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중국 등에서 한국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입국하고 있다. 인천공항/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요즘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은 혹시라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걸려 위험해지기 전에 메르스 기사 쓰다가 과로사하겠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새벽 1~5시에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를 보내오니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메르스 공포에 떨고 계실 텐데, ‘안녕하냐’고 물어보기가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인사는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의료전문기자로 일하는 김양중입니다. ‘친절한 기자’가 되어 기사를 쓰라는데, 오늘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되어 친절하게 전해드릴까 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바이러스가 전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중동 지역에 있는 박쥐와 낙타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사막이 많은 동네라 사람은 물론 다른 동물도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수가 많은 낙타에 기생해서 살았는데, 종족을 유지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소에 여러 질환을 앓고 있어서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의 재빠른 번식을 막지 못해 숨지기도 했지만, 원래 우리의 목적은 종족 번식이거든요. 우리가 살 터전인 숙주,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괜히 손가락질하면서 욕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중동에서 우리 때문에 숨진 사람들이 지난 3년 동안 450명쯤 됩니다. 치사율이 40%라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만난 10명 가운데 4명이 숨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요. 우리가 터를 잡아 살려고 들어갔는데, 우리에게 저항하는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 속에선 살 수가 없어요. 물론 이런 사람들은 증상을 거의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이 보는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도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만명 정도가 우리에게 감염돼 400명 정도만 숨졌다는 연구 결과도 나옵니다. 실제 치사율은 1%, 즉 우리를 만난 100명 가운데 1명꼴로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사람과 공존하면 좋지, 숙주인 사람을 죽여서 뭐하겠습니까? 사실 한국까지 올 마음이 없었는데, 중동에 사는 우리들을 사람들이 비행기로 실어 날랐습니다. 운반자가 입국 당시에 별 증상이 없어서 공항 검역은 무사 통과했습니다. 60대 후반 노인이라 면역력이 높지는 않아서 우리들이 잘 번식할 수 있었고, 마침 같은 병실이나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도 옮아가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사람들이 딱딱 붙어서 살지 않았는데, 한국은 병실도 좁은데다가 그 좁은 공간에서 많은 환자가 같이 있다 보니 옮겨다니기 유리했죠. 게다가 병원이라는 곳이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거의 다잖아요. 우리가 살기에는 유리했죠. 한국의 보건당국이 우리의 존재를 알기 이전에 열심히 다른 사람에게도 옮겨다녔는데, 나중에 보니 환자들이 우리를 또 다른 병원으로 옮기더라고요. 사실 우리들은 밀접하게 접촉해야 겨우 옮길 수 있는데, 사람들이 기침을 하고 다니고 우리가 많이 들어 있는 호흡기 분비물을 다른 사람에게 묻히고… 그렇게 해서 잘 옮겨다닐 수 있었습니다. 보건당국의 허술함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지요. 이미 많은 환자들에게 옮겨 살았는데, 이 환자들이 병원의 다른 층으로 가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도 말리지를 않더라고요. 그 덕분에 우리는 평택에서 벗어나 서울 구경도 했고, 우리의 번식을 막으려는 의료진을 숙주 삼기도 했죠. 이제는 잘하면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로도 이사갈 기회를 잡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터전을 잡아 살 수도 있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나쁜 존재가 아닙니다. 참고로 우리가 사람보다 지구에 더 일찍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옮겨다니지 않도록 손을 잘 씻고, 호흡기 분비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으면, 우리를 만날 기회는 별로 없답니다. 평소 건강한 사람은 우리를 만나도 크게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우리 그런 사람 안 좋아해요. 붙어살기 힘들 거든요.
김양중 사회정책부 의료전문기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