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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6 09:26 수정 : 2018.10.07 09:42

2015년 6월17일 42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 김정옥(가명)씨가 서울의료원(서울 중랑구 신내동) 음압병실에서 사망한 뒤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간호사가 빈 침상을 소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메르스,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5년 6월17일 42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 김정옥(가명)씨가 서울의료원(서울 중랑구 신내동) 음압병실에서 사망한 뒤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간호사가 빈 침상을 소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3년 만에 찾아온 메르스가 큰 피해 없이 진화되고 있다. 확진 환자는 9월17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새 환자가 나오지 않으면 10월16일께 메르스 종식 선언(세계보건기구 기준 마지막 환자 완치 28일 뒤)이 예상된다. 2018년 메르스가 종식되는 이튿날 종식되지 않은 고통이 법정에 선다. 3년 전 메르스로 사망한 한 여성의 죽음을 둘러싸고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지난 3년 동안 메르스 사망·확진·격리자들이 대한민국과 의료기관들을 상대로 제기한 13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익소송)이 ‘메르스 종식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 진행돼 왔다. 42번째 확진자이면서 20번째 사망자인 이 여성은 당시 ‘메르스 행정과 정치’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입원~발병~확진~사망 과정엔 정부·병원의 비밀주의와 방치된 감염 관리, 정치적 누락과 은폐가 집약돼 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감염병으로 재앙에 가까운 피해가 닥쳤을 때 ‘국가와 의료기관의 책임과 한계’를 묻는 법적 싸움들을 전한다.

죽음을 규명하는 재판에서 정작 죽음이 설명되지 않았다.

“원고들의 주장들은 모두 그 근거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2018년 4월11일 피고 대한민국 준비서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018년 8월28일 피고 평택성모병원 준비서면)

죽음의 책임을 묻는 유족들에게 국가와 의료기관은 책임 없음을 주장했다. 죽음의 책임이 ‘근거 없으므로 기각’되고 나면 죽음의 이유를 따지는 질문도 갈 곳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죽었나.

잊힌 죽음과 소송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2015년 6월10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 사는 박경란(가명)은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울며 글을 올렸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 기사를 글에 붙였다. 간호사들이 환자 상태를 지켜보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사진 기사로 물려 있었다.

서울의료원(중랑구 신내동) 음압병동의 시시티브이가 7등분 된 화면 안에 5명의 환자를 비췄다. 화면 왼쪽 상단에서 얼굴을 산소호흡기로 덮은 환자가 위중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엄마예요.”

보지 못한 10여일 사이에 알아볼 수 없게 된 엄마를 딸은 알아봤다. 엄마의 사진은 이튿날 발행된 신문(6월11일 <한겨레> 5면)에 ‘CCTV에 비친 격리병동’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7일 뒤 엄마의 병상 사진(6월18일 <한겨레> 3면 ‘땀범벅에 시야는 흐릿…우리도 두렵다, 하지만 환자들 있으니’)이 다시 신문에 찍혔다. 엄마의 병상에 엄마가 없었다. 방호복으로 온몸을 감싼 간호사가 엄마 대신 빈 병상 옆에 서 있었다. 사진 아래 붙은 설명이 상황을 전했다.

“17일 오후 서울의료원 격리병동 간호사들이 이곳에서 숨진 환자의 침대를 소독하고 있다.”

2015년 6월10일 서울의료원(중랑구 신내동) 음압병동의 폐회로텔레비전이 환자들을 비추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서 얼굴을 산소호흡기로 덮은 김정옥(가명)씨가 위중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엄마, 김정옥(가명·당시 54).

그는 2015년 ‘42번째 메르스 확진자’였다. 첫 확진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됐다. 확진 발표(6월6일) 11일 뒤 20번째 사망자(6월17일)가 됐다. 메르스 최초 발생 이후 평택성모병원은 정부와 보건의료 당국의 관심이 집중되는 현장이었다. 그의 죽음은 ‘메르스 행정’의 외곽이 아닌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지난 9월8일 3년 만에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 9월17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10월16일엔 메르스 종식 선언(세계보건기구 기준 마지막 환자 완치 28일 뒤)이 예상되고 있다. 2018년 메르스가 종식되는 다음날 종식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 법정에 선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감염병으로 재앙에 가까운 피해가 닥쳤을 때 국가와 의료기관의 책임 한계를 가리는 법적 싸움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익소송 13건)이 ‘메르스 종식 국가’의 관심 밖에서 진행돼왔다. 김정옥의 ‘잊힌 죽음’을 둘러싼 재판은 10월17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86명 감염. 38명 사망.

