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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03 11:51 수정 : 2016.04.04 11:17

정치BAR_4·13총선 알아야 할 10가지_#9_박근혜의 힘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이 치러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권력의 지형을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내년 대선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끼칠 선거이기도 합니다.

정치BAR에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당신이 알아야 할 10가지’를 정리했습니다. 투표를 꼭 해야 하는 이유로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정책적 이슈를 정리했습니다. 총선에서만 활용될 ‘1회성 공약’이 아닌, 총선 이후 대선까지 논쟁이 지속될 정책적 사안에 주목했습니다. 인권 보장과 복지 확충, 대북·외교 정책 등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논점들입니다.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독주에 속도가 붙을 수도, 제동이 걸릴 수도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총선 결과를 좌우할 정치적 변수도 짚었고 암울한 디스토피아도 상상해봤습니다. 정치BAR가 준비한 핸드북 ‘4·13총선 알아야 할 10가지’ 지금 만나보시죠.


박근혜의 힘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다. 그때만 되면 괴력을 발휘한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죗값을 치러야 했던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서 당을 궤멸적 위기에서 구해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때는 컷터칼로 깊은 자상을 입었고, 수술 직후에도 선거 판세를 물어봤다는 언론 보도까지 더해지며 그는 ‘레전드’가 됐다. MB 정권 말기에 온갖 추문으로 추락하던 한나라당의 껍데기를 새누리당으로 빨갛게 바꿔, 야권연대의 맹위를 뚫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대선까지 파죽지세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2013년 6월 오전 부산 사상구 괘법동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유세를 한 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손수조 미래세대위원장 등과 함께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부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시나브로 쪼그라든 친박계

선거에서 그가 발휘하는 위력은 ‘콘크리트 지지율’에서 나온다. 특히 중·장년층, 대구·경북에서 그를 향한 지지는 절대적이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연민으로 다가온다. 이땅의 가난을 면해준 위대한 지도자로 반인반신의 경지에 오른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추앙이 강해질수록 박근혜의 지지 기반도 탄탄해진다.

그러나 당내 경쟁에서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일 뿐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했다. 집권한 뒤에는 승리보단 패배에 익숙하다. 2014년 서울시장 경선에서는 친박계가 공공연하게 지원한 김황식 전 총리가 비박계인 정몽준 전 의원에게 패했다. 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서는 친박계인 황우여 의원이 비박계인 정의화 의원에게 졌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을 내세워 당을 접수하려 했지만 일찌감치 친박계와 갈라선 김무성 의원에게 당권을 내줬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인 이주영 의원이 유승민 의원에게 밀렸다.

그의 연전연패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는 자기와 한 번이라도 뜻을 달리하면 포용하기보다 내치는 스타일이다. 친박은 이명박 계보였던 친이와 대척점에 있었던 당내 다수 계파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용렬한 용인술에 따라 짤박(짤린 친박), 멀박(멀어진 친박), 홀박(홀대받은 친박) 등의 온갖 ‘박’들이 탄생하면서 비박으로 분화한다. 친박계에서 파문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친박계는 시나브로 쪼그라들었고 비박계는 다수파가 됐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새누리당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난 30일 오전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주지 효광스님 진산식(취임법회)에 친박계와 유승민계 총선 후보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앞줄 오른쪽부터 최경환, 정종섭, 김문수 후보. 뒷줄 오른쪽부터 류성걸, 유승민, 권은희 후보. 연합뉴스


개기면 죽는다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장악하면서 여당이 대통령의 ‘돌격대장’ 노릇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건전한 긴장관계를 설정하는 듯 보였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던 박 대통령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국회법을 여·야 합의로 개정해 국회가 만든 법률을 행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하는 행태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유승민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여당 원내대표 노릇은 민주적인 리더십을 경험하지 못한 박 대통령에겐 배신이고 배반이었다. 박 대통령은 개정 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한다”며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고고도 레이저를 쏴댔다. 친박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탄핵에 가담했고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는 2015년 7월, 취임 5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응징은 계속됐다. 박 대통령은 2015년 11월 ‘진실한 사람’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선거운동의 밑자락을 깔았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등 국무위원들이 하나둘 사표를 내고 총선에 차출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진박’ 딱지를 단 예비후보들은 대부분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는 대구로 파견됐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대통령의 인증에도 진박들의 지지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 성과를 점검한다며 대구를 방문해 지원사격을 가했다. 친박계는 공천심사기구를 장악해 유승민 의원의 측근을 떨어뜨리고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진박들을 공천했다. 유 의원은 탈당 시한이 다 되도록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치졸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유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위해 당을 나가야 했다. 박 대통령에게 유 의원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4.13 총선 대구 동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승민 의원이 지난 30일 오후 대구시 동구 용계동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지나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퇴임 이후 안온함 또는 ‘종신 총리’ 음모

‘유승민계 숙청’이라는 박 대통령의 무리수는 레임덕의 싹을 자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소수파가 돼버린 새누리당의 친박계를 다시 다수파로 불려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려는 구상이다. 2018년 2월에 끝나는 대통령 임기 이후를 대비한 포석이기도 하다. 퇴임 이후를 ‘안온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다음 정권의 공격에서 자신을 성심으로 보호해줄 친박·진박이 필요하다. 물론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제 개헌을 통해 박 대통령이 종신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야망이 내포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그를 향한 대중의 ‘콘크리트 지지율’에서 비롯된다. ‘선거의 여왕’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무리수를 막 던졌다. 유승민과 그의 측근들은 가혹하게 보복당했지만 박 대통령의 사진을 선거 사무실에서 내릴 수 없다. 불구대천의 원수, 그래서 꼴도 보기 싫을 박근혜의 ‘존영’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진박’ 정종섭 후보가 박 대통령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에 비유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구박받는 콩쥐나 귀염받는 팥쥐나 ‘박근혜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콘크리트 벽은 갈라질 수 있을까

물론 미세한 균열의 조짐도 보인다. 유승민 의원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가 이어졌던 3월 넷째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도는 36%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전주 대비 6% 포인트나 빠진 64%를 기록했다. 유 의원의 측근인 대구 동갑의 류성걸 후보는 ‘진박 중의 진박’인 정종섭 후보와 접전을 펼치고 있다. 유승민으로 대표되는 건전보수 세력을 지질하게 내친 행태가 수도권 부동층의 표심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크다. 여왕은 선거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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