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농민회·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총연합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씨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하며 청사로 들어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1년 한-미FTA 반대 집회때
고막 찢어진 박희진씨 헌법소원
헌재 2년반 지나 각하
이번 농민 혼수상태 초래
“법령으로 명확한 사용기준 정해야”
“경찰이 물대포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한 언젠가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참사였어요.”
농민 백남기(68)씨가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위중한 상황에 처한 데 대해 박희진(40)씨는 “헌법재판소의 안이한 판결이 부른 참사”라며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 시절이던 2011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다. 함께 집회에 참가했던 이강실 목사(당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도 물대포를 맞고 뇌진탕 부상을 당했다. 박씨와 이씨는 경찰의 무분별한 물대포 사용에 대해 위헌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헌재는 지난해 6월 “근거리에서의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며 이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당시 헌재는 “물포 발사 행위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는 집회나 시위에 대하여 구체적인 해산 사유를 고지하고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도 “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거리에서의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근거리 직사 살수가 기본권 침해인 것은 맞지만, 반복될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였다.
헌재의 예상과 달리 근거리 직사 살수는 반복됐다. 지난 14일 집회에도 참가한 박씨는 “경찰의 물대포 사용 방식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4년 전에도 경찰은 시위대의 도로행진 10여분 만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고, 신속하게 직사 살수로 넘어갔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단 한차례 경고 살수를 한 뒤 분산 살수 15초, 곡사 살수 10초에 이어, 직사 살수가 3차례에 걸쳐 8분 동안 이뤄졌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다쳤다. 14일 집회에서도 경찰은 행진 시작 30여분 만인 오후 5시께 동시다발적으로 물대포를 쐈고, 형식적으로 경고-분산-곡사 살수를 거친 뒤 곧장 직사 살수로 전환해 시위 내내 근거리 직사 살수를 지속했다. 박씨는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때마다 이런 방식은 반복됐다. (백씨의 사고는)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없던 참사였다”고 비판했다. 물대포의 위헌성에 대한 헌재의 안이한 상황 판단이 경찰의 과잉진압과 인명사고를 방조했다는 것이다.
당시 위헌소송의 법률 대리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물대포는 위해성 장비임에도 사용 기준이 법률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고, 훈령인 ‘살수차 운용지침’도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경찰의 자의적 사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한 헌재 판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안이한 인식이라는 게 이번 사고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물대포 사용 기준 등에 대해 훈령이 아닌 상위 규정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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