2015년 5월20일 첫 메르스 확진부터 12월23일 종료 선언까지 한국 사회는 중동 낙타가 아닌 사람이 옮기는 감염병의 공포로 떨었다. 경실련은 메르스 피해자들(사망자 유족과 확진·격리자 34명)을 모아 그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과 병원들을 상대로 13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정옥의 유족도 원고에 포함됐다. “환자 격감을 우려해 감염병 발생 사실을 숨겨 많은 환자들에게 감염과 사망에 이르게 한 의료기관과 메르스 감염병 관리 등 공공의료체계에 실패한 국가 등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물어 국민의 생명 보호와 공공의료의 확충을 촉구하고자 한다”고 경실련은 소송 목적을 밝혔다.

메르스 소송은 감염병을 자연재해로만 치부하지 않고 재해로 초래된 재난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구멍 난 시스템이 천재지변 뒤에 숨을 때 누군가의 죽음은 ‘날벼락’이 되고 만다.

재판 진행은 더디다. 소송 3년 동안 6건만 1심 이상의 선고가 나왔다. 메르스 감염 정보가 부족한 개인들이 국가와 의료기관을 상대로 책임을 규명하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선고된 6건의 경우 4건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국가와 병원에 일부 과실이 있더라도 환자의 감염·사망과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봤다. 돌보던 시각장애인과 강동경희대병원(76번째 환자 입원) 응급실을 찾은 활동보조인(173번째 확진자)의 사망 사건은 1심에서 기각(지난 8월21일)됐다. 고인이 피고 병원(강동성심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강동경희대병원 방문을 밝히지 않은 사실이 근거로 제시됐다. 의도적 회피가 아니라 의료진의 적극적 확인이 없었기 때문이란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병원의 같은 상황’을 두고 재판부마다 다른 결론을 내기도 했다. 16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된 38번째 환자(첫 40대 사망자)의 죽음에서 재판부는 국가·병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전 대청병원에서 두 사람은 동일 병실을 사용(5월14~28일)했다. 시기상 병원이 고인의 발열(5월16일)을 메르스로 의심하긴 어려웠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충남대병원으로 옮겨간 16번째 환자의 확진일이 5월31일이라는 이유였다. 1심(지난 1월23일)과 항소심(6월14일)에서 모두 원고가 패했다. 유족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2018년 메르스 종식 앞두고 있으나
3년 전 사태 때 고통은 ‘현재 진행’
경실련 공익소송 13건 절반만 선고
선고 재판의 절반 이상이 원고 패소
재판부마다 같은 상황 다른 판결도

‘42번째 확진·20번째 사망’ 김정옥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입원
병원 지시대로 따르다 감염·사망
국가·병원, 발병 사실 알리지 않고
두 병동 환자 섞고 출입·면회 방치

