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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9 18:49 수정 : 2016.03.29 20:27

총선이 보름도 안 남았다. 이맘때면 후끈 달아올랐을 광주가 조용하다. 열기는커녕 냉기류가 느껴진다. 도대체 야권의 심장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얼마 전 총선의 대진표가 확정됐다. 광주에는 선거구 8곳에 43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경쟁률이 5.38 대 1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야권이 분열하며 후보가 늘어났다. 두 야당은 광주에서 한창 적통을 다투고 있다. 시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국민의당은 현역 의원 5명을 출전시켰다. 천정배·박주선·김동철 의원은 3~5선의 중진들이다. 새정치를 내걸었으나 낡은 틀을 깨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탈당 사태 뒤 심하게 흔들렸다. 인물난을 겪다 서둘러 정준호·최진 후보 등을 공천했다. 지역에 알려지지 않은 얼굴들이라 반감이 일었다.

공천자를 뜯어보면 재야진보세력이 퇴조했다. 광주정신을 실현할 인물이 턱없이 부족하다. 야성의 거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장관 출신 3명을 비롯해 판사·검사·의사·교수 출신 등 전문가가 두드러진다. 광주북갑에서는 변호사끼리 맞대결을 펼친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인 송갑석(광주서갑) 더민주 후보 정도를 진보로 볼 수 있다.

80년 5·18을 겪은 광주는 역대 선거에서 정권심판을 이끄는 태풍의 진원지였다.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13대 총선부터는 전국의 판세를 좌지우지했다. 13대 총선에선 5·18 민중항쟁동지회 정상용 회장과 5·18 당시 시민에 대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던 정웅 31사단장 등 정치 신인 4명이 야당 공천을 받았다. 현역은 후보 5명 중 1명뿐이었다. 이런 과감한 공천으로 평화민주당은 전국에 황색 돌풍을 일으키며 여소야대를 만들어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광주청문회’와 ‘5공청문회’가 가능했다. 광주 시민들은 해묵은 체증을 후련하게 풀어준 13대 국회를 소중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 선거에서 광주의 공천은 현역과 신인이 균형을 맞췄다. 민주화라는 목표를 공유한 야당과 재야는 선거 때마다 새 인물을 수혈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는 새천년민주당 후보 6명 중 김경천·정동채·김태홍 등 3명이 새로 등장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 바람이 거셌다. 현역 7명 중 5명이 바뀌고 39살의 운동권 출신 강기정이 발탁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야권연대가 이뤄졌다. 재야에서 잔뼈가 굵은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가 원내로 들어갔다. 광주의 정치적 건강성은 이런 방식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야당의 입김은 세지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이번 총선의 공천 결과가 나오자 시민단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나물에 그 밥’,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라고 혹평을 내놨다. 정당 대신 인물을 보고 찍겠다던 광주 시민들도 속절없이 한숨만 짓고 있다. 한 시민은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정답이 없는 시험”이라고 비유했다. 일부에선 “대구의 김부겸 같은 인물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당이 7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참신한 인물이 없어 현역들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는 벌써부터 총선 이후를 우려하고 있다. 광주에 기반을 둔 지역당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지역당은 광주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내년에 치를 대선의 구도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 없이 무기력한 광주를 보며 60대 교수는 이렇게 고언했다. “시민의 정치의식을 야당들이 못 따라가고 있다. ‘전략투표’를 하는 광주는 놔두고 다른 지역에서 승부하라.”

안관옥 호남제주팀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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