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당 |
버티는 김종인 왜…‘정당 체질개선’ 의지인가 ‘자기 세력확장’ 야심인가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중앙위원회가 비례대표 순위 투표를 거부한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듯 중앙위 표결 거부를 주도한 특정 중앙위원들을 겨냥해 “패권을 행사하려면 똑바로 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내가 응급환자 치료하는 의사 같은 사람인데, 환자가 병 낫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더이상 (치료를) 할 수가 없다”며 결별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공천파동이야 정치권에서 항상 있는 거라 신경도 안 쓴다”면서도 “가장 기분이 나쁜 것은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비례대표를 하려는 사람으로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됐던 자신의 ‘비례 2번 셀프 공천’과 관련해선 “총선 뒤 내가 (대표직을) 던지고 나가버리면 이 당이 제대로 갈 것 같나. 당을 조금이라도 추슬러 수권정당을 만들기 위한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얼굴을 붉혔다.
이날 김 대표의 발언을 뜯어보면 ‘다 죽어가는 당을 살려놨더니 이제 와 다른 소리를 한다’는 배신감과 ‘비례 공천에 담긴 자신의 깊은 뜻을 몰라준다’는 억울함,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려는 게 옳다’는 강한 자신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60일 남짓 쉬는 날 없이 강행군하면서 당을 살려놨는데,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고 여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총선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당의 지지층을 ‘중도·중간층’으로 확장해야 하는데, ‘운동권 정당 체질’이 이를 가로막는다는 김 대표의 ‘확신’도 이번 파동의 원인으로 꼽힌다. 비례 후보 명부를 A·B·C그룹으로 나눠 중앙위원회의 선택권을 좁히려고 시도한 게 단적인 예다. 자신의 구상대로 전문가 그룹을 비례대표에 다수 당선시키려면 순번 결정을 중앙위원회 투표에 맡겨선 안 된다고 판단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김 대표의 측근도 “중앙위원들의 면면을 봐라. 운동권 출신들이 다수 아니냐. 이들에게 순위 결정권을 줬으면 ‘운동권 일색’이라 비판받았던 19대 비례대표의 판박이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에 대한 김 대표의 불신도 상황을 악화시킨 것 같다. 김 대표는 “소외계층을 비례에 넣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평소 행동은 전혀 그것과 관계없는 행동을 하던 사람들”이라거나 “내가 (비례 2번을 받았다며)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몰아갔는데, 그건 하나의 핑계다. 이야기를 하려면 정직하게 하라”며 못마땅해했다.
총선 뒤에도 제1야당을 이끌며 2017년 대선 정국까지 주도해보겠다는 김 대표의 ‘정치 야심’을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한 중앙위원은 “총선 이후 당무와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이번에 일정한 세력을 확보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