두 사람의 병실엔 30번째 환자도 있었다. 그는 5월22일부터 28일까지 같은 병실을 썼다. 평택성모병원(5월1~4일)에 입원했던 16번째 환자는 22일 고열로 대청병원에 내원해 두 사람의 병실로 배정됐다. 1심(2017년 1월19일)에서 패소한 30번째 환자는 항소심(지난 2월9일)에서 승소했다. 법원이 메르스 사태의 국가 책임을 인정(16번째 환자 역학조사 부실 등 1천만원 배상)한 첫 판결이었다. 국가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급심의 서로 다른 판결은 대법원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1심에서 원고가 유일하게 이긴 사건은 병원을 상대로 한 유일한 승소 판결이기도 하다. 150번째 확진자의 메르스 양성 반응(6월7일)을 건국대병원이 일주일 늦게 보건소에 신고(6월13일)한 사실이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병원에 300만원을 선고(지난 2월23일. 병원 항소)했으나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원고 패소(1심 패소 뒤 항소심 승소 사건 포함) 판결엔 논리적 공통점이 있었다. ① 다른 병원에서 메르스와 접촉한 환자가 병원을 옮겨 내원했다. ② 그가 메르스 확진을 받기 전일 경우 옮겨간 병원과 국가는 그의 접촉·이동 경로와 감염 가능성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3년 전 김정옥의 확진과 죽음은 ‘슈퍼전파자’라 불리며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쓴 14·16번째 환자들 뒤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존재는 인위적으로 가려졌다. 통제선을 뚫은 메르스가 폭주하던 당시 그의 감염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의도에 따라 숨겨졌다. 그는 박근혜 정부 ‘메르스 정치’의 희생자였다. 원고 패소 사건들에서 확인되는 두 특징과 ‘김정옥 사건’ 사이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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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따르다 감염

① 김정옥은 메르스의 최초이자 최대 진원지에서 감염됐다. 김정옥은 국가와 소속 의료진 모두 메르스 발생 사실을 아는 병원 안에서 감염됐다.

2015년 5월19일. 김정옥이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8109호에 입원했다. 평택성모병원은 3개월 전 개원한 2차 의료기관이었다. 박경란이 “깨끗한 신설 병원”으로 엄마를 데려와 입원시켰다.

5월20일. 15일부터 17일까지 평택성모병원 8104호에 입원했던 환자가 ‘국내 최초 메르스 감염’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평택성모병원에 역학조사관들을 보내 ‘밀접 접촉’(당시 기준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한 의료진 등 29명을 격리조처했다. 첫 확진자가 병실 밖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한 사실을 시시티브이로 확인했으나 밀접 접촉 범위를 입원 병실로만 제한했다. 협소한 기준은 메르스를 잡기보다 놓치는 그물이 됐다.

② 국가와 병원은 김정옥과 환자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대신 두 병동의 환자들을 뒤섞었다.

5월20일. 병원이 8층을 폐쇄하면서 환자들(48명 중 29명)을 7층으로 내려보냈다. 원하는 사람은 퇴원(19명)시켰다. 환자들에겐 내부 공사 등을 이유로 댔다. 박경란이 “왜 옮기냐”고 물었을 땐 “잘 모르겠다”는 간호사의 답변이 돌아왔다. 오후 5시17분 김정옥도 7212호로 병실을 이동했다. 29일부터 확진 판정을 받는 11번째, 12번째, 14번째, 27번째 환자가 8층에서 내려가 37번째, 39번째, 40번째, 43번째, 44번째 환자 등과 7층에서 만났다. 누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 모르는 채로 그들은 한데 뭉쳐졌다.

③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숨긴 것은 김정옥과 환자들이 아니라 국가와 병원이었다.

국가와 평택성모병원은 입원 환자들에게 그들이 메르스의 진원지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마스크를 쓰면서도 환자들에겐 착용을 권하지 않았다. 자신의 건강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의료기관과 보건 당국으로부터 환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기회를 빼앗겼다. 알았다면 입원하지 않았을 피해자들이 정부와 의료기관이 알리지 않았으므로 속출했다. 52번째·53번째 환자는 5월23일·26일부터 5월28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그들은 병원의 메르스 발생을 모르고 입원했다가 감염됐다. ‘비밀주의’가 부른 두 사람의 감염 사실이 발표된 6월7일에야 메르스 환자가 나오거나 거쳐 간 24개 병원 이름이 공개(평택성모병원은 6월5일)됐다. 평택성모병원에서만 37명의 확진자가 나온 뒤였다.

5월21일. 전날 병실 이동 과정에서 퇴원(13일 폐렴으로 8110호 입원)했던 환자가 증상 악화로 하루 만에 재입원(7106호)해 김정옥 등과 한 층에서 생활했다. 그는 5월25일 평택굿모닝병원과 5월27일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하며 ‘슈퍼전파자’(5월30일 14번째 확진)란 이름을 얻었다.

④ 김정옥은 병원이 시키는 대로 따르다 감염됐다.

