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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01 18:15 수정 : 2016.02.22 17:50

정치BAR_서보미의 진실된 뉴스_모든 자원 총동원한 한 장의 상징

길거리엔 벌써 4·13 총선전의 포연이 자욱하다. ‘전사’로 나선 예비후보들이 휘두르는 건 총칼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홍보 포인트를 담아낸 현수막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의 건물엔 어김없이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건물 입주민들은 “환기가 안 된다”고 아우성치고 행인들은 “볼썽사납다”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총선에 뛰어든 예비후보자들에게 현수막은 포기할 수 없는 무기다. 예비후보자에게 허용된 선거운동 수단이 매우 제한된 탓이다. 예비후보자 또는 그와 동행한 선거사무원이 거리에서 명함을 나눠주거나, 예비후보자가 직접 전화로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정도다. 현수막도 선거사무소가 있는 건물에만 설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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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의 박원순의 곽경택의…

조직이 약하고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들은 특히 현수막 홍보에 목을 맨다.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줄이 든든한 예비후보는 ‘인맥’을 활용한다.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친박) 실세인 유기준 의원의 지역(부산 서구)에 도전장을 낸 곽규택 예비후보 현수막엔 친형의 이름이 등장한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를 연출한 부산 태생 곽경택 감독이다.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 형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말이 필요 없다. ‘서구친구 1 곽규택’이다.

여야의 ‘잠룡’들도 현수막에 무시로 호출된다. 거물의 후광을 쬐려는 전략이다. 서울 양천갑에서 표밭을 다져온 이기재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보좌관으로 일했던 원희룡 제주자치도지사와 함께 ‘이기재의 열정! 원희룡의 힘!’을 외친다. 원희룡 지사는 양천갑에서 내리 국회의원 3선을 쌓았으니 아직도 ‘힘’이 남아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덕 예비후보(경기 안양동안갑)는 현수막에서 ‘안양의 박원순’을 자처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활짝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힌다. 민 예비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두 차례 법률지원단장을 했다. 더민주 나소열 예비후보(충남 보령·서천)의 현수막에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소를 짓고 있다. ‘대한민국을 바꾸겠습니다. 충청의 꿈·미래’란 구호는 안희정 지사의 ‘대선 슬로건’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인맥의 최고봉은 역시 현직 대통령이다. 김용판 예비후보(대구 달서을)는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현수막에 썼다. 그는 2012년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해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지난 1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진을 두고선 ‘편집한 거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사진을 찍을 당시 박 대통령의 오른쪽에 서 있던 경쟁자 윤재옥 의원을 김 예비후보 쪽에서 의도적으로 잘라냈다는 것이다. 윤 의원 쪽의 문제 제기에 김 예비후보 쪽은 “당시에 박 대통령과 왼쪽에 있던 김용판 서울경찰청장만 따로 찍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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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울고 ‘4수’ 강조하고

새누리당의 인기 단어인 ‘진실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 야당 후보도 등장했다. 국민의당 소속 고연호 예비후보(서울 은평을)는 ‘진실한 사람으로 은평을을 바꿉시다’는 구호를 내건다. 이 지역에 2008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비롯해 여러 차례 야권의 후보가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자신만은 10년 넘게 유권자 곁을 지킨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또다른 목적도 있다. 고연호 예비후보 쪽 관계자는 “이 지역의 이재오 의원(새누리당)이 진실한 사람이 아니란 걸 지적하기 위한 전략도 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좌장격인 이 의원을 저격하기 위해 친박들이 쓰는 ‘진실한 사람’을 내세웠으니 ‘이이제이형’이라 할 수 있다.

온몸을 던진 ‘투신형’도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지역구(부산 영도)에 도전장을 낸 최홍 예비후보는 상반신을 노출한 사진을 현수막에 썼다. 그가 51살이던 2011년 당시, 20~30대 몸짱 청년들을 제치고 ‘쿨가이선발대회’에서 대상을 탔을 때의 사진이다. 최홍 예비후보는 “인생의 전환점인 50살에 새로운 도전을 했었고 이 경험으로 (지금의)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정표를 호소하는 ‘읍소형’은 후보들의 단골 전략이다. 더민주 전재수 예비후보(부산 북구강서갑)는 읍소에 ‘희망’을 실었다. ‘첫번째 32.8%, 두번째 38.5%, 세번째 47.6%’.점점 좋아지는 세차례 낙선 결과와 함께, ‘이길 때가, 바뀔 때가 됐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진성호 새누리당 예비후보(부산 연제구)는 ‘저격수’를 자처하며 ‘셀프디스’를 한다. 현수막에서 그는 브이라인(V)을 강조하며 ‘고향으로 돌아온 저격수다. TV조선 MC’란 구호를 외친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을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했다.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한 뒤 지역구를 옮겨 2014년 재보선에선 경기 김포로 출마했으나, 또다시 공천 경쟁에서 탈락했다. 20대 총선에선 또다시 지역구를 고향인 부산 연제구로 바꾸는 ‘철새’가 되었는데, 이를 ‘고향으로 돌아온 저격수’라고 포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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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후보도…박근혜 마케팅은 여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예비후보들도 있다. 허용범 새누리당 예비후보(서울 동대문갑)는 현수막을 커다란 태극기로 채워 유권자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서갑원 더민주 예비후보(전남 순천·곡성)는 장석주 시인의 시 한 토막과 함께 ‘다시 서갑원입니다’라고 썼다. 서 예비후보는 17대, 18대 이 지역에서 연거푸 당선됐지만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 이후 사면받은 뒤 2014년 재보선에 나왔지만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했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한 건 치욕으로 받아들여지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김세현 새누리당 예비후보(부산 해운대기장을)의 현수막은 ‘상생형’이다. 현수막 밑자락에는 ‘서울 수 치과’라고 세 번 쓰여 있다. 선거사무실이 있는 4층 외벽에 현수막을 걸면 3층에 있는 치과의 이름을 가리는 탓이다. 반면 내용은 박 대통령과의 상생만 강조했다. 박 대통령과 찍은 사진 위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글씨가 적혀있다. 박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친박연대 사무총장 이력을 강조하려다 둔 ‘무리수’다. 김 예비후보 쪽은 “박근혜 정부의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라며 “예비후보자와 대통령은 친·인척 관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현수막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할 때도 있다. 더민주 소속으로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예비후보는 지난해 목이 좋은 범어사거리의 건물에 선거사무소를 얻으려다 ‘현수막’ 문제에 가로막혔다. 한 입주자가 “몇 달 동안이나 현수막을 걸게 할 수 없다”고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경쟁자인 김문수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얼마 뒤 그 건물에 입주했고 ‘김문수는 다릅니다’란 현수막도 내걸었다. 김부겸 예비후보는 바로 옆 건물에 선거사무소를 내고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구호로 맞불을 놨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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