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사설]국민 손으로 넘어간 ‘박근혜-유승민’ 대결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23일 밤 결국 탈당했다. 24일이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일인데도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 후보자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에 남아 있으면 출마 자체를 봉쇄할 테니 유 의원 스스로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를 하거나 불출마를 하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우리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비열하고 악랄한 공천 배제 수법이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뻔뻔한 여당이 총선에선 무슨 염치로 국정운영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할 텐가.
유승민 의원을 내쫓는 과정에서 보여준 새누리당 지도부의 행태는 최악의 저급함 그 자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 의원을 공천할 생각은 처음부터 추호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론의 반발이 무서워서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이한구)와 최고위원회는 핑퐁게임을 하듯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후보 등록 직전까지 공천을 보류하면서 유 의원을 쫓아냈으니, ‘작전이 성공했다’고 청와대와 친박 세력은 환호라도 할 셈인가.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인사들이 보여준 언행을 유권자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3일 낮에도 이한구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유 의원 스스로 (탈당이든 불출마든) 결정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친박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한술 더 떠 “유 의원에게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결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는 건 특권이자 우리의 애정의 표시”라고까지 주장했다. 이쯤 되면 친박 세력의 자기합리화는 남에게 고통을 주고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 수준이 아닐까 싶다.
유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세력의 정치적 목적은 달성됐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 눈 밖에 난 현역 의원들을 아예 경선에조차 부치지 않고 배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친박 색깔이 매우 강한 지역구 공천을 완료하는 데 성공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청와대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 김무성 대표가 반대하는 시늉만 하고 사실상 방관한 결과다. 특히 “나는 유승민 의원에게 공천을 주자고 주장했다”는 말 한마디로 ‘유승민 축출 책임’을 면피하려 한 김무성 대표는 스스로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지역구만이 아니다. 비례대표 역시 다양한 계층과 소수자 배려라는 기본 취지와 정반대로 오직 박 대통령에게 충성했던 ‘문제 인물’들을 대거 당선권에 배치함으로써 이번 공천의 주체가 당원이나 국민이 아닌 ‘대통령 1인’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보다 훨씬 심한 이런 식의 공천으로 총선에서 국민 심판을 받겠다는 권력의 오만함이 무서울 정도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이 옳은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세력이 옳은지는 이제 국민 판단에 맡겨졌다. 최소한의 자정 기능을 상실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국민이 표로써 제어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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