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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08 19:32 수정 : 2016.04.09 09:08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한 각 당의 비례후보자들. 왼쪽부터 김종대, 제윤경, 신보라, 이계삼, 채이배, 금민 후보.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정치BAR 피티쑈

각 당 비례후보자 통해 들어본
‘우리 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플라톤은 “착한 이들이 공적 사안에 무관심하면 악인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래서 출마한 정치인, 패배한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다음 선거가 돌아오는 4~5년 내내 결과의 지배를 받는다. 기꺼이 투표한 이도, 기권한 이도 마찬가지다. 모두의 선택이고 모두의 책임이다. 예외가 없다. 이번 4·13 총선에서 유권자는 지역구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투표한다. 정당투표 3% 이상, 지역구 5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이 나눠진다.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정하셨는가. 아직 지지 정당을 확정하지 못했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피티(PT)쑈’에서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이 모여 소속 정당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뜨거웠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지향해야 할 바가 이곳에서 다뤄졌다.

▶ “잔 다르크 식 열정을 봤다”,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열정, 헌신, 감성이 묻어났다”,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6명의 각 당 비례후보들의 피티쑈를 지켜본 청중들의 소감입니다. 피티쑈 현장은 선거운동 현장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은 상당수가 국회의원이 돼 의정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비 국회의원이라 할 이들에게 정치란, 정당이란, 바람직한 한국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요? 선거 뒤 우린 정치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요?

“발표자들은 배정받은 비례 순번상 의정활동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선수(당선 횟수)가 ‘깡패’죠. 비례대표에다 초선인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의정활동의 각오, 의정현실을 헤쳐갈 복안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양화로의 ‘미디어카페 후’.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바(BAR)가 이날 연 ‘피티(PT)쑈’에 참석한 청중 30여명 중엔 20~30대 청년들이 많았다. 50대가량으로 보이는, ‘분당에서 온 이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유독 눈에 띄었다. 질문 도중 ‘경험에 비춰보면’이라 말한 것으로 보아 당직자 등의 신분으로 국회에서 활동했던 듯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감시자가 돼 여러분의 4년 의정활동을 지켜보겠습니다.” 말미에 그가 힘을 실었다. 무대 위 나란히 앉은 발표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발표자들 중 당선 안정권인 이는 “‘실무자 국회의원’이 되겠다”거나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걸 막겠다”, “반드시 관련 법을 제정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원외정당의 후보들은 ‘국회 입성’을 전제로 “정당정치와 원내정치의 문화와 관행을 완전히 바꾸겠다”거나 “임기 내내 기본소득 같은 이슈를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성서 잠언의 저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적었다. 오늘날 이 문장 그대로의 상황은 선거에서 구현된다. 혀의 힘으로 후보들은 죽기도, 살기도 한다. 혀의 힘은 확신에서 나온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직업정치가 곧 ‘소명의 정치’라 했다. 베버는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여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확신이 있는 사람, 어떤 일에 직면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의 소명을 지닌다”고 했다. 정당정치를 본령으로 하는 오늘날의 민주정치체제에서 혀의 힘은 비슷한 확신을 지닌 이들의 정치결사체 ‘정당’의 힘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정치적 생과 사를 가르는 날이 곧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선 대체 어떤 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외칠 수 있을까. 이들의 정당 중 어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만한, 소명의 정치를 실현할 정당일까.

■ [관련기사]

▶[풀영상] ‘당신의 한 표, 저에게 주세요’ 피티쑈
▶새누리당 신보라 비례대표 후보 피티
▶국민의당 채이배 비례대표 후보 피티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비례대표 후보 피티
▶노동당 금민 정책위 의장 피티
▶녹색당 이계삼 비례대표 후보 피티
▶정의당 김종대 비례대표 후보 피티

“우리 당을 지지해주세요”

