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 신뢰 못 주는 대통령의 ‘메르스 대응’ |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메르스 대응을 위한 민관 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했다. 국내에서 환자가 발생한 지 14일 만에 열린 첫 대통령 주재 회의다. 그동안 온 나라는 극심한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버렸다. 엄마들은 아이를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길 두려워하고 노인들은 외출을 꺼리고 군에 아들을 보낸 부모는 흡사 전쟁터에라도 내보낸 양 불안해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통령은 무얼 하다가 이제야 긴급회의를 연 건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국민을 더 답답하게 하는 건, 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다. 정부 대응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여러 지시를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믿음을 줄 만큼의 진정성을 느끼긴 어렵다. 지금까지 정부는 뭘 했느냐고 국민은 묻는데, 죄송하다거나 책임을 느낀다는 말 한마디 없다. 몇몇 지시사항이 있긴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대책본부 책임자로부터 익히 들었던 내용의 반복이다. 그 말대로만 됐다면 사태가 이렇게 악화하지도 않았을 거고 국민이 공포에 휩싸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긴급회의를 주재한 바로 그날 국민들 관심이 매우 높은 사안에서 정부 부처가 제각기 딴소리를 냈는데도 대통령은 이에 관해 질책이나 반성은 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책임자는 “일선에서 학교를 휴업하는 일은 의학적으로 맞지 않고 옳지 않다”고 밝혔다. 바로 그 시각, 서울의 정부청사에선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상황에 따라 학교장이 예방 차원에서 휴업을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은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학교 휴업 문제에서 부처들이 다른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과연 이게 정상적인 정부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게 국민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핵심 현안이나 정책에서 이견을 조정하고 통일적인 대응방안을 정할 책임은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큰 규모의 비서실을 두고 각 부처의 유능한 인력을 뽑아 올린 이유가 여기 있다.
국회 및 여당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일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당정이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국정 현안을 놓고 조율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당정협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눈엔 국회법 개정안만 중요하고, 메르스처럼 국민 생명과 안전이 걸린 사안은 아예 논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런 인식을 하고 있으니 청와대 긴급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메시지가 저렇게 한가할 수밖에 없고, 일선 정부 부처들이 사활을 걸고 메르스 대응에 나설 리가 없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의 전염병 대응과 이번 메르스 대응이 큰 차이를 보이는 근본 이유가 여기 있는 게 아닐까.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메르스 퇴치를 최우선 현안으로 놓고 국회 및 여당과 긴밀히 협의해서 총력대응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청와대가 국정 사령탑으로 정부 부처들을 확실하게 통제하면서 단일하고 효율적인 대책을 내놓고 집행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현 상황을 진정시키고 끝없이 확산하는 국민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수 있다. 대통령의 위신과 명예를 국회와의 싸움에 걸 게 아니라, 국민 안전과 직결된 이런 데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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