5월25일. 김정옥이 발열(사망 뒤 역학조사서에 적힌 메르스 발병 시점)했다.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전날 엄마와 통화하며 박경란은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김정옥은 8층에 있을 때 첫 확진자와 접촉한 11번째·29번째 환자(2차 감염자)와 같은 병실을 썼다.

5월26일. 병원이 김정옥의 증상을 폐렴으로 진단했다. ‘병원 획득 폐렴’으로 진료기록에 기재됐다. 첫 확진자와 동일 병실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폐렴은 메르스 증상으로 의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폐렴약과 항생제, 기침약 등을 처방했다. 바이러스 감염엔 소용없는 약들이었다. 5월27일까지 김정옥의 증상을 두고 외부에 의뢰한 검사들도 메르스와는 무관했다. 폐렴은 다수의 메르스 확진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된 증상이었다. ‘병원 내 감염 관리가 안 돼 얻은 폐렴’이 거듭 확인되고 있었지만 병원은 메르스와 연관지어 판단하지 않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이 잇따르고 있을 때였다. 메르스 노출 의료기관을 방문한 폐렴 환자들을 추적하는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는 6월9일에야 시작됐다.

⑤ 국가와 병원은 환자들의 이동·접촉 경로를 파악하는 대신 휴원 당일까지 면회·출입·외출을 방치했다.

5월28일. 병원의 메르스 발생 사실을 몰랐던 김정옥과 박경란이 병원 밖으로 나와 외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환자들의 동선은 관리되거나 통제되지 않았다. 김정옥을 면회한 지인도 며칠 뒤 박경란으로부터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질병관리본부에 스스로 연락했다. 엄마의 기침이 심해지자 박경란이 간호사에게 “메르스 아니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폐렴”이라고 답했다. 이날 밀접 접촉 범위 밖에 있던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는 첫 사례(6번째 환자. 1번째 환자 옆 병실 입원)가 나왔다. 보건 당국이 밀접 접촉 범위(발열 판단 기준 38도→37.5도 등)를 넓혔다. 병원 내 메르스 발생조차 모르고 있던 김정옥이 갑자기 메르스 의심 환자가 됐다. 그와 폐렴 환자들이 메르스 검사를 받았다.

5월29일. 박경란이 엄마의 옷을 챙겨 병원 로비로 들어섰을 때 마스크를 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을 봤다. 메르스를 직감한 박경란이 소리를 지르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엄마를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이때도 병실 출입은 통제받지 않았다. 밤 11시2분 김정옥이 서울의료원으로 보내졌다. 평택성모병원은 휴원했다. 이송 직후 질본은 김정옥의 메르스 감염을 확진(밤 11시30분)했다. 질본 센터장과 현장점검반 역학조사팀장 등이 참석한 심야회의(평택성모병원)에서 김정옥은 ‘최초의 3차 감염자’(1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된 11번째 환자와 같은 병실 사용)로 보고됐다.

2015년 6월17일 당시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이 20번째 메르스 사망자(42번째 확진 환자) 발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티브이 화면 갈무리

박근혜 정부의 ‘고의 누락’

⑥ 국가는 김정옥의 감염 사실을 고의로 감췄다.

5월30일. 김정옥의 확진 4시간 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3차 감염 가능성이 큰 환자를 공개하면 사회적 파장이 우려된다’며 재검사를 지시(2016년 1월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했다. 그는 오후 2시42분 현장점검반 진단검사팀으로부터 ‘재검사 결과에서도 최종 확진됐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공개를 미뤘다. ‘세계적으로 3차 감염 전례가 없다’고 호언해오던 정부는 김정옥의 확진 사실을 은폐했다. 이날 작성된 ‘메르스 대응조치 일일상황보고서’에서 김정옥은 ‘14번 환자’로 기재됐으나 언론 브리핑에선 13명만 확진자로 발표됐다.

5월31일. 전날 일일상황보고 명단에 있던 김정옥의 이름이 빠졌다. 15번째 환자가 김정옥 대신 14번째 환자(이후 ‘슈퍼전파자’로 불림)가 돼 있었다. ‘의도적 누락’이었다.

