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민들 “야만을 반대한다” 21일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자유와 평화를 옹호하고 야만과 오해에 반대한다’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파리 테러를 규탄하는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툴루즈에서도 2012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학생 3명과 교사 1명, 군인 3명이 숨진 바 있다. 툴루즈/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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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준 기자 파리 테러현장 르포
‘프랑스 가치’ 말하는 추모객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연대”
무슬림에 대한 구조적 문제는 숙제
“보이지 않는 인종주의 작동해”
설문서 ‘분노’ ‘응징’이 ‘연대’ 앞질러 테러 이후 일주일 동안 거리에서 만난 프랑스인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하나같이 ‘프랑스의 가치’를 말했다. 바타클랑 콘서트홀 테러 현장 앞의 꽃무덤을 보던 마흔살 회사원 라마몬지수아 온도는 “이번 테러 이전과 이후로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이나 생활이 달라질 것 같으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도는 프랑스의 옛식민지였던 마다가스카르 출신으로, 15년 전 프랑스에 온 이주민이다. 성인이 된 25살 때 건너온, 피부색이 옅은 갈색의 흑인이지만 지금 그의 정체성은 프랑스인이다. “만일 프랑스가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위축되면 더 많은 공격이 있을 것이므로, 많은 프랑스인들은 이전처럼 지내려고 합니다.” 그는 “이런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 연대, 박애 같은 프랑스의 가치이며, 그것이 시민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자유와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도 심각하다. 많은 시민들은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와 프랑스의 무슬림을 한묶음으로 보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작 무슬림 청년세대가 느끼는 현실은 이런 이상과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의 경제 호황기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 엄청난 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실업을 몰랐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이민자들부터 내쳤고, 21세기 들어 이어진 금융위기 한파는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대부분 아랍계인 이민자들의 2~3대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나 진정한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알제리 출신 무슬림으로 파리사클레 대학 공학석사 과정에 유학 중인 압딜라 밍귈라티는 “무슬림 이민자 1세대는 대부분 세속주의자들이며 프랑스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2~3대 젊은이들 상당수는 삶의 목표를 잃고 마약이나 범죄, 이슬람주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부모 세대보다 훨씬 종교적 편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태생의 무슬림 청년들이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을 갖게 되는 이유로는 사회적 차별과 이슬람주의자들의 영향, 그리고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 정서를 자양분으로 삼는 극우 정치세력을 꼽을 수 있다. 압딜라는 “프랑스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아랍계 이름을 가진 청년들은 교육을 잘 받았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인종주의가 작동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슬림 밀집지역인 파리 북부 외곽 생드니의 청년 실업률은 프랑스 전체평균의 갑절인 45~50%에 이른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파리에 있는 여러 이슬람사원의 ‘이맘’(이슬람 지도자)들이 프랑스 태생이 아니라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에서 와서 프랑스 무슬림들을 가르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정통 이슬람 교육을 받고 자란 그들이 세속주의 전통과 자유주의 성향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프랑스의 가치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테러 사건을 대하는 프랑스의 성숙한 시민의식뿐 아니라 프랑스 언론의 차분한 보도 태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 직후, 참혹한 현장사진들을 출판물이나 인터넷 공간에 게시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덕분에 시민들은 참극의 상황을 글로 짐작했을 뿐,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진을 접하진 않았다. 대다수 프랑스 언론은 테러가 있은 지 사나흘 뒤에야 희생자들의 생전의 멋진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그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글을 일일이 소개했다.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극적인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론은 테러 직후 프랑스 공군의 시리아 공습 소식도 간결하고 건조하게 사실 위주로만 보도했을 뿐, ‘테러리즘에 대한 보복이나 응징’ 같은 자극적 보도는 삼갔다. 한국의 몇몇 언론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축구를 관전하던 중 테러가 나자 8만 관중들을 두고 홀로 피신해 도마 위에 올랐다”고 보도한 것도 사실과 달랐다. 테러 직후 올랑드 대통령은 경기장 사무실에서 보고를 들은 뒤, 즉시 관계장관 긴급회의를 열고, 당시 인질극이 벌어지던 바타클랑 극장으로 찾아가는 등 긴급상황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상황에서 올랑드의 처신을 비난한 프랑스 언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지에 사는 교민 목수정씨는 “<르몽드>, <리베라시옹>같은 신문들은 수사 상황과 정부·의회의 움직임을 속보로 전하는 동시에, 정부가 안보를 구실로 시민적 자유를 축소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프랑스 사회가 되돌아봐야 할 것들에 대한 담론 형성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들이 파리를 발칵 뒤집은 테러의 충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외국 언론이 보고 들은 반응과 프랑스 대중의 실제 속마음이 다를 수도 있다. 일부에선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골이 깊어진 조짐도 보인다. <프랑스 24> 방송은 20일 “파리 테러 이후 일주일 동안 프랑스에서 반이슬람 증오 범죄가 평소의 6~8배로 급증했다”고 프랑스 무슬림평의회를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테러 직후인 17일 일간 <르 파리지앵>이 보도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감정과 이성이 뒤섞인 파리 시민들의 정서가 엿보인다. 응답자(복수 응답)의 57%가 “분노”를 느꼈고, 40%는 “응징”을 원했으며, “연대”하자는 응답은 31%였다. 테러 다음달 프랑스가 시리아를 공습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81%가 지지했고, 지상군 파병 찬성 의견도 62%나 됐다. 그러나 ‘시리아 공습이 프랑스에 끼칠 영향’을 묻는 항목에선 응답자의 63%가 “더 많은 보복 공격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한 반면, “프랑스를 더 잘 보호할 것”이란 응답은 36%에 그쳤다. 프랑스 정부는 동시테러가 발생한지 2주일째인 오는 27일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추모 행사를 갖기로 했다. 그런 한편으로 올랑드 정부는 전 세계에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 분발할 것을 촉구하며 잰걸음을 내딛고 있다. 적어도 지금 프랑스의 외교안보전략만 놓고 보면, 사회당인 올랑드 정부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이나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앞으로 얼마동안 프랑스 정치권과 사회적 분위기가 어떤 길을 가게 될 지는 오는 12월초 예정된 지방선거의 결과로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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