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새해맞이 희망의 목소리 200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번주 ‘왜냐면’에서는 나라와 사회에 바라는 글들이 많이 들어와 이를 담는 마당으로 꾸밉니다. 편집자 민주주의에 충실한 중립적, 선진적 대통령상을 실현시키고자 한, 그 결단은 청사에 빛나겠지만, 그로 인해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광복 60돌이 든 해를 역사의 뒤꼍으로 영원히 보내면서, 그간 참여정부를 지지해 왔던 한 시민으로서 정부에 몇 마디 고언을 하고자 한다. 본인은 원래 4·19 세대로서 일찍부터 독재정권을 생리적으로 싫어하여 일제잔재 청산과 더불어 군사독재 청산을 평소 소신으로 살아 왔다. 그리하여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매우 기뻤으며, 참여정부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는 감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는 사실 일부 군세력들과의 합작물이었므로 ‘문민’이나 ‘국민’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고, 참여정부는 그야말로 순수일반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의지로 탄생하고 성공한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실로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42년 만의 민간정부 복귀였다. 아니 단군 이래 최초 순수 민초에 의한 지배세력의 교체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가 해방공간에서 미처 척결하지 못했던 반겨레적 불의의 친일파들은 물론, 부정부패의 원조 군부독재 세력들도 모두 청산하여,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이 될 줄 알았다. 이것은 참여정부의 역사적 책임이요, 탄생의 이유라고 보았다. 앞 정부들은 그 태생의 한계로 이 작업이 어려웠겠지만, 참여정부는 아무 구애받을 바가 없기에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권 초기부터 모든 힘과 지혜를 모아 이 작업을 수행해 가야 했음에도,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 아래 수십 년 이어온,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하나하나 내놓고 대통령 스스로도 탈권위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힘이 빠지고 권위도 없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그 중차대한 역사적 임무들을 수행할 힘이 빠져버린 것으로 이해된다. 요즘 와서야 “과거사 청산”이란 이름으로 좀 하려 하는데, 지난번 국정원 쪽 일부 발표를 보니 오히려 면죄부만 주는 느낌이었다. 국민을 떠받들려는 뜻이나, 권위주의를 솔선해 타파하려는 자기희생적 의지는 매우 값지지만,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어서, 힘부터 빼고는 저항이 많을 이 작업을 수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그것은 친일파나 친독재파들은 어찌 보면 이땅에서 생의 갈림길에 서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올 것이고, 또 이들은 대개가 처세에 매우 능한, 머리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정원 권력이나, 요즘은 그런 국정원 권력을 단연 압도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검찰권(그러나 재벌권력 앞에서는 아주 불공정하며, 자기반성도 모르는 한국 유일의 집단으로 보임) 등을 다 내놓고서 과거 그 권력들을 잉태한 모태의 노회한 세력들을 물리치려니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민주주의에 충실한 중립적, 선진적 대통령상을 실현시키고자 한, 그리고 이 일을 내 한 몸부터 희생하여 이루고자 한, 그 이상과 결단은 참으로 청사에 빛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이는 역사적 큰 과오라고 생각한다. 영명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포 때, 극력 반대하는 많은 무리들 중 최만리 같은 당시 중국을 최고로 떠받들던 대표적 수구파 몇을 감옥에 넣으면서 강행했다. 대통령으로서 수행해야 할 과업들을 앞으로는 그 선후경중을 잘 가리는 지혜도 갖추기 바란다. 새해에는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나,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나, 이 역사적 과업을 용기와 슬기로써 꼭 성취해주기 바란다. 윤용식/한국방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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