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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4 19:44 수정 : 2015.06.05 10:24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자전거를 탄 한 시민이 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오거리 인근 텅 빈 상가 앞을 지나가고 있다. 평택/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사 가고 싶어”

“평평한 연못이라는 뜻의
살기좋은 도시
순식간에 망가져버린 느낌”

“걱정돼서 이사라도 가고 싶은데 그게 어디 쉽나요?”

4일 낮 경기 평택역 앞에서 만난 직장인 박아무개(43)씨는 “고향을 잠시 떠날 생각도 했다”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안 하고, 꼭 나가야하면 지금처럼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했다. 김씨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사 가고 싶었던 건 처음이다. 수해도 안 나는 살기 좋은 동네였는데 정부는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한 거냐”고 했다.

그의 말처럼 평택이 “이렇게” 된 것은 중동급성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이 평택에 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와 직간접 접촉으로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는 30명이나 된다. 이날 평택시내 번화가는 한낮인데도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 지나가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나왔다는 직장인 장아무개(38)씨는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시간인데 요즘은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저녁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우리 회사도 이번주 저녁 회식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이 지역 세무사인 장영진(39)씨는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말이 돌아서 버스에도 사람이 없다. 나도 직업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걱정이 크다”고 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후방 피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택 비전동에 사는 직장인 서범석(40)씨는 “지난 월요일 학교가 휴업하자마자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7살 딸을 처가가 있는 충북 괴산에 데려다주고 왔다. 직장 동료들 중에는 전남 해남이나 부산 등 멀리 떨어진 처가에 자식들을 데려다 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인 이아무개(38)씨도 “지난 2일 아내와 함께 아들 형제를 경남 진해 처가로 보냈다. 나는 돈을 벌어야하니 못 가더라도 처자식을 그대로 두기는 찜찜했다”고 했다.

외출을 극도로 꺼리고 친척집 피난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지역상권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메르스 걱정에 매상 걱정까지 해야한다. 평택역 광장 앞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신아무개(38)씨는 “민방위 훈련하는 것처럼 1주일 내내 거리에 사람이 없다. 매출도 반토막이 났다. 메르스보다도 장사가 안돼 죽겠다”고 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사장 이아무개씨도 “아이엠에프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 오늘도 겨우 만원어치 팔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인근 미용실 주인은 “머리하러 오는 손님도 확 줄었다. 이렇게 계속가면 가게 임대료도 못 낼 형편”이라고 했다.

평택 오산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한국군 1명이 전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송탄 지역상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군당국이 곧바로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오산 공군기지 공보장교인 강민영 대위는 “국방부 지침에 따라 어제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고 했다. 부대 앞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66)씨는 “어제부터 손님이 없다. 군인들 보고 장사하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큰일”이라고 했다.

지역상권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는 곳은 약국이다. 비전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이아무개씨는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의 매출이 두배가량 뛰었다. 손소독제는 없어서 못 팔지경이다. 장사는 잘되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고 했다.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은 지난달 29일부로 폐쇄된 상태다. 텅빈 병원 주변에는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근처 주유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밤에 불꺼진 병원을 보고 있으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평택이라는 이름이 평평한 연못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살기 좋은 곳인데 순식간에 도시가 망가져버린 느낌”이라고 했다.

평택/오승훈 기자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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