정치바는 <한겨레>가 만드는 정치 콘텐츠 전문 디지털 매체다. 피티쑈는 정치바가 시민·독자와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기획한 행사다. 지난해 12월부터 다달이 시민의 정치 참여, 청년정치, 여성정치 등의 주제를 놓고 연사들과 독자들이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지난 5일에 열린 다섯번째 피티쑈의 주제는 ‘우리 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였다. 정당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각 당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발산할 당선 유력권에 있는 비례대표를 연사로 초청했다. 의미있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기존 언론보도에서 소외된 원외정당도 초청했다. 피티쑈의 발표자에겐 10분씩의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다. 발표 자료를 먼저 보내온 이부터 발표 순서를 고르게 했다. 발표자들은 자신의 이력과 강점에 기대 각 당의 주요 정책을 풀어놨다. 청년 후보는 청년정책을, 경제단체에서 오래 시민운동을 해온 이는 한국의 경제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놨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 근원적 전환을 호소한 이도 있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 안에 있는 피티쑈 행사장 무대에 각 당의 발표자들이 나란히 앉아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신보라, 제윤경, 금민, 이계삼, 김종대, 채이배 후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새누리당의 청년 할당 비례후보(7번)인 신보라(33) 전 청년이여는미래 대표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새누리당의 청년정책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새누리당은 당선 확정권에 청년들을 배치했습니다.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이준석(31) 후보와 부산 사상의 손수조(31) 후보, 서울 관악갑의 원영섭(38) 후보가 근거였다.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요? 청년후보들이 본선에서 뛰고 있나요? 당선 확정권에 청년들을 배치하고 있나요? 청년들에게 열린 기회를 준다지만 실상은 청년들에게 인색한 모습입니다.” 신 후보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 등 야당 소속 단체장들의 청년 지원 정책도 거론했다. “절박한 청년들에게 야당은 몇 달간 돈을 줄 테니 일자리는 너희가 알아서 찾으라고 합니다. 세금으로 생색은 다 내면서.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 묻고 싶습니다.”

신 후보의 억양은 청중의 수나 행사장 규모에 견줘 다소 연설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는 “3가지 방안을 통해 ‘청년의 독립’을 약속하겠다”며 “청년들의 주거 부담과 재정 부담을 덜고, 국가의 ‘일자리 중매’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했다. “부처마다 운영되는 청년정책이 150여개에 달하지만 정책의 수혜자인 청년들의 체감도는 매우 낮습니다. 청년기본법을 제정해 청년지원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해 체감도를 확 끌어올리겠습니다. 정책 수립 때 청년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신 후보는 청년정책을 포함해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제시한 ‘5대 개혁과제’를 소개했다. 의회도 국민과 똑같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고(‘갑을개혁’), 엄마들의 자립과 양육을 돕고(‘마더센터’), 노년의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하고(‘4050 자유학기제’), 기업이 공정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일자리 규제 개혁’)이다.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후보들은 이 같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1년 안에 개혁법안을 발의하겠다는 공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이런 새누리당이 어찌 허황되고 거짓된 공약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공정하고 열린 기회를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첫 10분이 끝났다.

‘혀의 힘’이 생과 사 가를 날 온다
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칠까
피티쑈에 6개 정당 후보자 참여
청중 “4년 의정활동 지켜보겠다”
후보자들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새누리당 “청년에게 도전기회 줘”
국민의당 “거꾸로 된 한국 경제”
더민주 “죽은 채권 부활 금지”
연설조, 차분한 설명, 호소력 ‘눈길’
어느새 또 10분이 지나 있었다

“한국은 위기입니다”

다음 순서는 국민의당의 비례후보(6번)인 채이배(41) 국민의당 공정경제위원장이었다. 회계사이자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출신답게 그는 ‘공정성장’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들 하는데 임금불평등, 즉 소득의 불평등이 가장 주요한 원인입니다. 또 이것의 원인은 기업불평등과 고용불평등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각종 통계수치를 들어 국민의당의 공정성장 정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2013년 기준 아시아 국가들의 상위 10% 소득점유율(국제통화기금) 자료를 보면, 한국은 45%의 비중을 차지해 싱가포르(42%), 일본(41%), 뉴질랜드(32%)보다 높았다. 경제 성장과 실질임금 성장의 격차도 점점 벌어졌다. 2000년 이후 2014년까지 국내총생산은 73.8%가 상승했지만 전 산업 평균 실질임금은 같은 기간 38.6%밖에 늘지 않았다. 그는 “이는 소득의 대부분이 근로자에게 가지 않고 기업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 했다. “이로 인해 예전엔 가계에서 돈을 벌어 저축하면 기업이 은행에서 빌려 투자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기업이 은행에 저축하고 일반 국민들이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생활비로 쓰는, 거꾸로 된 경제로 가고 있습니다.”

