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조해진 의원(왼쪽)과 임태희 전 의원이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당의 공천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각각 열기에 앞서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임 전 의원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조 의원은 지역민들에게 무소속 출마에 대한 뜻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부글부글 끓는 낙천자들
14·15일 이틀간 새누리당에 불어닥친 ‘이한구발 낙천 칼바람’에 길게는 20년간 다져온 지역구를 내놓게 된 비박근혜계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박근혜 대통령과 악연·구원으로 얽힌 이들은 국민 공천이 아닌 ‘박심(朴心) 사천’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진짜 심판’을 받아보자”는 이들의 ‘탈당 무소속 출마’가 현실화할 경우, 수도권 등 여야 접전지에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재오 의원(5선·서울 은평을)의 지지자 200여명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으로 몰려들었다. 경찰 저지 속에 ‘이재오를 살려내라’ ‘국민공천 한다더니 까고 보니 보복공천’ ‘바른소리 잘한다고 공천배제 웬 말이냐’ 등의 손팻말을 들고 거칠게 항의했다.
친이명박계 좌장인 이 의원은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정면 비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이 의원 자신은 낙천 발표에도 비교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평소 의정활동과 선거운동 상황을 알리는 그의 페이스북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라’는 지지자들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 이 의원이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오, 지지자들 응원에도 신중 진영, 이재오와 통화…공식반응 없어
조해진 “정당 민주주의 압살” 격앙 친이 임태희는 ‘무소속 출마’ 선언 주호영 “이유없이 배제” 구제 호소
당선 가능성·복당 여부 등 셈법 복잡 ‘무소속 연대’로 구체화할지 불투명
새누리당 낙천자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악연’
비슷한 시간 국회 정론관 앞에서는 친이계로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재선의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과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경기 성남분당을)이 무겁게 악수를 했다. 평소 점잖은 말투의 조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밀실에서 정해진 살생부에 따라 마구잡이 난도질하고 정치생명을 죽이는 것이 투명한 공천인가” “역대 최악의 밀실공천, 집단학살 공천, 정당 민주주의 압살공천”이라고 한껏 날을 세웠다. 조 의원은 “무소속 출마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서도 “지역 당원들과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임 전 의원도 기자회견에서 “명백한 정치보복에 새누리당을 잠시 떠나 20대 총선에 출마한다”며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용산에서 3선을 한 진영 의원도 여성 우선추천지역이 되면서 지역구를 비워줄 처지다. 박근혜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2013년 청와대의 기초연금 대선공약 수정 방침에 “양심의 문제”라며 맞선 뒤 사퇴했는데, 당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보복공천’으로 본다. 진 의원은 아직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낙천 발표 직후 이재오 의원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주호영 의원(3선·대구 수성을)은 이날 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단독신청한 사람 중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배제된 사람이 나밖에 없다. 대구는 초·재선만 하라는 말이냐”며 구제를 호소했다. 그는 “무소속 연대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주 의원의 낙천을 확정했다.
당장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탈당-무소속 출마 대열에 합류하기에는 낙천자들의 상황이 제각각이다. 지역적 특성과 당선 가능성, 이후 복당 여부 등 셈법이 복잡하다. 낙천자들끼리 손을 잡으려 해도 지역과 계파로 교집합을 이룰 공통분모도 부족하고, 2008년 친박연대나 친박무소속연대처럼 ‘박근혜’라는 강력한 구심점도 없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대구에서 낙천한 유승민계 의원들과 다른 비박계 의원들이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아직은 불투명해 보인다. 일부 낙천자들은 이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9곳의 우선·단수추천지역에 이의를 제기한 것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_______ [관련 영상] ‘박근혜 왕정’과 ‘상왕식 공천’/ 더 정치 #13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