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29 20:11
수정 : 2016.03.30 19:07
4·13 총선 격전지 르포
서울 은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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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을 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재오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진관동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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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은 서울 불광동 대조시장에는 머위, 미나리 등 제철 나물들이 파릇파릇했다. 하지만 나물을 다듬는 아낙의 얼굴들엔 주름이 깊었다. 맞은 편 어물전 사장과 바로 옆 찬가게 주인의 낯빛도 아직 겨울이다. 그래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며 찾아오는 이들을 맞을 때면 슬쩍 미소를 보이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강병원(45) 후보가 시장을 돌 때도 그랬다. 이들의 시름은 풀리지 않는 경기 탓이다. 상인 정만열(64)씨는 “정말 살기가 어렵다”며 하소연했다. 강 후보는 그의 손을 잡으며 “나에게 맡겨만 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여 단독후보 이재오
친박성향 노년층 붙잡기가 관건
경선서 임종석 꺾은 더민주 강병원
지역 정치경험 1년이 약점
12년간 당협위원장 국민의당 고연호
“단일화는 진실성 잃었다” 단호
지역구 도전 정의당 김제남
“단일화 논의 계속해나갈 생각”
상가를 도는 강 후보는 상인들에게 “연신내 행복식당 둘째 아들”로 통했다. 그의 어머니가 연신내에서 오랫 동안 식당을 한 덕분이다. 그의 보좌관은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셨으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강 후보가 총학생회장이 되던 시절 떠나셨죠”라고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지역 경험이 1년가량밖에 되지 않는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이 지역에서 나왔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의 주요 공약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차별금지법 도입, 청년 일자리 공유제, 주거권 확립 등이다.
은평을은 여·야 할 것 없이 소란스러웠던 이번 경선에서도 특히 파란을 연이어 겪은 곳이다. 5선의 현역 이재오 의원(전 새누리당)은 ‘쓴소리’로 친박의 눈밖에 나면서 공천에 탈락했다. 더민주에선 정치신인 강병원 후보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임종석 후보를 꺾으며 이변을 일으켰다. 정의당 김제남 후보(현 비례대표 국회의원)는 지난 22일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다른 후보들은 소극적이었다. 컷오프(공천 배제)된 이재오 후보가 무소속으로 본경기에 나서면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다여 다야’ 구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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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당 고연호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불광동 연서시장입구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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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예상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옥새투쟁’으로 빗나가 버렸다. 김 대표는 석연치 않게 경선에 탈락한 이들의 6개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하루 만에 절반인 3곳만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투항했는데, 이 가운데 은평을이 포함됐다. 새누리당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서 여권 표심은 이재오 후보로 뭉칠 모양새다. 단일화에 지지부진하던 야권 후보들에게는 발에 불이 떨어졌다. 강 후보는 지난 27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뒤늦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는 잘라서 거절했고, 정의당 김 후보도 “뒤늦은 꼼수 단일화”라고 유감을 표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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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제남 후보가 29일 오전 서울 불광로 대조전통시장에서 한 상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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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후보는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지난 28일 오후 빨간 점퍼 차림에 기호 8번을 단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갈현동 일대를 누비며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과일과게 주인 최정심(73)씨는 이 의원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 이 의원은 “내가 새벽 4시반쯤 자전거 타고 돌고 오면 이 집만 불이 켜져있어. 최고로 부지런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최씨는 최근 새누리당 공천 파동을 언급하며 “(김무성) 대표님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어야 하는데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그래”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아무개(70)씨는 “그동안 야당 후보들은 다 뜨내기들이었다. 은평뉴타운, 성모병원·롯데몰 입주 등 현안을 잘 마무리하려면 본토박이 후보가 더 하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엠비엔>(MBN) 방송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발표한 이 지역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 유재길 예비후보 24.4%, 더민주 강병원 후보 16.1%,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 16.8%, 정의당 김제남 후보 7.3%, 무소속 이재오 후보 20.4%였다. 여당 지지자가 이재오 후보를 찍을 경우 지지율은 40%를 넘는다.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점도 우세 요인이다.
하지만 장·노년층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어 친박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해온 것은 그에게 불리한 요소다. 불광역 엔씨백화점 앞에서 만난 홍아무개(65)씨는 “지난번에 이재오를 찍었는데 이번엔 생각 중이다. 같은 당이면 대통령을 도와야지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 하면 되나”라고 말했다. 은평을은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이 의원이 통합진보당 천호선 후보에게 1459표, 1.14%포인트 차로 가까스레 이긴 지역이기도 하다.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는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더민주에서 은평 지역 당협위원장 등을 맡아오다 탈당 뒤 국민의당에 합류해 이번 총선해 도전한다. 10년 넘게 지역을 살펴온 경험이 있다. 29일 불광역 앞에서 만난 그는 “여와 야 모두 공천파동의 여파가 대단하다. 경제민주화 발목을 잡는 여당, 경제성장 발목을 잡는 야당이 아니라면 답은 나와 있다”고 말했다. 차화순(62·채소가게)씨는 “이재오 의원이 오래해서 믿었는데 지난 8년 동안 큰 발전이 없었다. 민주화 세력도 국회에만 가면 싸우는 것 같다.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후보는 이 지역을 지나는 6호선 지하철의 복선화 사업, 소상공인 마케팅·자금 지원, 은평새길 조기 착공 등 지역 현안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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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강병원 후보가 28일 서울 불광동 대조전통시장에서 유권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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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야권 연대에 대해선 단호하다. 고 후보는 “투명하지 않고 유능한 인물을 뽑을 수도 없는 단일화는 진실성을 잃었다. 자신이 없다면 옆의 사람 흔들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설 작정이었지만 야권 연대로 천호선 통합민주당 후보에게 자리를 내준 경험이 있다. 당시 선거는 이재오 의원에게 패했다.
현역 국회의원(비례대표)인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야권 후보 단일화의 불씨가 아직 꺼지진 않았다고 여긴다. 29일 대조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민심은 여권 맹주 이재오를 누가 이길 것이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민주주의포럼’ 등 야권 원로그룹들이 일찌감치 이 지역 후보들에게 단일화 제안을 했음에도 아직 지지부진한 데에는 “더민주의 패권적인 행태”에 원인이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 정권의 실정을 막기 위해 “단일화 논의는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19대 국회 때 소상공인 살리기 등에 역점을 두었던 김 후보의 핵심 공약은 지역 상권별 맞춤 지원을 통한 경제활성화 대책, 은평의 저공해 ‘녹색 교통 요충지’ 탈바꿈 계획, 둘레길을 통한 생태문화관광 육성 등이다. 방앗간을 하는 구아무개(60)씨는 “처음 (김제남 후보) 이름만 들었을 때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니 작은 체구의 여자더라. 현역 경험을 살려 은평 경제를 살리는 큰 변화를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이경미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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