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한 각 당의 비례후보자들. 왼쪽부터 김종대, 제윤경, 신보라, 이계삼, 채이배, 금민 후보.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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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 정치BAR 피티쑈
각 당 비례후보자 통해 들어본
‘우리 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플라톤은 “착한 이들이 공적 사안에 무관심하면 악인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래서 출마한 정치인, 패배한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다음 선거가 돌아오는 4~5년 내내 결과의 지배를 받는다. 기꺼이 투표한 이도, 기권한 이도 마찬가지다. 모두의 선택이고 모두의 책임이다. 예외가 없다. 이번 4·13 총선에서 유권자는 지역구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투표한다. 정당투표 3% 이상, 지역구 5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이 나눠진다.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정하셨는가. 아직 지지 정당을 확정하지 못했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피티(PT)쑈’에서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이 모여 소속 정당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행사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뜨거웠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지향해야 할 바가 이곳에서 다뤄졌다.
▶ “잔 다르크 식 열정을 봤다”,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열정, 헌신, 감성이 묻어났다”,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6명의 각 당 비례후보들의 피티쑈를 지켜본 청중들의 소감입니다. 피티쑈 현장은 선거운동 현장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은 상당수가 국회의원이 돼 의정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비 국회의원이라 할 이들에게 정치란, 정당이란, 바람직한 한국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요? 선거 뒤 우린 정치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요?
“발표자들은 배정받은 비례 순번상 의정활동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선수(당선 횟수)가 ‘깡패’죠. 비례대표에다 초선인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의정활동의 각오, 의정현실을 헤쳐갈 복안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양화로의 ‘미디어카페 후’.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바(BAR)가 이날 연 ‘피티(PT)쑈’에 참석한 청중 30여명 중엔 20~30대 청년들이 많았다. 50대가량으로 보이는, ‘분당에서 온 이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한 질문자는 유독 눈에 띄었다. 질문 도중 ‘경험에 비춰보면’이라 말한 것으로 보아 당직자 등의 신분으로 국회에서 활동했던 듯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감시자가 돼 여러분의 4년 의정활동을 지켜보겠습니다.” 말미에 그가 힘을 실었다. 무대 위 나란히 앉은 발표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발표자들 중 당선 안정권인 이는 “‘실무자 국회의원’이 되겠다”거나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걸 막겠다”, “반드시 관련 법을 제정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원외정당의 후보들은 ‘국회 입성’을 전제로 “정당정치와 원내정치의 문화와 관행을 완전히 바꾸겠다”거나 “임기 내내 기본소득 같은 이슈를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성서 잠언의 저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적었다. 오늘날 이 문장 그대로의 상황은 선거에서 구현된다. 혀의 힘으로 후보들은 죽기도, 살기도 한다. 혀의 힘은 확신에서 나온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직업정치가 곧 ‘소명의 정치’라 했다. 베버는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해 보여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확신이 있는 사람, 어떤 일에 직면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의 소명을 지닌다”고 했다. 정당정치를 본령으로 하는 오늘날의 민주정치체제에서 혀의 힘은 비슷한 확신을 지닌 이들의 정치결사체 ‘정당’의 힘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정치적 생과 사를 가르는 날이 곧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선 대체 어떤 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 외칠 수 있을까. 이들의 정당 중 어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칠 만한, 소명의 정치를 실현할 정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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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영상] ‘당신의 한 표, 저에게 주세요’ 피티쑈▶새누리당 신보라 비례대표 후보 피티
▶국민의당 채이배 비례대표 후보 피티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비례대표 후보 피티
▶노동당 금민 정책위 의장 피티
▶녹색당 이계삼 비례대표 후보 피티
▶정의당 김종대 비례대표 후보 피티 “우리 당을 지지해주세요” 정치바는 <한겨레>가 만드는 정치 콘텐츠 전문 디지털 매체다. 피티쑈는 정치바가 시민·독자와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기획한 행사다. 지난해 12월부터 다달이 시민의 정치 참여, 청년정치, 여성정치 등의 주제를 놓고 연사들과 독자들이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지난 5일에 열린 다섯번째 피티쑈의 주제는 ‘우리 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였다. 정당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각 당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발산할 당선 유력권에 있는 비례대표를 연사로 초청했다. 의미있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기존 언론보도에서 소외된 원외정당도 초청했다. 피티쑈의 발표자에겐 10분씩의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다. 발표 자료를 먼저 보내온 이부터 발표 순서를 고르게 했다. 발표자들은 자신의 이력과 강점에 기대 각 당의 주요 정책을 풀어놨다. 청년 후보는 청년정책을, 경제단체에서 오래 시민운동을 해온 이는 한국의 경제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놨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 근원적 전환을 호소한 이도 있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 안에 있는 피티쑈 행사장 무대에 각 당의 발표자들이 나란히 앉아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신보라, 제윤경, 금민, 이계삼, 김종대, 채이배 후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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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칠까
피티쑈에 6개 정당 후보자 참여
청중 “4년 의정활동 지켜보겠다”
후보자들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새누리당 “청년에게 도전기회 줘”
국민의당 “거꾸로 된 한국 경제”
더민주 “죽은 채권 부활 금지”
연설조, 차분한 설명, 호소력 ‘눈길’
