우리 면에서 축구하면 임헌봉이었다”고 말하자 그는 손사레치면서도 “하기사 내가 없으면 축구는 하나마나였지”하며 깔깔 웃었다.

박성공(78·남면 종촌리)씨는 고향인 유성 새터말에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서자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정붙여 살아온 탓인지 또다시 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주변 땅 값 오른게 주민 잘못이 아닌데도 법에 따라 보상하니 알아서 살 길 찾으라는 식의 정책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애초 사업을 하기에 앞서 주변 땅거래 등을 제한해 사업지 주민들이 대토하도록 하는 게 옳은 거 아닙니까? 보상받아야 지금보다 못살게 되는데 누가 사업을 반기겠어요?”

그는 “돈으로 평가 못할 많은 것들을 잃는 원주민들에게 정부가 개발 이익의 일부를 주기는커녕 희생만 강요해 당최 억울하다”고 말했다.

예정지의 대부분 동네들은 이번 설과 정월대보름에 음식과 상품을 푸짐하게 마련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마을잔치를 연다. 일부 마을은 두레 형식의 공동체 모임을 ‘마을계’로 바꾸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9시 연기장례식장에서는 지난 23일 과로로 숨진 황인설(52·행정복합도시 주민비상대책위 사무국장)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는 지난 23일 오전 비대위로 출근하다 사무실 앞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

비대위 윤문수 운영위원장은 “황 국장은 예정지 저소득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는데 힘을 다하다 목숨마저 버렸다”며 “대통령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행정도시 주민이 반발하지만 보상은 적절하다’고 밝혔지만 예정지 주민의 현실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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