⑦ 국가는 김정옥과 그의 가족과 국민을 속였다.

6월1일. 메르스대책본부는 김정옥의 확진 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3차 감염자는 없다”고 발표했다. 국민 여론 악화를 우려한 ‘정치’가 3차 감염 대책 마련 시기를 놓치는 결과(감사원)를 낳았다. 김정옥의 존재가 계속 미공개되자 현장점검반 역학조사팀은 ‘확진 환자’란 보고를 매일 올렸다.

6월2일.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16번째 환자와 접촉한 23번째·24번째 환자를 첫 3차 감염자로 공개했다. 3차 감염자 발생 사실을 정부가 인정하는 순간에도 김정옥은 언급되지 않았다. 확진 환자인 그는 메르스 의심환자로 계속 “부당하게 관리”(감사원)됐다. 김정옥은 기계호흡을 하며 중태에 빠졌다. 엄마의 확진 여부를 알 수 없어 불안해하던 박경란은 평택성모병원에 전화해 분노를 쏟아냈다. 병원은 “7층엔 메르스 환자가 없었다”고 답했다.

6월3일. “김정옥씨 케이스는 아직 확진자 번호가 부여되지 않았나요? 3차 감염을 인정한 현재는 발표해야 하지 않나요?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으십니다. 사망하신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있나요?” 오후 6시58분 평택성모병원 역학조사관이 질본 모바일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질문했다. 답변이 달렸다. “오늘 역학조사위원회(감염병예방법 제9조에 따라 설치되는 전문위원회)의 검토를 받을 예정입니다.” 확진 환자 공개는 감염병 표준매뉴얼에 따라 정확·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사항으로 역학조사위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김정옥 건은 이날 역학조사위에 상정되지도 않았다.

휴원 전날에야 검사, 이튿날 확진
‘세계 최초 3차 감염’ 결론 얻고도
문형표, ‘사회 혼란 우려’ 공개 보류
위독 직면해서야 확진일 속여 발표
14번째였으나 결국 42번째 확진자

올해 종식 예상일 다음날 1심 선고
대한민국과 병원 ‘책임 없음’ 주장
국가는 “당시 기준으로 최선 다해”
병원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입장
딸 “뼈 부러져도 병원 무서워 못 가”

6월6일. 확진 환자도 아닌 사람이 느닷없이 사망했을 때 닥칠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앞두고서야 정부는 김정옥의 존재를 밝혔다. 아침 7시40분 김정옥이 확진자 명단에 포함·발표됐다. ‘세계 최초 3차 감염자’란 사실과 감염 경로는 빠졌다. 확진일자도 5월29일이 아닌 6월5일로 명시됐다. ‘실제 확진 날짜가 알려지면 언론 대응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메르스대책본부는 판단(기획총괄반장의 감사원 진술)했다. 본래 14번째 확진자였어야 할 김정옥은 그렇게 42번째 환자가 됐다. 자가격리 중이던 박경란이 질본에 수차례 전화해 엄마의 확진 사실을 확인한 날은 6월7일이었다.

⑧ 김정옥은 죽어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6월17일. 김정옥이 새벽 5시께 숨을 멈췄다. 20번째 사망자로 분류됐다. 직접 사인은 패혈증성 쇼크, 중간 선행사인은 메르스 폐렴, 선행사인은 메르스 감염이었다. 확진 뒤 사망까지의 과정 설명 없이 사망 사실만 간략하게 발표됐다. “42번째 환자에게 기저질환으로 기관지확장증과 고혈압이 있었다”는 정보가 추가됐다. 그의 죽음이 기저질환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7월1일. 평택성모병원이 재개원했다.

7월28일. 황교안 당시 총리가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를 살리라는 독려가 뒤따랐다.

