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저녁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새해 연설을 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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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새해연설 들어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18일 새해 연설은 예상 밖으로 밋밋했다. 폭발적인 정치적 결단이 담긴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래 구상’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알려졌던 ‘예고편’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자신의 고민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양극화 등 고민 이해 구하는 데 중점둬“긴 이야기 첫 실마리 풀었을 뿐” 해석
조세개혁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로 지적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진단하고, 그 해법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데 중점을 둔 얘기들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을 늘 접하는 기자들이 보기에는 뉴스가 없지만, 대통령이 왜 고민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앞으로 해나갈 ‘긴 얘기’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두겠다는 얘기다. 청와대의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지난해 ‘대연정’을 꺼냈다가 쓴맛을 본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대연정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고민의 궤적은 빠진 채 결론부터 불쑥 들이민 꼴이어서 일반 국민들은 물론 여당 의원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반성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대연정 때와는 전혀 다른 설득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연정 논의가 결론부터 시작하는 ‘두괄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이야기의 끝부분에 결론을 두는 ‘미괄식’인 셈이다. 얘기의 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번 대연정 논의 때처럼 미리 언론에 새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결론을 공개한 뒤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전철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노 대통령의 논리전개 방식에 비춰볼 때 조세개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면, ‘근본적인 재정 해결책’은 사실상 세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채를 발행해 빚으로 나라를 꾸리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은 일본의 예를 들며 강한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청와대 내부 논의에 참가했던 여러 사람들은 대통령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스웨덴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웨덴은 세금에다 의료·교육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을 합친 국민부담률이 50%가 넘는 나라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화두를 던지는 시기는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이라며 “그 전에는 선거 때문에 국민에게 부담이 가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해, 간접적으로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이 조세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참여정부의 주요 지지층이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점을 지적받고 나서는 마음을 바꾸었다”며 “세금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얘기를 25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이어가고, 다음달 취임 3돌 즈음해서 더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노 대통령의 구상도 분명히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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