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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
[필진] 귀경길에 다시 본 ‘닭장차’! |
설날 밤차를 타고 연휴 마지막 날 새벽에 서울역에 내렸다. 오전 3시20분. 이 시간이면 지하철 연장운행도 끝난 터라 택시 이외의 교통 수단이 없다. 그 때 역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귀경 승객을 위해 서울경찰청에서 새벽 3시30분까지 무료로 버스를 운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구파발과 수유리 두 방면으로 간다고 하니 수유리 가는 버스를 타면 택시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역을 나서니 아니나다를까 택시 승강장 앞에 경찰들이 여럿 모여 있고 그 중 한둘은 확성기에 대고 승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아차! 그 뒤에 서 있는 두 대의 경찰버스는 이른바 ‘닭장차’였다. 짧았지만 심각했던 내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90학번으로서 3당 합당과 함께 노태우 정권 후반 3년을 대학에서 보냈던 내 또래들은 닭장차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운동을 했지만 억세게 운이 좋았던 나는 닭장차를 탔던 기억이 한 두 번밖에 나질 않는다. 그러나 닭장차가 어떤 공간인지 체험하기에는 충분한 횟수다. 군홧발과 욕설과 화이버, 곤봉이 빚어내는 환상의 오케스트라는 최상의 지옥체험이다. 그리고 엄습하는 공포감.
시위 ‘사수대’를 많이 하다보면 시위 현장의 그 공포감이 종종 내 모든 오감을 통해 스며들곤 한다. 줄지어 뛰어가는 전경들 군홧발 소리에서부터 일명 ‘백골단’ (사복체포조)의 흰빛 화이버와 청자켓, 지랄탄의 구역질나는 맛과 함께 따끔거리는 얼굴, 그리고 최루탄보다 더 음험했던 매캐한 화약 냄새에 이르기까지.
졸업하고도 한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흰색 화이버나 청자켓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손에 식은 땀이 나곤 했었다. 요즘도 곳곳에 닭장차가 줄지어 서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이 머뭇거리면서 내가 이 길을 지나가도 과연 괜찮은 것인가 몇 번이나 자문해보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택시비가 얼만데 하는 생각 가득 내 얼굴은 닭장차와 경찰들을 향하면서도 정작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그냥 지나쳐 걷고 있었다. 왜 하필 닭장차람? 이건 숫제 당뇨 환자한테 밸런타인데이라며 초콜렛 나눠주는 꼴이 아닌가.
한참 멀찍이서 택시를 잡아 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마침 귀경승객을 태운 닭장차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거의 금요일면 어김없이 전경들과 마주섰던 한국은행 앞길, 명동입구와 을지로를 오늘은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대신 설날 잘 보내고 귀가하는 시민들의 환한 얼굴을 싣고 내달린 것이다. 세월은 이리도 좋아졌는데 나는 아직 노태우 정권에 의해 이상하게 길들여진 파블로프의 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 톱뉴스를 장식했던 ‘동백림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기껏 학생운동 몇 년 했던 ‘후유증’이 이만하다면 수십 년을 ‘간첩’으로 살아야 했던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조작이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는 으레 독재정권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닭장차만 보고도 가슴이 금즉하게 되고 보니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부도덕한 정권이 오로지 자기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부당하게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참으로 몹쓸 짓이 아닌가.
아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부친의 잘못을 대신해서 제발 사건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와 사죄의 한마디를 꼭 건네주기 바란다. 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제는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런 끔찍한 과거는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과거 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에 대해 끝내 침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원인모를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박근혜 대표를 ‘유신의 딸’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택시비가 8500원 나왔다. 닭장차를 탔으면 아마 5천원 정도는 아꼈을 게다.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 속의 그 공포감이 아직은 그보다 조금 더 비싼 모양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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