어느새 또 10분이 지나 있었다 “한국은 위기입니다” 다음 순서는 국민의당의 비례후보(6번)인 채이배(41) 국민의당 공정경제위원장이었다. 회계사이자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출신답게 그는 ‘공정성장’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들 하는데 임금불평등, 즉 소득의 불평등이 가장 주요한 원인입니다. 또 이것의 원인은 기업불평등과 고용불평등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는, 각종 통계수치를 들어 국민의당의 공정성장 정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시한 2013년 기준 아시아 국가들의 상위 10% 소득점유율(국제통화기금) 자료를 보면, 한국은 45%의 비중을 차지해 싱가포르(42%), 일본(41%), 뉴질랜드(32%)보다 높았다. 경제 성장과 실질임금 성장의 격차도 점점 벌어졌다. 2000년 이후 2014년까지 국내총생산은 73.8%가 상승했지만 전 산업 평균 실질임금은 같은 기간 38.6%밖에 늘지 않았다. 그는 “이는 소득의 대부분이 근로자에게 가지 않고 기업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 했다. “이로 인해 예전엔 가계에서 돈을 벌어 저축하면 기업이 은행에서 빌려 투자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기업이 은행에 저축하고 일반 국민들이 돈을 빌려 집을 사거나 생활비로 쓰는, 거꾸로 된 경제로 가고 있습니다.” 각종 수치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엄혹한지 단적으로 드러냈다. 기업 간의 불평등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전체 기업의 당기순이익 중 59.6%를 재벌 등 100대 대기업이 가져갔다. 반면 중소기업의 이익은 35.3%로, 이익이 대기업에 몰려 있었다. 그럼에도 고용은 중소기업이 전체의 71.5%를 책임졌다. 대기업은 4.1%에 불과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에 소득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둘 사이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1980년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96.7% 수준으로 거의 비슷했던 반면, 지금(2014년)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고용 기간은 불과 평균 5.5년(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이다. 채 후보는 “5년 정도 회사를 다니면 다음 회사를 또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고용유연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것인데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통해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 ‘쉬운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소득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며, 모두 공평하게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게 국민의당의 기조”라고 강조했다. 세번째 발표자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후보(9번)인 제윤경(44) 주빌리은행 대표였다. 그는 오랜 기간 서민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몸담아왔다. 그는 “소멸한 채권이 다시 살아나지 않게 규제하고 금융회사의 채무조정 절차를 의무화하겠다”고 말했다. 제 후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어렸을 땐 저녁 7시만 되면 동네 공장 앞에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서성댔습니다. 어슬렁대다 보면 친구들을 만났는데 매번 거짓말을 했습니다. 공장에 다니는 엄마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땐 가난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가난은 더 나아갑니다.” 그는 채권추심원과 마주칠까 두려워 아이를 아침 일찍 등교시키고, 60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한밤중에 아이가 보는 앞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 유치장에 끌려간 한부모가정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채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반복적으로 추심됩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습니다. 야만적입니다.”
6명의 발표자들이 무대에 프레젠테이션(PT) 화면을 띄워놓고 각자 자신의 이력과 강점에 기대 각 당의 주요 총선 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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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노동시간 대폭 줄여야”
녹색당 “1석의 의미는 다르다”
정의당 “국민 월급 300만원 시대”
“새누리당 면제” 농담에… 2부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엔
의정활동 각오, 신산업 육성,
미래세대 대책, 통일 물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의 마음은 어디를 향할까 “민주주의, 껍데기만 남아”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탈핵운동가 이계삼(42)씨가 다섯번째 발표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녹색당의 비례후보(2번)다. “학교를 그만두고 우리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위한 실천에 동참하기 위해 밀양송전탑 사건을 함께했다”는 그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대안적 삶을 위한 정치로 국회를 채워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2년 교장 선생님에게 사직서를 낸 며칠 뒤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자결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밀양송전탑 사건에 함께하게 됐고,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거리에서 움막에서, 경찰과 한전과 부대끼면서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질문 앞에 매일 마주쳤습니다.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철탑은 10년이 걸려 끝내 완공됐다. 그동안 밀양엔 하루 3천명의 공권력이 들어와 계엄군처럼 주둔했다.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383명의 주민이 입건됐다. 아직 한전이 주는 돈을 거부하고 싸우는 300여명의 이들이 남았다. “전기가 모자라서 송전탑을 짓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게 결국 돈 문제, 대자본의 문제였습니다. 핵발전소의 건설과 유지 운영에 관계하는 몇 개의 대기업들이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모든 고통을 떠넘긴 것입니다. (핵발전소의 폐기물을) 10만년이나 보관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후손들에게 다 떠넘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현실은 법이 정당성을 보증하고 있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모순, 비합리의 바탕은 모두 이런 얼개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차분했던 이 후보의 목소리는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그는 “녹색당의 한 석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9천명의 녹색당원이 모두 국회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전혀 다른 목소리와 새로운 논리, 새로운 의제로 허당이 된 한국 정치의 공간을 채워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무대 위 화면엔 31년 만에 탈핵을 이뤄낸 독일 녹색당과, 10년 만에 기본소득을 국가의 정책으로 만든 핀란드 녹색당의 모습이 비쳤다. “녹색당의 한 석이 갖는 의미와 변화의 차이를 헤아려주십시오. 어둠을 저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것입니다. 녹색당에 던지는 한 표는 전환의 씨앗이 되고 대안의 숲을 이뤄낼 것입니다. 녹색당이 한국의 광막한 어둠에서 한 자루의 촛불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초의 불을 켜주십시오.” 발표가 끝났다. 청중의 박수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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