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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3 19:43 수정 : 2015.06.24 16:06

신경숙 작가의 단편 ‘전설’의 표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김진수 기자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하)
표절 엄격한 기준 세워 비평이 검증해야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논란 이후 신경숙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작가 작품들의 표절과 관련한 보도와 제보 역시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온다. 한편으로는 문단 바깥 인사가 신경숙을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그에 대해 문인들이 반발하고 우려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국 문학에서 표절의 실상은 어느 정도이며 낯부끄러운 표절 논란에서 벗어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는 와야 할 일이 왔다. 그동안 적지 않은 표절 혐의가 제기되었는데도 마치 그런 일이 없는 양 우리 모두가 공범처럼 살아 왔다. 참혹한 생각을 지울 수 없고 후배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소설가 최인석은 19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자괴감 어린 토로를 했다. 소설가 이순원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작가들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 배경에는 ‘과연 나는 표절에서 떳떳하고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 문학에서 표절이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신경숙 사태를 계기로 과거의 표절 시비가 새삼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인화의 장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와 신경숙의 중편 ‘딸기밭’, 권지예 단편 ‘봉인’, 이문열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석영 장편 <강남몽> 등 앞선 사례들이 다시금 상기되었다.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에서 영향 받은 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와 김남주 시 ‘조국은 하나다’의 사례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전경린 장편 <엄마의 집>이 가수 강타의 노랫말을 변형해 쓴 데 대해서도 표절 시비가 일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어떤 작품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무얼 얼마나 덧붙였는가, 나중에 쓴 사람의 독창성이 얼마나 가미됐는가가 중요하다”며 “시에서는 단 한 구절을 인용하더라도 반드시 출처 표시를 하는 등 표절에 대한 의식이 매우 엄격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숙 사과, 사태해결 첫 단추 불과
‘과도한 들추기’ 부작용 우려 속
과거 표절시비 작품들 ‘수면 위로’

문단 자정능력까지 의심 받아
건강한 비판정신 부활해야
“표절 징계 시스템 필요” 주장도

한편에서는 과도한 표절 들추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은수는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으며, 물론 표절 해명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표절이란 한 작가의 영혼을 예리한 칼로 긋는 행위이고, 단지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깊게 베이는 경우도 많으므로, 문제 제기 자체에서 극도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인 이시영 시인도 트위터 글에서 “신상털기식 언론보도가 도를 넘어 한 재능 있는 작가와 출판사를 ‘매도’하는 것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경숙을 검찰에 고발한 데 대해서도 문인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소설가 이응준은 “문학의 일은 문학의 일로 다뤄져야 한다.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검찰 조사는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시영 시인도 “‘분지’나 ‘오적’처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국가권력의 수사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있었지만 ‘표절’을 검찰에 고발하여 수사를 촉구하는 예를 본 적은 없다. 이것은 한국 문단이 성숙한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고발한 분은 숙고하시기 바란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검찰 고발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단의 자정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평론가 김진석은 “지난 몇번의 표절 논란 당시 문단이 제대로 자정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에도 어찌 보면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힘으로, 대중에 떠밀려서 굴복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 아쉽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응준이 제기한 표절 주장을 이미 15년 전에 내놓았던 평론가 정문순도 긍정과 부정이 얽힌 전망을 내놓았다. “당시 문예지에 실렸던 내 글이 문단 일각에만 알려졌다가 잊혔던 데 비해 이번에는 인터넷 환경 덕분에 독자들이 여론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면서도 “독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파장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보면 근본적 개선은 역시 어렵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경숙이 23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사과 뜻을 밝히고 해당 작품도 작품집에서 빼겠다고 밝히면서 사태 해결의 첫 단추는 가까스로 끼운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표절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문제가 생겼을 때 분명한 제재와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23일 토론회에서 문학평론가 오창은은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표절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징계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문인단체를 중심으로 한 논의도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징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문학비평이 표절에 대한 검증을 하고 문학권력에 대한 적극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조영선 변호사도 “문학의 일을 법적 영역에서 판단하는 것은 비극”이라며 “‘문학의 문제는 문학인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데에 그치지 말고 표절과 관련한 가이드라인과 윤리규정을 만들고 위반했을 경우 유무형의 불이익과 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에서 표절은 매우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계량화한 수치나 구체적 조항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대표 작가’의 표절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한국 문학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건강한 비판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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