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총 7개 핵심 경제공약 중 ‘청년일자리 창출’과 ‘저성장기조 탈출’을 위한 공약 1·2호를 발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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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
강봉균 “산은채권·주택대출증권
한은이 돈찍어 직접 사라” 주문
가계대출 뇌관 폭발 막으려는 의도
“제로금리도 아닌데 왜” 반론 나와
한은도 금통위 독립성 우려 목소리
현행법상 산은채권 인수 어려워
새누리당이 한국은행이 주택담보대출증권 등을 직접 사게 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은의 통화정책이 외압에 노출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언급한 채권들은 현재 한은이 인수 가능한 것도 아니라서 공약의 현실성도 의문시된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 등이 보유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비전통적 방식의 통화정책이다. 새누리당 공약은 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을 돕기 위해 산은 채권을 한은이 사들이고, 주택담보대출의 장기분할상환 유도를 위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도 직접 사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한은이 새 돈을 찍어 조달하게 된다.
주택금융공사는 은행들로부터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안심전환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인수해 이를 기초로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했는데, 이를 한은이 사면 가계의 빚 부담도 줄이고 돈이 더 풀릴 것이라는 게 공약의 의도로 보인다. 짧게는 수년인 상환 기간을 20년까지 늘린다는 게 목표로 제시됐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행법이 명시한 한은의 중립성과 자주성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독립성을 내세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거 등 정치적 목적에 의한 통화 발행 남용을 막으려는 이유에서다. 한은 관계자는 “이 공약은 한은의 독립성과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선거 공약에서 통화정책이 등장한 것은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놓고도 논란이 불가피하다. 미국이나 유로존 중앙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로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린 상태에서 더 쓸 수단이 없자 독자적 판단으로 국채 등을 직접 사들여 돈을 풀었다.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1.5%다.
주택저당증권 잔액은 90조원가량이다. 한은은 주택금융공사에 6450억원을 출자해 가계부채 문제의 연착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현재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81조9천억원이다. 새누리당이 채권 매입 규모를 얼마나 예상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공약이 현실화하면 한은에는 큰 부담이 된다.
이런 부담은 통화 발행 남발로 인한 경제질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한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최근 가계부채 급증을 막으려고 정부가 대출 심사를 강화한 것과 반대되는 시그널(신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막대한 돈이 풀렸을 때의 통화가치 하락이나 대규모 채권 상환 때의 충격을 고려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 유로존, 일본과 달리) 비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양적완화가 과잉 유동성, 물가 압력 확대, 원화 가치 급락에 따른 자본 유출 확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은은 산은 채권이나 주택저당증권은 현행 규정상 인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법과 규정은 매입 가능 채권을 국채와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 채권 등으로 제한하며, 주택저당증권은 매도자가 되사는 것을 전제로 하는 환매조건부 매매로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시장금리를 움직이는 유동성 조절 수단으로서만 쓸 수 있는 채권이지 한은이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공약의 의외성 때문인지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당의 공약으로 나온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까지 했다. 그는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기재부 장관으로서 금리 등 한은의 고유 업무에 대해 말씀드릴 처지가 아니지만,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의 경우 소신을 가지고 말했을 것이며 당의 선거 공약은 아니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이본영 김남일 기자 ebon@hani.co.kr
양적완화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로 통화량을 조절한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0에 가까워 더 이상 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때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 채권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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