각종 수치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엄혹한지 단적으로 드러냈다. 기업 간의 불평등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전체 기업의 당기순이익 중 59.6%를 재벌 등 100대 대기업이 가져갔다. 반면 중소기업의 이익은 35.3%로, 이익이 대기업에 몰려 있었다. 그럼에도 고용은 중소기업이 전체의 71.5%를 책임졌다. 대기업은 4.1%에 불과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에 소득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둘 사이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1980년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96.7% 수준으로 거의 비슷했던 반면, 지금(2014년)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고용 기간은 불과 평균 5.5년(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이다. 채 후보는 “5년 정도 회사를 다니면 다음 회사를 또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고용유연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인데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해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 ‘쉬운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소득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며, 모두 공평하게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게 국민의당의 기조”라고 강조했다.

세번째 발표자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후보(9번)인 제윤경(44) 주빌리은행 대표였다. 그는 오랜 기간 서민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몸담아왔다. 그는 “소멸한 채권이 다시 살아나지 않게 규제하고 금융회사의 채무조정 절차를 의무화하겠다”고 말했다.

제 후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어렸을 땐 저녁 7시만 되면 동네 공장 앞에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서성댔습니다. 어슬렁대다 보면 친구들을 만났는데 매번 거짓말을 했습니다. 공장에 다니는 엄마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땐 가난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가난은 더 나아갑니다.” 그는 채권추심원과 마주칠까 두려워 아이를 아침 일찍 등교시키고, 60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한밤중에 아이가 보는 앞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유치장에 끌려간 한부모가정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채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반복적으로 추심됩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습니다. 야만적입니다.”

6명의 발표자들이 무대에 프레젠테이션(PT) 화면을 띄워놓고 각자 자신의 이력과 강점에 기대 각 당의 주요 총선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정치가 마음만 먹으면…”

부실채권의 유통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제 후보의 말은 빠르고 짧게 끊어졌다. “카드사에서 100만원을 빌려 3개월을 연체하면 부실채권이 됩니다. 카드사나 은행은 신중한 대출, 책임있는 대출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카드사는 이를 회계장부에서 0원으로, 상각처리하고 손실처리합니다. 이어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치웁니다. 100만원의 빚을 진 김아무개의 채권은 3만~10만원에 팔립니다. 하지만 채권의 재산권은 고스란히 양도됩니다. 소득과 재산을 조사하고 유체동산 압류예고장을 보내 살림살이를 압류합니다. 추심원은 꼭 아무도 없는 시간에 찾아옵니다.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가 가난한 살림살이에 딱지를 붙입니다.”

‘가난의 야만적 그림자’를 걷어내겠다는 제 후보의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었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채권추심 문제에만 할애하고 있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이 323만명의 신용유예자를 구제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대신 추심사업을 해 은행에 돈벌이를 안겨줬습니다.

정치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죽은채권부활금지법’을 만들어 채권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규제하겠습니다. 340만명의 채무자들에게 제기의 기회를 보장해 인권이 우선이고 사람이 우선인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어느새 또 10분이 지나 있었다.

