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시골 노모 삼성서울병원 모셨다가
응급실서 감염…병문안 간 사위도 확진 입원
딸은 별도 병실 머물며 보호장비 착용 면회
대학·고교생 두 아들, 인터넷으로 생필품 조달
“엄마, 지병에 고령인데 혹시나…” 딸 울먹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 죽어도 좋으니 데리고 나가줘.” 유리창 너머에서 노모(81)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가족들에겐 창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간호사가 양쪽의 대화를 전달했다. 격리실에 갇힌 이아무개(47)씨의 어머니를 사람들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50번 환자’라고 부른다.
이씨의 어머니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된 건 지난 6일이다. 지난달 27일 ‘앞이 잘 안 보이고 머리가 어지럽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게 화근이었다. 메르스 ‘슈퍼전파자’로 꼽히는 14번 환자(35)도 그날 이 병원에 입원했다.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치료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10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막내딸 이씨가 말했다.
‘뇌경색이 심각하지 않으니 일주일이면 퇴원할 것’이라던 의사의 전망은 빗나갔다. 3일 퇴원할 것으로 예상했던 어머니는 6일 확진과 함께 격리병실에 고립됐다. 폐렴 증세까지 나타나 지난 8일엔 불안정 환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불똥은 가족들한테도 튀었다. 함께 응급실을 찾았던 이씨의 두 오빠와 언니, 남편 정아무개(48)씨도 메르스 검사를 받고 모두 자택격리됐다. 지난 7일 정씨도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날부터 이씨 가족에겐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경찰은 이씨 부부가 사는 아파트 앞에 차를 대놓고 이들이 집 밖을 나서는지 지켜봤다. 이웃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병원 격리’를 택했다. 이들 부부가 보건소 구급차를 타고 집을 떠난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40대 후반 남성이 메르스 1차 양성 반응이 나왔으니 집 밖으로 다니지 마십시오.” 이들이 살던 아파트 동수까지 노출됐다.
삼성서울병원 쪽의 대응은 우왕좌왕이었다. “(남편이) 2차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다”고 했다가 이내 “잘못 알았다.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고 번복했다. 남편은 결국 지난 9일 ‘99번 확진 환자’가 됐다.
정부와 병원엔 일관된 ‘격리 지침’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는 “남편이 입원하면 가족들이 아예 면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비록 격리실 유리창을 통해서지만 그동안 어머니의 면회는 가능했던 터였다. 의사는 “그동안 어머니 면회를 시켜준 건 우리 잘못이었다. 확진자는 원칙적으로 면회가 안 된다”고 해명했다. 면회 여부를 두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론이 나지 않자 경찰력이 동원됐다.
방호복을 입고 온 경찰은 시장 명의의 ‘입원치료 통지서’를 정씨에게 내밀며 “입원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고 경고했다. 결국 병원 밖에서 5시간 동안 입씨름을 하고서야 양쪽이 절충했다. ‘이씨가 병원을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병실에서 지내며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면회를 하는 건 허용한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가족은 ‘메르스 이산’을 견디고 있다. 병원에서 지내는 이씨는 자신이 불편한 건 견딜 수 있지만 가족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은 아파트에 자택격리돼 잠복기(14일) 동안 인터넷 쇼핑으로 생필품을 주문해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돌멩이를 씹는 것 같다”며 끼니를 잘 잇지 못한다. 이씨는 “정부에선 어떻게 전파를 막을지만 이야기하지, 환자들을 어떻게 돌볼지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노모의 병세가 걱정이다. 그는 “만약 어머니가 상황이 더 나빠졌는데도 병원에서 못 만나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이날 경북 영양에서는 권아무개(59)씨가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자택에 격리돼(이후 음성 판정), 간암으로 투병하던 남편(70)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메르스 퀴즈] 메르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로 촉발된 전염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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