12월23일. 정부가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사망자(38명)·확진자(186명)·격리자(1만6693명) 통계가 한 사람에게 닥친 재앙의 크기를 설명해주진 않았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왼쪽부터)과 신현호 변호사 등이 2015년 7월9일 오후‘메르스 사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법이 억울함을 풀어주면 좋겠다”

메르스 종식 일주일 전 정부는 ‘메르스 감염으로 직간접 손실을 입은 의료기관’ 233곳에 1781억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확진자나 사망자 유족에겐 입원비·치료비·장례비·심리치료를 지원했으나 배상·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정옥 유족의 법률대리인(법무법인 시원 심학섭 변호사)은 “대한민국은 의료기관에는 메르스 피해라며 실질적인 보상을 했지만 대한민국과 의료기관의 부실한 대응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아무런 배·보상이 되지 않아 소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준비서면)이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손실보상을 두고 정부와 의료기관들도 법적 분쟁을 벌였다. 복지부는 2017년 손실보상심의회를 열어 삼성서울병원에는 607억원을 보전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정옥을 대신해 ‘14번’을 받은 환자의 접촉자 명단 제출 명령을 병원이 따르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이유에서였다. 삼성서울병원은 3개월 뒤 손실보상금 미지급과 과징금(806억원) 부과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망인의 사망 등에 공무원들의 고의·과실 또는 위법성이 인정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과관계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대한민국의 지난 4월11일 변론 준비서면)

김정옥 사망에 대한민국과 의료기관은 ‘책임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국가는 당시 적용되던 메르스 대응 기준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었다. 원고들이 정부 대응 실패의 근거 자료로 인용한 감사원 감사 결과(김정옥 감염 과정 및 확진 발표 지연 등)도 국가 스스로 부정했다. 감사원 감사가 “미시적 원인에 집착해 거시적·환경적·정치적 요인을 간과”하고 사태 종료 뒤 확인한 사실들로 당시엔 파악할 수 없었던 일들에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그때까지 알려진 바 없는 수준의 메르스’가 부른 김정옥의 죽음에 공무원의 과실이나 위법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준비서면)이었다.

평택성모병원은 국가에 책임을 넘겼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했다’거나 ‘국가의 지시가 없어 하지 못했다’는 논리였다. 병원 내 메르스 발생 사실을 알리지 않아 환자가 자기보호를 하지 못했다는 원고의 지적엔 ‘국가의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타인의 확진 사실을 알릴 순 없었다’(준비서면)고 반박했다. 발생 사실을 알아도 국가의 지도 없이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설명 의무 위반도 아니라고 했다.

국가는 ‘처음 겪은 상황’ 뒤에 숨고 의료기관은 ‘국가의 지시’ 뒤에 숨으면서 말해지지 않는 책임들이 있었다. 국가는 비밀주의를 고수해 환자들을 무방비로 메르스에 노출시킨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병원은 의료기관으로서 병원 내 감염 관리를 방치(의료진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환자들은 휴원 당일까지 자유롭게 이동·출입·면회)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다. 마른하늘 아래 날벼락을 맞아서가 아니라 김정옥은 국가와 병원의 정책과 지시를 따르다 메르스에 걸렸다.

3년 만에 메르스가 발생한 지난달 13일 인천 중구 운서동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항공기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엄마 없는 3년 동안 딸은 죄책감으로 시달렸다. 평택성모병원으로 엄마를 데려갔다는 사실에 박경란은 자책했다. 지난 4월 여동생의 결혼식 땐 엄마의 빈자리가 자기 탓인 것 같아 눈물을 삼켰다. “엄마 장례 뒤 1년간 아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불을 끈 채 밥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박경란은 병원 가는 일 자체를 무서워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졌을 때도 그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아파 죽겠는데 그냥 붕대 감고 뼈가 붙길 기다렸다. 붙긴 붙었는데 잘못 붙었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다. 나도 바보짓 한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죽었는데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이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은 결국 죽은 자의 책임이 되고 만다. 기각되어야 하는 죽음은 없다. 책임은 규명돼야 하고 죽음은 기억돼야 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참고자료: 2015년 메르스 확진자 186명 역학조사서, 42번째 환자(20번째 사망자)의 입원부터 사망까지의 의무기록, ‘42번째 환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고·피고 준비서면, 경실련 메르스 공익소송 판결문, 2016년 1월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보건복지부 <2015 메르스 백서>

3년 만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9일 환자가 격리 치료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동을 방문한 뒤 병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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