이날 피티쑈엔 원외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도 참여했다. 금민(54) 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네번째 발표자였다. 발표자 중 유일하게 비례후보가 아닌 그는,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엔 출마하지 않았다. 금 의장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 현실의 전반을 살피면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한 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소득도 줄지 않고 일자리도 는다. 저성장 위기의 시대를 맞아 경제, 사회 체제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불안정 노동인데다, 최악의 저임금·장시간 노동 국가인 한국에선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는다. 노동이 가져가는 몫을 의미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0% 떨어지고 일본보다 15% 적다. 빚져야 겨우 집 얻고 생활비를 조달한다. 임금격차는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해 있다”. 복지에 쓰는 공공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이다. 그런데 세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0% 모자라게 걷는다. 정부와 여당은 ‘수출하면 나아질 것’이라지만 전세계 경제가 어렵다.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소비마저 얼어붙었다. “그러니 사람들 사는 게 사람 사는 삶인가.”

현실은 암울하지만 답은 선명했다. 그는 “프랑스가 과거 사회당 정부 시절 그랬듯,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소득이 준다고 걱정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하면 소득도 줄지 않고 노동시간도 단축됩니다.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되고 삶과 일과 가족이 균형을 찾는 겁니다. 모두에게, 청년들에게도 안정된 일자리가 생깁니다.” 금 의장은 이와 함께 “간접세 중심의 조세 체제를 고부담 누진 소득세 중심으로 바꾸고, 토건예산을 줄이고, 국방예산을 삭감하면 225조원이 생긴다”면서 그리되면 “국민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이 던지는 한 표는 경제침체 저성장 시대에 모두가 함께 살자는 외침입니다. 노동당이란 특정한 정당에 던지는 한 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에게 던지는 한 표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 의장이 마지막 말을 마치자마자 10분의 경과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사회자가 “알파고 수준의 시간 엄수”라 칭찬했다. 청중들이 웃었다.

노동당·녹색당 원외정당도 참여
노동당 “노동시간 대폭 줄여야”
녹색당 “1석의 의미는 다르다”
정의당 “국민 월급 300만원 시대”
“새누리당 면제” 농담에…

2부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엔
의정활동 각오, 신산업 육성,
미래세대 대책, 통일 물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의 마음은 어디를 향할까

“민주주의, 껍데기만 남아”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탈핵운동가 이계삼(42)씨가 다섯번째 발표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녹색당의 비례후보(2번)다. “학교를 그만두고 우리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위한 실천에 동참하기 위해 밀양송전탑 사건을 함께했다”는 그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대안적 삶을 위한 정치로 국회를 채워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2년 교장 선생님에게 사직서를 낸 며칠 뒤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자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밀양송전탑 사건에 함께하게 됐고,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거리에서 움막에서, 경찰과 한전과 부대끼면서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질문 앞에 매일 마주쳤습니다.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철탑은 10년이 걸려 끝내 완공됐다. 그동안 밀양엔 하루 3천명의 공권력이 들어와 계엄군처럼 주둔했다.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383명의 주민이 입건됐다. 아직 한전이 주는 돈을 거부하고 싸우는 300여명의 이들이 남았다. “전기가 모자라서 송전탑을 짓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게 결국 돈 문제, 대자본의 문제였습니다. 핵발전소의 건설과 유지 운영에 관계하는 몇 개의 대기업들이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모든 고통을 떠넘긴 것입니다. (핵발전소의 폐기물을) 10만년이나 보관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후손들에게 다 떠넘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현실은 법이 정당성을 보증하고 있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모순, 비합리의 바탕은 모두 이런 얼개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차분했던 이 후보의 목소리는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그는 “녹색당의 한 석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9천명의 녹색당원이 모두 국회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전혀 다른 목소리와 새로운 논리, 새로운 의제로 허당이 된 한국 정치의 공간을 채워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무대 위 화면엔 31년 만에 탈핵을 이뤄낸 독일 녹색당과, 10년 만에 기본소득을 국가의 정책으로 만든 핀란드 녹색당의 모습이 비쳤다.

“녹색당의 한 석이 갖는 의미와 변화의 차이를 헤아려주십시오. 어둠을 저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입니다. 녹색당에 던지는 한 표는 전환의 씨앗이 되고 대안의 숲을 이뤄낼 것입니다. 녹색당이 한국의 광막한 어둠에서 한 자루의 촛불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초의 불을 켜주십시오.” 발표가 끝났다. 청중의 박수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 듯했다.

