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지만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진영 의원(서울 용산)이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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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한 ‘원조 친박’ 진영 의원
“아픔으로 썼다”며 채 여덟 줄을 넘기지 못한 짧은 탈당성명서의 ‘수신인’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17일 비박근혜계 낙천자들의 ‘연쇄 탈당 도미노’에 가속도를 붙인 진영 의원의 ‘마지막 편지’는 자신을 “국민의 편”으로 자리매김하며 탈당 뒤 용산 출마 의지를 분명히 했다. 진 의원은 이날 “국민의 편에 섰다가 쓰라린 보복을 당했다”는 한 문장으로, 박 대통령을 국민의 편에서 멀찍이 떨어진 존재로 만들며 완전히 대척점에 섰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보복을 일삼는 ‘냉혹한 군주’라는 것이다. 진 의원은 ‘쓰라린 보복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슴 아픈 일이라 설명 안 하겠다. 다 아실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그는 2013년 9월 청와대의 기초연금 대선공약 수정 방침에 “내가 지금도 반대하는 기초연금안에 대해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나. 이것은 양심의 문제”라고 맞섰다. 청와대의 거듭된 수정 압박에 아예 장관직을 사퇴했고, 이미 인사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집권 첫해부터 큰 상처를 입었다. 진영 의원의 항명성 사퇴에 박 대통령은 “비판을 피해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며 사실상 ‘친박계 파문’을 선언했다. 진 의원이 말한 “쓰라린 보복”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자신의 이런 소신 행보를 빌미 삼아 보복공천을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짧은 여덟줄짜리 “아픔으로 썼다”용산 출마 강한 의지 드러내 천막당사때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
2013년 기초연금 맞서다 장관 사퇴 이재오 의원 보선 유세 돕기도
이한구 원내대표 때 러닝메이트 이회창 전 총리와의 인연으로 1996년 정계에 발을 디딘 진 의원은, 막 국회의원 배지를 단 2004년 천막 당사를 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원조 친박’이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계파색이 옅은 의정활동을 해온 진 의원은 친박에 온전히 투신하지는 않았다. 친박계와 ‘문고리 권력’들의 배타성과 폐쇄성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원조 친박에서 ‘짤박(짤린 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으로 끊임없이 ‘신분’이 바뀌었다. 친박계와 친이명박계가 내전 수준의 싸움을 벌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현역 의원 줄서기에 거부감을 나타내며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1.5%포인트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대선 후보직을 내준다. 박 대통령이 ‘원칙의 문제’라며 반대했던 세종시 수정안에도 찬성표를 던지는가 하면, 박 대통령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며 거침없이 비판을 가하는 이재오 의원이 보궐선거에 나섰을 때는 유세를 돕기도 했다. 이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진 의원은 역시 공천에서 탈락한 그에게 가장 먼저 탈당 결심을 알렸다. 진 의원은 자신을 낙천시킨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2012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될 때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였다. 이 위원장이 원내대표가 된 데는 수도권 3선으로 합리적 성품의 진 의원이 득표율을 끌어올린 덕이 컸다. 진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의 공천에 대해 “국민 편에서 한 것 같지 않다”고 했고, ‘청와대 공천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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