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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2 20:05 수정 : 2015.11.22 20:05

베르나르 위그 연구실장

프랑스 민간싱크탱크 IRIS 베르나르 위그 연구실장

프랑스 최고 수준의 민간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의 프랑수아베르나르 위그(64) 연구실장은 중동 문제에 밝은 지정학 전문가다. 위그 박사는 1990년대 중반 유네스코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국에도 잠깐 머물면서 한국의 고대 문화와 역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파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번 연쇄 테러의 배경과 대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이슬람국가를 자신들 국가라 생각
프랑스 테러를 ‘응전’으로 여겨

‘샤를리 에브도’ 공격땐 대상이 분명
이번 테러는 무차별 살상 분명하나
프랑스 내부 극우 목소리 커질까 우려

서방, 중동분쟁 물리적 개입으로
그 나라에 무질서한 지역 만들었고
내전 초래…‘판도라 상자’마저 열려

아사드 정권 내부 붕괴가 해답
이란·러시아 ‘시리아 내전’서 손떼고
프랑스, 엘리트 중심 교육 재정비 필요

이슬람국가(IS)
-지난 13일 파리 테러의 범인들 대다수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무슬림 젊은이들이다. 왜 프랑스의 젊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고 자국민을 살상하는 테러범이 됐다고 보는가?

“그들은 아주 소수이며 전체 무슬림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는 전체 인구에서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지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크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다른 종교를 가진 중산층 계급에서도 이슬람으로 개종해 지하드에 가담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 벌어지는 지하드는 매우 배타적이고 분파주의적이다. 이는 이슬람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다. 앞서 말한 젊은이들이 이런 데에 끌린다. 특히 와하비즘(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원한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은 규범이 매우 엄격하며, 자신들과 다른 정치체제, 문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이는 프랑스의 가치와 상충한다.”

-이슬람국가는 이번 테러를 프랑스의 시리아 공습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적 명분인가, 종교적 이유인가?

“두 가지 모두다. 첫째, 그들은 프랑스의 이슬람국가 공습이 이슬람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에게 프랑스군은 ‘십자군’(11~13세기 이슬람과 오랜 전쟁을 벌였던 유럽 기독교 군대)이다. 또 그들에게 파리는 ‘환락의 도시’다. 그들은 ‘새로운 바빌론’(신에 대한 교만의 상징인 바벨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도시)을 징벌하고 싶어했다. 둘째, 그들은 이슬람국가를 자신들의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테러는 프랑스가 자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에 대한 응전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지정학으로나 상징적으로 적정한 타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영토를 직선으로 국경을 그어 나눠가지면서, 중동에선 이질적인 종파와 민족이 뒤죽박죽 섞였다. 오늘날 이슬람권 분쟁과 테러의 서방 책임론을 어떻게 보나?

“오늘날 중동 분쟁의 큰 요인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이슬람 사람들에겐 매우 부당한 행위였지만, 오늘날 그 협정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한 세기 전의 일로 잊혔다. 현재 국경은 당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경이고, 그 분쟁의 중심국가가 시리아(1945년 프랑스에서 독립)와 이라크(1932년 영국에서 독립)이다. 두 나라 모두 초기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시리아는 권위주의적 성향의 바트당이,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이 오랜 기간 정권을 장악했다. 시리아에선 소수 알라위파가 다수인 수니파를 통치해왔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엔 소수 수니파가 다수 시아파를 통치했다. 여기에 서방 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와 압박을 바꿔왔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내부 갈등이 격화했다.”

-이번 11월13일 연쇄테러와 올해 1월 <샤를리 에브도>테러의 차이점은?

“<샤를리 에브도>테러는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종교적 이유와 공격 대상이 분명했다. 이번 연쇄테러는 축구경기장과 콘서트홀 관객, 카페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쏘았다. <샤를리 에브도>테러 때만 해도 “프랑스가 먼저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만평으로) 이슬람을 자극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테러는 그때와 비교해 많은 점들이 변했다. 앞으로 프랑스 안에서 극우 성향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그런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아랍의 봄 이후 5년 가까이 내전을 벌이면서 25만명을 죽였다. 그러나 서방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전례와 다른 이중기준이라는 주장이 있다.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은 공식적으로는 그 나라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책이었다.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모두 마찬가지다. 카다피를 축출하면 리비아에 민주화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물리적 개입은 그 나라에 무질서한 지역들을 만들었고 내전을 불러왔다. 서방은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결과가 더 나빠져 버렸다.

서방은 아사드가 나쁜 독재자라는 건 동의하지만 이슬람국가 세력의 축출을 위해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이건 큰 실수였다. 그 뒤 프랑스는 아사드 정권이 반군들에게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폭격하는 것까지 검토했었다. 지금 시리아에선 아사드와 이슬람국가를 빼면 알카에다를 비롯해 소수의 이슬람 세력만 남는데, 그들에겐 변변한 군사력이 없다. 서방은 시리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사드, 이슬람국가, 알카에다 중에서 가장 나쁜 집단을 골라야 할 상황이다. 이제는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서방이 아사드 정권과 타협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파리 시민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번 테러에 대해 ‘무자비한 대응’을 선언했다. 프랑스가 미국에 이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랑드의 연설은 2001년 조지 부시가 했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을 연상시킨다. 그럴 경우 정부들의 첫 대응은 시민적 자유를 줄이는 것이다. 경찰이 카페를 문 닫게 할 수도 있고 개인을 함부로 수색하거나 체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하다. 현재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매우 낮다. 지금은 테러 직후라서 당장 여론조사를 하면 강화된 안보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분한 토론의 장이 열릴 것이다.”

-시리아 사태에서 촉발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리아와 프랑스 각각의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시리아는 아사드 정권의 내부 붕괴가 해답일 것이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역시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같은 종파라는 이유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또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국이 중립을 유지하는 가운데 평화협상을 통해 안정을 회복한 뒤 아사드가 자연스럽게 퇴진하고 정권을 이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누가 가장 큰 적인가, 무엇이 가장 큰 위협인가를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둘째는 프랑스의 과제다. 만일 프랑스가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 세력과의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프랑스에는 여전히 지하드를 추구하는 세력이 존재할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검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자칫 특정한 소수집단을 배제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그들이 프랑스를 사랑하고 프랑스의 일부분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여기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의 학교들은 프랑스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고, 점점 더 좌파 색채가 짙어져왔다. 그러나 엘리트들은 엘리트 집안 출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프랑스는 엘리트 중심 교육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파리/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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