마지막 발표는 국방안보 전문가이자 정의당의 2순위 비례후보인 김종대(49) 후보가 맡았다. 김 후보는 먼저 “(앞서 발표된) 많은 공약도 지키지 않으면 허당이다. 새누리당은 공약을 자꾸 잊어버린다”며 “징병검사 때 인지능력 저하자는 병역이 면제된다. 새누리당의 국정수행 부담도 면제해야 한다”는 농담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듣는 이들이 씁쓸히 웃었다.

그가 소개한 정의당의 핵심공약은 ‘국민월급 300만원 시대, 복지임금 100만원’이었다. 아무래도 청년 문제가 핵심이었다. “문제는 청년들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사다리가 끊겨 있다는 것이죠. 일자리와 학업 등이 문제라지만 실제로 알아보면 진짜 고민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 자기 정체성이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의 전형입니다.”

그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정당에서 군 복무 기간 단축 공약을 냈지만 청년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2년가량인 고졸 군입대자의 대기 기간과, 제대 뒤 취업에 걸리는 31개월을 포함해 청년의 생애주기를 놓고 접근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안 지킨 공약 참고했다”

“정의당에선 국민월급 300만원 시대를 강조합니다. 임금 정책, 대기업 초과이익, 남녀임금 격차 해소,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됐을 때 2020년까지 구체적인 목표를 따져보니 월급 300만원 시대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단, 월급만 인상하면 현실성이 없겠죠? 중소상인, 자영업자, 골목상권 서민경제 그 자체에 온기가 돌도록 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300만원 시대는 구호에 불과할 겁니다. 결국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 11.9배를 2025년까지 5배로 줄이겠다는 겁니다. 단순한 구호 아닙니다.”

김 후보는 ‘복지임금 100만원’을 설명하면서 “고교 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같은 새누리당이 대선 때 공약했다가 지키지 않은 것들을 참고로 했다”고 또 농을 쳤다. 6명의 발표자 가운데 우스갯소리를 한 건 그러고 보니 김 후보뿐이었다.

“그동안 진보는 분열하고 내부 갈등이 있었습니다. 진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부끄러운 일 많이 겪었습니다. 3년 전 정의당 지지율은 1%였습니다. 풍찬노숙 절치부심하며 어엿한 원내정당으로 성장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피티쑈의 1부가 끝났다.

발표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진행된 2부에서 청중들은 의정활동의 각오 외에도 여러 가지를 궁금해했다. 기본소득 정책의 의의, 미래 먹거리인 신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과제, 청소년이나 영유아 등 미래 세대를 위한 대책,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 통일 등에 대해 물었다. 분위기는 차분하고 진지했다.

발표자들은 “공정성장의 혜택이 대기업에만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채이배), “현실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을 대학 교육 과정에 담으려 노력 중이다”(신보라), “불로소득을 당연시하고 부러워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제윤경), “시대정신의 전환을 위한 몫을 사회가 보장해줘야 한다”(이계삼)고 말했다. 금민 의장은 “4차 산업혁명 뒤 자동화된 기업은 인류 공동의 재산인 지식을 소유하게 되니 그들이 우리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김종대 후보는 “보수 정당들은 재벌과 성장 중심인 기존 경제구조와 체질을 개선하지 않고 시혜를 베풀 듯 공약을 남발한다”며 “위기상황에선 아무런 희망이나 비전을 주지 못한다”고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함께 비판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중 김 후보는 새누리당에 대해 ‘인지장애’라고 한 것을 두고 청중으로부터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란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 신 후보는 앞서 여러 발표자들이 새누리당의 공약 미이행에 대해 지적했지만 답변을 하지 않았다. 청중과의 대화는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열린 <한겨레>정치바의 피티쑈는 이날 행사를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했다. 향후 4년간 우리의 정치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각자의 마음에 꿈꾸는 나라, 필요한 정치의 상이 자리잡았을까. 4천만 유권자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피티쑈 한줄 관전평 청중 5명에게 들어본 “우린 이렇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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